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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꿈 Aug 10. 2021

20화. 짐승과 맞닥뜨리다

그해 여름 못다 한 이야기



인간은 동일한 시간, 동일한 공간 속에서도 서로 다른 환경에 길들여지고 익숙해지면 완전히 다른 삶을 살 수도 있는 것인가. 전설의 섬에서 짐승과 맞닥뜨린 아이들은 숲 속에서 자란 늑대 소년이나 정글북 같은 이야기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숲 속의 인간 오랑우탄은 인간인가 짐승인가. 오랑우탄이 우리 땅에도 산단 말인가. 멸종 위기 동물이 정녕 우리 땅에 살고 있었단 말인가. 인도네시아 보루네오섬에 살고 있다는 오랑우탄이 신비스러운 전설의 섬, 도깨비불이 솟아오르는 우리 땅에도 살고 있었다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린아이들이 읽었던 책에서는 오랑우탄은 인도네시아의 보르네오섬과 수마트라섬에서 분포한다고 되어 있었다. 그런데 전설의 섬에도 오랑우탄이 나타났다면 대단한 뉴스거리였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눈에는 그랬다. 탐험대는 수상한 동굴을 탐사하다가 사납고 무시무시한 짐승과 맞닥뜨렸다.


소녀는 과학도서에서 오랑우탄은 대략 13~15 가지의 소리를 낸다고 읽은 적이 있었다. 특이한 것은 약 1킬로미터 밖에 있는 사람들도 들을 수 있는 긴 신음소리로 자신의 영역임을 다른 개체에게 알리기도 한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숲 속의 인간으로 일컬어지는 오랑우탄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동굴 근처에서 맞닥뜨린 사납고 무시무시한 짐승은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불청객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일까. 어린 조무래기들을 발견한 짐승은 필사적인 기세로 아이들 쪽으로 거리를 좁히며 쫓아오고 있었다.


탐험대 대장인 단은 위기 상황 속에서 또 다른 지시 하나를 내렸다. 탐사활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탐험대 대원들은 오솔길을 따라 올라오는 짐승을 정확히 봐야 하고 또 한편으로는 도망도 쳐야 했다. 단은 창의를 재빨리 나룻배가 정박해 있는 곳으로 먼저 내려가게 했다.

"창의야, 너는 먼저 나룻배가 정박한 곳으로 내려가."

"먼저 가서 뭘 하면 되지?"

"저 밑 동굴에서 올라오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우리가 뒤따라 내려가면 바로 출발이 가능하도록 배를 준비시켜줘."

"응, 알겠어.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다들 조심해."라고 하며 간이 작은 창의는 겁도 나고 해서 곧장 나룻배 쪽으로 내려갔다. 이제 남은 아이들은 다섯 명이었다. 놀랐던 아이들은 제정신을 되찾고 각자 맡은 일을 시작했다. 석이는 망원경으로 물체를 자세히 확인했고, 리솔이는 물체의 움직임과 모습에 따라 특징을 잡아 빠르게 스케치를 하였다. 윤택이는 낫과 가래를 양손에 들고 공격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소녀는 카메라 서터를 연달아 누르며 물체의 일거수일투족을 빠짐없이 포착하려고 애썼다.나머지 대원들은 창의를 나룻배 쪽으로 먼저 내려가게 한 후 짐승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가 어디쯤 올라왔을 때 도망치면 잡히지 않고 무사히 배를 탈 수 있을지 좋은 머리로 계산을 때리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혼돈 속에 헤매었던 탐험대는 다시 제자리를 잡고, 괴상한 물체의 출현을 유심히 관찰하며 탐사활동을 재개하였다.



탐험대 대원들은 일사불란한 움직임 속에서 각자가 맡은 역할을 다하였다. 망원경으로 물체의 움직임을 확인하고 있던 석이가 말했다.

"물체는 큰 짐승 같기도 해. 얼굴이 머리털로 뒤덮여 있어."

"털로 뒤덮여 있다면 책에서 본 숲 속의 인간 오랑우탄은 아닐까?"라고 소녀가 말했다.

"오랑우탄은 분포지가 정해져 있다고 했어. 동남아 쪽으로."라고 하며 윤택이가 아닐 거라는 투로 말했다.

"어쨌든 오랑우탄이 따뜻한 섬에 산다고 했으니 여기 전설의 섬과 환경이 비슷한 것 아냐."라고 하며 리솔이는 오랑우탄일 수도 있다는 쪽이었다.

"짐승이 두발로 걸어서 올라오는 느낌이니 멧돼지 같은 것은 아니고 두발짐승이 아닐까?"라고 하며 단이도 한 마디 거들었다.

그렇게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있는 사이 큰 짐승은 뚜벅뚜벅 오솔길을 따라 올라오고 있었다. 망을 보는 곳에서 거의 오십 미터 전방까지 도달하였다. 이제는 아이들의 맨눈으로도 물체의 식별이 가능한 거리까지 도달한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사람과 닮은 것은 맞았다. 그런데 사람의 몰골은 아니었다. 얼굴은 털로 뒤덮여 있었고 드러난 가슴팍에도 가슴털이 덮여 있는 것 같았다. 머리 부분은 사자의 갈기처럼 어지럽게 머리칼이 얼굴 주변으로 길게 헝클어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사람이라기보다는 짐승에 더 가깝게 보였다. 오솔길의 풀숲에 가려져 상체만 보이는 짐승은 이제 거의 몇 미터 밑 비탈길에서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아이들은 눈앞에서 무시무시한 짐승을 확인하고는 재빨리 도망칠 궁리를 하였다. 아이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짐승은 고개를 쳐들었다. 머리를 아이들쪽으로 돌리더니 동작을 더 빨리하며 올라오기 시작했다. 상황은 갑자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공포 스릴러로 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탐험대 대장인 단은 대원들에게 일제히 나룻배 쪽으로 내달리라고 손신호를 며 목청을 높였다.

"전원 철수!"

"전원 철수!"

"모든 대원들은 즉각 퇴각하라!"라고 외쳤다. 단은 어디서 들은 군대 용어를 사용하며 긴장된 목소리로 연이어 고함을 쳤다. 탐험대는 표류기에 나오는 모험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발 빠르게 움직였다. 아이들은 재빨리 짐을 챙겨 너럭바위에서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그 사이 무서운 짐승은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오솔길 산마루 근처까지 눈 깜짝할 사이에 거의 다다랐다. 아이들은 신속하게 움직여 비탈길로 내달렸다. 짐승도 이상한 소리를 내며 뒤쫓아오는 것 같았다. 쫓기는 아이들은 오싹한 느낌이 들어 몸이 뻣뻣해지는 것 같았고 등골에는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잡히면 죽는다! 빨리 뛰어!"라고 하며 단은 재차 고함을 쳤다. 소녀는 도깨비불을 보러 갔다가 언덕을 뛰어내려 오던 기억이 불현듯 되살아났다.

"오솔길을 따라가지 말고 언덕을 점프해서 지름길로 뛰어내려!"라고 외쳤다. 아이들은 스펀지 매트에서 점프를 하듯이 비탈길을 질주해 뛰어내려 갔다. 수십 년간 오솔길을 오르내렸을 짐승은 숲 속의 인간답게 무섭게 수풀을 헤집고 쫓아오고 있었다. 아이들은 뛰어내려 가면서 무서움을 떨쳐내기 위해 기합 소리를 내기도 하고 자신도 모르게 환호를 지르며 뛰었다. 여자아이들이 더 빠르고 날렵했다. 뒤에서 씩씩거리는 소리와 함께 괴성을 지르는 소리가 숲 속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들은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오기도 했다. 짐승은 처음으로 사람의 눈에 띄어 불안했던지 필사적으로 아이들을 쫓아오며 붙잡으려고 했다.



비탈길로 내려오는데 산 아래쪽으로 멀리 바닷가가 보였다. 아이들은 모두 소리쳤다.

"창의야, 떠날 채비는 끝났어?"

"창의야!"

"창의야!"

아이들은 울먹이듯이 정박지에 대기시킨 창의를 불렀다.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되돌아오는 건 메아리뿐이었다.

"창의야! 창의야!"하고 다시 불러도 대답은 없었다. 다급한 아이들은 극도로 불안해졌다. 그러는 사이 앞서 달리던 소녀가 그만 카메라 끈이 나뭇가지에 걸렸다. 갑자기 메고 있던 카메라를 떨어뜨렸다. 뒤따라 내려오던 단이는 카메라를 줍으러 다시 위쪽으로 조금 올라갔다. 짐승과 눈이 마주쳤다. 그때 짐승은 이빨을 드러내며 괴성을 질렀다. 두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북치듯이 두드리기 시작했다. 자신만의 영역을 침범한 불청객에 대한 분노의 표출인 것 같았다. 단은 짐승이 그러는 사이 재빨리 카메라를 주워 소녀의 손을 잡고 맨 끝에서 달리기 시작했다. 먼저 바닷가에 내려간 아이들은 창의를 찾고 있었다. 짐승은 소녀와 단을 간발의 차로 접근하며 뚜벅뚜벅 쫓아오고 있었다. 짐승은 노쇠하여 힘에 부치는지 큰 숨을 몰아쉬며 괴성을 또 질렀다. 그런 후 두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분노가 극에 달했던 것일까.

"콱콸콸우우우워워헐"

"콱콸콸우우우워워헐"

오로지 배가 있는 쪽으로 가서 나룻배를 타고 전설의 섬을 빠져나가야 했다. 무사히 섬을 벗어나는 일이 아이들에겐 최대의 목표가 되었다. 그것이 지상 과제였다. 오랑우탄을 닮은 괴생명체무시무시모습은 생각만 해도 섬뜩했다. 재빨리 배에 오르지 않으면 단이와 소녀는 짐승의 손아귀에 들어갈지도 몰랐다. 일촉즉발의 긴박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막다른 골목에 처한 아이들은 또다시 다급하게 창의를 애타게 불렀다. 그때였다.

"이쪽이야. 이쪽."하고 잔뜩 겁에 질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창의였다. 다행히 창의는 약속대로 아이들이 타기 쉬운 곳으로 나룻배를 이동시켜 놓고 있었다.


이미 해는 지고 전설의 섬에는 어둠이 짙게 내리고 있었다. 창의는 배를 잡고 있고 석이, 윤택, 리솔이는 배에 타고 있었다. 이제 단이와 소녀만 타면 창의가 배를 밀면서 나룻배가 섬을 떠나면 그만이었다.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짐승을 보며 배에 탄 아이들은 단이와 소녀가 재빨리 배에 타도록 자리를 만들었다. 드디어 소녀가 먼저 점프를 하여 나룻배에 타고 창의가 타고 가까스로 단이가 배를 밀면서 겨우 마지막으로 나룻배에 올라탔다. 그때 대기하고 있던 석이와 윤택이가 재빨리 노를 저었다. 떠나는 나룻배를 따라 짐승은 물속으로 헤엄쳐왔다. 그는 아이들을 잡아먹기라도 할 양 허리춤에 물이 찰 때까지 배를 쫓아왔다. 하지만 배는 바다에서 갑자기 거센 바람이 일면서 급회전을 했다. 다들 움찔했다. 석이와 윤택이가 버티며 노를 저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룻배는 모래톱 마을의 반대쪽으로 파도에 떠밀려 떠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제야 사나운 짐승은 아이들을 포기하고 어깨가 축 쳐진 모습으로 뒤돌아서서 바다에서 뭍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가고 있었다.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어린 조무래기들을 잡지 못한 억울한 몸짓이 역력했다. 아이들은 놀라기도 했지만 무서운 짐승의 덫에서 탈출했다는 해방감에 야릇한 쾌감 같은 걸 느꼈다. 어느새 장난끼가 발동한 몇몇 아이들은 손을 흔들어 짐승을 놀리는 듯한 동작을 하기도 했다. 전설의 섬 탐험대는 탐사활동을 마치고 모두 무사히 나룻배에 탔다. 아이들은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몹시 두려웠고 무서움에 떨었지만 머릿속은 오히려 맑아지고 온몸은 개운해지는 것 같았다. 기분은 날아갈 듯이 상쾌하였다.


아이들의 그런 여유와 즐거움도 잠시 뿐이었다. 그들의 모험과 도전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탐험대는 다시 나락으로 빠져드는 듯했다.


 




장편소설 '그해 여름' 1부를 마칩니다. 그해 여름 못다 한 이야기는 2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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