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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꿈 Aug 09. 2021

19화. 수상한 동굴

그해 여름 못다 한 이야기



탐험대 아이들은 두려움의 공간인 전설의 섬에서 인내심을 발휘하며 억지로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어느새 모험을 즐기고 있었다. 어떤 일이든 즐기면서 할 때 그 일의 성공 가능성도 높다는 말이 떠올랐다.


아이들은 그들 앞에 닥친 숱한 도전들에 물러서지 않고 외려 용기를 내어 극복하려고 애를 썼으며 두려움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은 왜 인간이 원하는 것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몸소 느끼고 있는지도 몰랐다. 마을 어른들은 전설의 섬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지금껏 그냥 참고 견뎌왔을 뿐이었다. 인내심을 미덕으로 여기며 살아왔을 뿐만 아니라, 인내심이란 부정적인 것들의 공격을 견디는 것쯤으로 여겼다. 그런데 아이들은 달랐다. 모험을 통해 포기나 변명의 유혹을 견디는 법을 학습하기 하고, 비록 두려움 속에 떨고 있었지만 어른들과는 다른 삶을 추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역사이야기에서 배웠던 원시시대의 모습을 상상하며 아이들은 전설의 섬에서 모험을 통해 살아있는 공부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탐험대 대원들은 선사시대를 떠올리며 평소 흥얼거리며 공부시간에 했던 노래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함께 어울려 부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옹달샘' 노래에 가사를 바꾸어 돌림노래식으로 역사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부르기도 했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맑고 맑은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맑고 맑은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달밤에 노루가 숨바꼭질하다가 목마르면 달려와 얼른 먹고 가지요.'

멀고 먼 옛날 구석기! 뗀석기를 썼다네
뗀석기로 채집과 사냥하며 살았네
동굴, 막집에서 동물 가죽 걸치고
사냥 채집 안 되면 이동하며 살았대

구석기 다음 신석기! 간석기를 썼다네
사냥, 채집과 농사에 가축도 길렀다네
움집서 토기랑 화덕을 이용했대
가락바퀴로 옷 짓고 장신구도 달았대


전설의 섬 탐험대는 대장의 신호에 따라 하얀 막걸리통이 있는 곳으로 거의 다 내려왔다. 단이는 지난 절기 때 나룻배를 타고 가다가 전설의 섬 앞에서 마을 어른들이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아이들이 말했다.

"갑자기 웬 막걸리통이야."

"옛날 막걸리통이 산속에 있다는 것이 말이 돼?"

"이건 도저히 이해가 안 되겠는걸. 퍼즐을 어떻게 맞출 수 있지?"

아이들은 퍼즐을 맞춰가다가 갑자기 막걸리통에서 다들 혼란에 빠진 것 같았다. 단은 용왕님께 올리는 마을의 해신제에 대해 직접 본 적이 있었던 장면을 아이들에게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단이가 아이들에게 얘기해 준 내용은 대충 이랬다.


"마을 해신제를 지난번 절기 때 봤는데 그때 본 것은 얼마 전 역병을 막기 위해 장승제를 올리던 것과 비슷하였다. 검정 갓과 흰 두루마기를 입은 어른들이 배 위에서 제사를 지냈다. 장승제와 다른 점은 배 위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었고, 제사를 지낸 뒤 제물을 바다 위에 떠나보내는 의식을 했던 일이었다. 전설의 섬에 접근할 수 없었던 마을 어른들은 바다 한가운데서 부유물에 제물들을 실어 신비의 섬 쪽으로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옛날 막걸리통도 함께 던져주면서 '신령하신 용왕님께서 모래톱 마을을 굽어 살펴주소서.'라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하는 것을 들었다. 제를 지내는 어른들은 합창하듯이 큰 소리로 소원을 빌며 절을 하기도 하고 기원을 올리기도 하였다. 그때 좋은 기운은 불러들이고 나쁜 기운을 내친다는 의미로 행해졌던 사물놀이 연주도 하는 것을 보았다."


그 당시에는 풍물놀이가 유행했으며 대보름날이 되면 마을을 돌면서 집집마다 풍물패가 돌아다니며 가정방문하며 집 마당에서 한 해의 악귀를 쫓고 복을 기원하는 굿을 해주는 풍습이 있었다. 풍물놀이에서 네 가지 악기를 사용하는 것을 사물놀이라고 했다. 사물놀이의 네 가지 악기는 흔히 자연의 현상에 비유되기도 했다. 북의 울림은 구름을, 장구의 몰아가는 소리는 비를, 징의 울림은 바람을, 꽹과리의 소리는 천둥과 벼락을 상징하였다. 이처럼 사물놀이 악기 소리는 자연의 현상인 운우풍뢰(雲雨風雷)로 비유되기도 했다.


단이의 마을 해신제에 대한 얘기를 듣고 난 아이들은 일제히 눈치를 채고 말했다.

"그럼, 해신제 때 떠내려 보낸 옛날 막걸리통이 여기 있는 저 막걸리통이란 말이야?"

"아마 모래톱 마을과 전설의 섬 사이에서 해신제를 지냈으니 그럴 가능성도 있겠네."

"그쪽에서 부유물에 싣거나 막걸리통을 떠내려 보내면 이곳 전설의 섬에 도달하지 않았겠어?"

아이들은 모두 이런저런 생각을 쏟아냈다.

"막걸리통이나 제물들이 떠내려오면···."

"만약 여기에 사람이나 짐승이 살고 있다면 그 재물들을 주웠을 것이라는 거지?"

"그렇지, 저렇게 큰 막걸리통을 한 번에 다 마실 수가 없으니 산을 넘어 어깨에 지고 왔을 거야."

아이들의 막걸리통에 대한 퍼즐은 무척 논리적이었다. 그렇게 옛날 막걸리통에 대한 추리를 해가고 있는 사이 대장인 단이 전설의 섬에 남아 있는 사람의 흔적에 대해 정리해서 말해주었다.

"우리 탐험대가 발견한 것은 조개 무더기, 오솔길, 도깨비불의 정체 그리고 옛날 막걸리통까지 정리할 수 있겠군."

그러자 아이들은 한 목소리로 단의 말을 되받았다.

"아까 역사이야기 노래에서 '동굴과 막집에서 동물 가죽 걸치고'라는 말이 나오잖아."

"그래, 맞아. 이제는 동굴이나 막집만 찾으면 사람이 이 섬에 산다고 봐도 될 것 같아."라고 하며 소녀가 흥분한 듯이 말했다.


점심을 먹은 후 몇 시간 탐사활동을 한 아이들은 벌써 시간이 오후 4시를 넘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서두르기로 했다. 이제는 이 섬에 살고 있는 짐승이나 인간을 만날 수도 있는 중요한 증거가 되는 동굴이나 움막을 찾으려 가야 하니 더욱 조심하며 신중하게 행동해야 했다. 아이들은 대장의 손신호에 따라 움직였다. 아까 산마루에서 봤을 때 말굽모양의 섬의 구조상 동굴이 있을 만한 곳을 몇 군데 지목해 그곳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내려가던 아이들은 멈춰 서서 소녀에게 동굴이 있을 만한 곳을 추리해보라는 듯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육지 쪽으로 바다가 쑥 들어온 곳의 가운데 부근에 동굴이 있지 않을까?"라고 소녀는 말하며

"오솔길과 거주지는 관련이 있을 것 같아. 원시인들도 이동생활을 했듯이 만약 사람이 산다면 길을 따라 움막이나 동굴 등 거주지로 이동하지 않았겠어?"라고 하며 자신이 읽은 역사이야기를 바탕으로 추리를 하였다.

"가 보면 알 거 아냐. 우리 탐험대가 눈으로 직접 확인하자고!"라고 하며 대장인 단이가 소리쳤다.

그러자 아이들은 모두

"이 길을 따라 내려가면 거주지가 나올지도 몰라."라고 얘기하며 다 같이 내려가야 할지 전초병을 보내어 확인해야 할지 의논을 하자고 했다. 아이들은 먼저 몇 명이 앞장서서 가고 나머지는 뒤따라가야 들키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단이와 소녀가 먼저 출발해가고 약 오십 걸음 정도 뒤에서 나머지 아이들이 뒤따라가기로 정했다. 막걸리통을 모아둔 곳을 지나 조금 더 내려가니 파도소리가 거칠게 들려왔다. 둘은 육지 쪽으로 바다가 쑥 들어간 곳으로 이동하였다. 내려갈수록 큰 나무들보다 숲이나 초원처럼 잔풀이 많아 들처럼 보였고, 군데군데 수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바다에 인접한 섬의 바위들은 까만색이 대부분이었다. 화산활동으로 생겨난 섬처럼 보였다. 책에서 배우기도 하고 과학도서에서 읽은 것 중에 화산활동을 한 곳에서는 동굴도 많이 생기게 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또 화산활동으로 생겼다는 제주도에 갔을 때 만장굴이나 협재동굴 등 유명한 동굴들이 많았다는 기억도 났다. 단이와 소녀는 대원들을 선도하며 먼저 바닷가 쪽으로 살금살금 내려갔다. 그렇게 얼마나 내려갔을 때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와 또 다른 이상한 소리들도 뒤섞여 괴이한 울림이 세차게 들려왔다.


막걸리통을 쌓은 곳에서 옆으로 이동하자 파도가 밀려와 바위 사이로 쑥 들어가는 곳이 보였다. 단은 손신호를 보며 뒤따라오는 아이들에게 잠시 멈추라는 손짓을 했다. 소녀와 둘이서 파도가 쑥 밀려들어가는 바위 위쪽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하였다. 사람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었다. 아까 이상한 소리는 파도가 바위틈 속으로 밀려들어갔다가 나올 때 들리는 소리였다. 이상한 굉음과 같은 소리가 주기적으로 반복해서 들려왔다. 큰 파도가 밀려왔다 나갈 때는 더 큰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파도의 크기에 따라 울려 퍼지는 소리의 크기나 강약이 달랐다. 소녀가 동굴 쪽을 가리키며

"만약 사람이나 짐승이 산다면 저 동굴을 거주지로 삼지 않았을까?"라고 하며 단을 쳐다봤다.

"그럴 것 같아. 저곳이 오솔길에서 가장 가깝고 바다에서 육지 쪽으로 쑥 들어간 곳이니까."라며 단이도 소녀와 같은 생각이라고 했다. 그렇게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고 있을 때였다.

"쿵콰강꽝꽈르르 야 아잉이이호오오잉이···."

"쿵콰강꽝꽈르르 야 아잉이이호오오잉이···."

"쿵콰강꽝꽈르르 야 아잉이이호오오잉이···."라고 하는 천둥 벼락 소리 같은 이상한 소리가 울려 퍼져나갔다. 소녀와 단은 깜짝 놀랐다. '야호'라고 외치는 소리가 동굴의 울림과 어우러져 이상한 괴성으로 변질된 듯한 느낌도 받았다. 소녀는 그 소리가 울릴 때마다 움찔움찔 놀라기도 하고 소름이 돋고 손바닥에 땀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서너 번 괴성이 동굴 쪽에서 들리더니 갑자기 소리가 멈췄다. 그리고는 다시 괴성과 같은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소녀와 단은 헐레벌떡 달려 아이들이 대기하고 있던 곳으로 다시 올라갔다. 숨을 급하게 몰아쉬는 두 아이를 보고 대원들은 모두 놀란 표정으로 쳐다봤다.

"동굴 같은 것이 보였는데···."

"그 속에서 괴상한 소리가 들렸어. 너무 무서워."라고 숨을 몰아쉬며 내뱉는 소녀와 단의 얼굴엔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둘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얼마간 숨을 가쁘고 거칠게 내쉬었다. 탐험대에 위기가 닥친 것 같았다. 대원들은 급히 장소를 옮겨 대장을 중심으로 탐험대의 활동을 다시 점검하기로 했다.


겁에 질린 탐험대 대원들은 서둘러 옛날 막걸리통이 있던 곳을 지나 오솔길을 따라 산마루 쪽으로 되돌아 올라왔다. 오솔길과 조금 떨어진 곳을 찾았다. 만일 지나다니는 사람이 있더라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조금 한적한 바위 밑으로 숨었다. 그리고는 바위 밑 널찍한 너럭바위를 골라 모두 둘러앉았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점심때 먹고 남은 먹거리를 나누어 먹으며 전설의 섬의 말굽 끝부분을 지나 남쪽으로 바라보았다. 소녀는 이번 휴가 중에 갔었던 곳이 남쪽 바다 너머 희미하게 보이는 섬이라며 손가락으로 별장이 있는 섬을 가리켰다. 그리고 별장이 있는 큰 섬 앞에 무인도도 있었다고 얘기해주었다. 다른 아이들도 보석을 뿌린 듯이 점점이 흩어져 있는 섬을 가리키며 자신들이 간 휴가지를 말하기도 했다. 단이가 가족 텐트 체험을 했던 은모래 빛 해변은 소녀의 별장이 있는 섬의 우측으로 치우쳐 있었다. 소녀는 단이가 자랑했던 은모래 빛 해변도 꼭 가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해는 어느덧 서쪽 산 위에 걸려 있었다. 하늘은 맑았다 흐렸다를 반복하다가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한낮의 더위는 누그러지고 시원한 바람이 어디선가 불어오며 바다 위에는 거친 포말이 점점 더 하얗게 변해갔다. 꼭 폭풍이라도 불어올 것처럼 파도가 심하게 일렁거렸다. 탐험대 대장인 단은 나룻배가 정박한 곳에 무사히 묶여 있는지 궁금하다고 하며 지금부터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작전타임을 가진다고 했다. 우선 단은 아까 전초병으로 소녀와 같이 내려가서 봤던 일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동굴이 있는 것 같았고 그 속에서 괴상한 소리가 들려서 놀랐다는 것을 얘기해줬다. 아이들은 단의 이야기를 듣더니 조금 전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는데 그 소리가 밑에서는 더 크게 들린 것 같다고 말했다. 단의 설명이 끝나자 소녀가 이어서 얘기했다.

"만일 동굴에 짐승이나 사람이 있다면 우리가 동굴 쪽으로 가는 것은 매우 위험할 것 같아."

"직접 가서 동굴 속에 무엇이 있는지 보는 것이 좋지 않아?"라고 하며 윤택이가 말했다.

"난 무서워서 못 가겠어. 너무 떨려. 만일 짐승이 우리를 공격한다면."하고 창의가 겁먹은 표정으로 말했다.

"나도 못 갈 것 같아. 괴성을 지르는 동굴 속의 짐승이 우리를 덮치거나 잡아먹으면···. 아앙~~"라고 하며 리솔이는 눈물이 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표정으로 작은 소리로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러자 단이는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견을 내어보자."라고 했다.

"동굴 입구가 보이는 곳에서 관찰하면 어떨까?"

"산마루에서 길을 가로막고 지키면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하며 여러 아아들이 각자 의견을 쏟아내었다. 그때 소녀도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여기 너럭바위에서 오솔길 쪽으로 가면 아까 본 동굴 쪽도 보이고 연결되는 오솔길도 보이니 저쪽으로 조금 이동해서 풀숲에 숨어서 지켜보는 것은 어떨까?"

"만약 밤새도록 아무도 나타나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러면 밤을 새워야 하나?"라고 석이와 윤택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밤을 지새울 수는 없지. 마을로 돌아가야 하는데···."라며 창의와 리솔이도 의견을 내었다.

"아마 해 질 녘이 되면 오솔길을 따라 모래톱 마을이 보이는 곳으로 해산물을 캐러 갈지도 몰라."라고 소녀가 말했다. 아이들의 의견을 듣고 있던 단은 탐험대 대장으로서 결정을 빨리 내려야 했다.

"그러면 무작정 지켜볼 수도 없으니 해가 바다 밑으로 들어갈 때까지 보초를 서자."

"보초를 서는 곳은 아까 은설이가 말했던 곳이 좋겠어."라고 했다. 해가 바다 밑으로 들어가도 여름이어서 날은 훤하니 그때까지 기다려도 아무 일이 없으면 탐험대를 철수하자는 얘기였다.


아이들은 너럭바위 끝부분에서 풀숲에 숨어서 동굴 쪽에서 올라오는 오솔길을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파도소리만 철썩철썩 들려오고 바다 위의 포말은 더욱 거칠고 하얗게 흩어졌다. 바람이 거세져 폭풍이라도 되는 날에는 큰일이었다. 점점 시간은 흘러 해는 서산 위에 걸려 있었다. 아직 바다 밑으로 내려 갈려면 조금 더 남았지만 해가 바다 위에서는 빠르게 물속으로 내려간다는 것을 아이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더는 지켜볼 시간이 없었다. 창의가 망을 볼 차례여서 망을 보고 있었다. 창의는 망을 보다가 놀란 표정으로 아이들이 있는 너럭바위 쪽으로 급하게 달려왔다.

"오솔길에 움직임이 있어. 어떤 짐승 같은 게 움직였어."라고 하며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아이들은 모두 놀란 가슴이 되어 창의가 망을 보던 곳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어,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라며 아이들은 이상하다는 듯이 수군거렸다. 창의가 잘못 본 것이라며 다시 너럭바위 쪽으로 돌아가려고 하던 그때였다. 정말 짐승 같은 큰 물체가 조금씩 오솔길을 따라 막걸리통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놀라 서로 손을 붙잡았다. 그러는 사이 큰 짐승 같은 물체는 점점 위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뚜벅뚜벅 올라오는 것 같았다. 탐험대에 참가해 전설의 섬에 상륙하여 큰소리도 치며 즐겁게 뛰놀며 자신감에 차 있었던 아이들은 어느새 모두 겁에 질려 꽁꽁 얼어붙어버렸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 발자국도 뗄 수가 없었다. 해는 서쪽 바다로 넘어가고 있었고 어둠은 점점 전설의 섬 위로 내려앉고 있었다. 아이들은 두려움에 떨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그 자리에서 바위처럼 굳어져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러고 있는 사이 잠시 흐릿한 눈으로 다시 망을 보려고 하는데

"쿵콰강꽝꽈르르 야 아잉이이호오오잉이···."

"쿵콰강꽝꽈르르 야 아잉이이호오오잉이···."

"쿵콰강꽝꽈르르 야 아잉이이호오오잉이···." 하는 소리가 아이들의 귓가를 천둥소리처럼 때렸다. 하늘이 무너지고 세상이 꺼지는 듯한 굉음과 괴성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손을 잡은 채 뒤로 나자빠졌다. 너럭바위 아래로 나뒹구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겁에 질린 아이들의 우는 소리도 들려왔다. 울다가 웃다가 또 웃다가 울다가 아이들은 역시 아이들이었다. 이런 위기를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갑자기 자신들 앞에 무섭게 닥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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