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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꿈 Aug 10. 2021

21화. 마을에서 사라진 아이들

그해 여름 못다 한 이야기



한편, 모래톱 마을에서는 난리가 나고 온 마을은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마을에서 아이들이 사라진 것을 알아챘던 것이다. 늦은 밤이 되었는데도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자 마을 사람들은 좋지 않은 일들을 상상하며 몹시 불안하고 초조하여 애간장이 탔다.


새벽같이 집을 나간 아이들은 저녁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여름방학 과제를 친구들과 모여서 한다며 집을 나간 아이들이 해가 넘어가고 어둠이 짙게 깔리는데도 마을에 돌아오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하마면 올까 하마면 올까 행여나 대문 앞에 아이들이 들어서기라도 할 것 같아서 부모들은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음력 이렛날 반달은 중천에 뜨서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기와집 군수 할아버지 댁으로 황급히 모였다. 소녀의 외할아버지는 사위와 딸이 서울에서 멀리까지 내려와 손녀를 당분간 맡아달라고 부탁하고 갔는데 손녀가 사라졌으니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른 부모들도 걱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역병으로 마을 어귀에서 통금을 맡았던 청년들이나 마을 어른들도 모두 모여들었다. 청년들은 밤새 당번을 정해 통금을 섰었는데 아이들이 마을 어귀를 빠져나가지는 않았다고 했다. 육지 쪽으로 나가지 않았다면 강나루를 이용해 마을을 빠져나갔을 것이라고 다들 그렇게 짐작했다. 소녀의 외할아버지는 불현듯 옛날 섬 주변에서 일어났던 무서운 악몽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며 젊은 시절에 겪었던 온갖 재앙들이 하나 둘 스쳐 지나갔다. 소녀가 그렇게 궁금해하고 듣고 싶어 했던, 입밖에 내거나 기억 속에서 꺼내기 싫었던, 희미해져 가는 악몽들을 차마 불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


소녀의 외할아버지는 젊은 시절에 친하게 지내던 동무를 전설의 섬 깊은 바닷속 해구에서 잃었다. 여름철에 멸치잡이 배에서 일손이 부족하다고 하여 단짝 친구와 함께 조업에 나간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친구와 함께 대학을 마치고 취직이 안 되어 쉬고 있었을 때였다. 다들 일찍 결혼을 하여 밥벌이라도 해야 하는데 집에서만 쉬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학교에 다닌다고 멸치잡이 뱃일을 해본 경험이 없었지만 동네 어른들이 도와달라고 하고 또 마을 앞 큰 바다에서 조업을 한다고 하여 할아버지는 단짝 친구와 함께 조업에 나섰던 것이었다. 쌍끌이 멸치잡이 배는 두 척이 긴 그물을 단단히 묶어 드넓은 바다에서 양쪽으로 그물을 끌고 가며 멸치들을 그물 속으로 아넣어야 했다. 높은 산에서 망을 보는 사람이 깃발로 멸치 떼의 출현을 알리면 신호에 따라 선장이 급히 배를 몰고 선원들은 그물을 재빠르게 물속으로 던져 넣었다. 그물이 빠르게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조업 중이던 녀의 외할아버지는 물론, 선장과 어부들이 일곱이나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그때 소녀의 외할아버지와 선장만 빠져나오고 나머지는 모두 실종되었다.


살아 돌아온 외할아버지는 그물과 함께 쓸려 들어간 어부들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몇 날 며칠을 마을 사람들과 함께 밤에도 횃불을 들고 찾으러 다녔다. 그런데 어부들이 실종되고 난 뒤 여드레째 되는 날 강나루 하류 바닷가 쪽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웅성거리며 떠들썩했었다. 실종된 어부들이 물속에서 시신으로 떠올라 발견되었던 것이었다. 실종되었던 어부들은 모두 주검으로 발견되었으며 그중에 한 명은 발견되지도 않았고 찾지도 못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섬의 저주이재앙 때문에 이런 변고가 생겼다며 전설의 섬에 대한 원성으로 들끓었다. 주검으로 발견되지도 않았고 살아 돌아오지 못한 사람은 함께 멸치잡이 조업에 나섰던 기와집 할아버지의 단짝 친구였던 마을 젊은이였다. 외할아버지 친구의 실종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있었다. 그 당시 남편을 잃은 젊은 아내는 어린 아기를 안고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 기와집 할아버지는 친구의 아내를 다독이며, 실종된 친구를 찾기 위해 혼자서 바닷가를 헤매고 다니기도 하고 경찰서에 찾아가서 수차례 다시 수색을 부탁하기도 했었다. 그런데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친구는 시신으로 떠오르지도 않았고 돌아오지도 않았으며 지금까지 실종 상태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로도 섬 주변에서는 깊은 해구의 영향으로 급하게 휘감아도는 물살에 조업하던 어선들이 침몰하기도 하고 해녀들도 다수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때부터 근처는 절대 가서는 안 되는 금단의 영역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전해 내려오는 말로는 옛날에 전쟁이 일어나면 섬 주변 물살의 소용돌이를 이용해 적을 섬멸했다는 일화도 있었을 정도였다. 그러한 재앙들이 빈번히 발생하는 곳이었으니 마을에서는 용왕님의 원성을 산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절기마다 해신제를 지내고 섬을 멀리하며 아예 가까이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섬에 상륙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며 있었어도 안 되는 일로 각인되어 왔었다. 그 당시 섬 주변에서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 뭍으로 나오지 못한 사람들모시게 된 것이 산 중턱에 있는 망부석이었다. 사람들은 섬이 바라다보이는 산등성이에 망부석을 세워 전설의 섬 앞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한 죽은 영령들을 추모해오고 있었다.


소녀의 외할아버지는 그 당시의 안타까운 주검들을 떠올리며 아이들이 사라진 일도 그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에 오금이 저리고 숨이 턱턱 막혀오는 것 같았다. 온 마을은 밤이 깊었지만 횃불을 들고 빨리 수색을 서둘러야 했다. 어른들은 애지중지하며 키운 마을 아이들을 잃을까 봐 다들 노심초사하였다. 아이들을 찾는 일은 밤을 새워서라도 해야 했다. 사랑하는 아이들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녀의 외할아버지는 온몸에 피가 마르는 듯 저리고 가슴은 아파 왔다. 기와집에 모인 사람들에게 횃불을 들고 강나루 바닷가 쪽을 샅샅이 찾도록 독려하였다. 마을 청년들은 모인 사람들을 마을회관으로 모두 데리고 갔다. 마을회관에 구비되어 있었던 밤에 낙지잡이용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해산물 채취용으로 사용했던 홰를 가지고 나왔다. 사람들은 홰에 불을 붙여 강나루 해변으로 아이들을 찾으러 나섰다.


마을 사람들은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자 섬의 저주가 시작되었다고 여기평온하던 마을은 갑자기 전쟁이나 난 것처럼  분위기가 험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바닷가는 숱한 자연재해로 몸살을 앓아왔지만 아이들이 사라지는 재앙은 아직까지는 한 번도 없었다. 젊은 청년들은 나룻배를 타고 양식장 부근은 물론 며칠 전 아이들이 적조를 봤다고 했던 먼바다까지 횃불을 들고 샅샅이 수색하기도 했다. 모두 허사였다. 아무런 흔적도 증거도 찾을 수가 없었다. 단지, 나룻배 한 척이 없어졌다는 사실드러났다. 강나루 선착장에 묶여 있었던 석이네 나룻배 한 척이 사라지고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상현달이 자정을 넘기며 서쪽으로 기울고 있을 때까지 수색을 멈추지 않고 계속했으나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바닷가에는 초저녁부터 파도가 거세지며 풍랑 주의보도 내렸다. 마을 사람들은 아이들이 나룻배를 타고 나갔다면 이폭풍우 속에서 밤새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며 여기저기서 울음소리와 한탄하는 소리가 뒤범벅이 되어 들려왔다. 체념하는 소리도 간간이 들리는 것 같았다. 모래톱 마을은 역병에서는 안전했지만 아이들이 실종되면서 통곡소리가 온 마을을 뒤덮고 고통의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아이들의 일탈이 마을을 숙대밭으로 만들고 사람들의 마음을 지옥으로 바꾸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섬의 재앙을 의심하며 전설의 섬이 아이들을 삼켰다는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어떤 젊은이는 지금 당장 섬에 쳐들어가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섬은 금단의 땅으로 이제껏 터부시 되어 왔으며 누구도 감히 쉽게 나서서 그런 일을 감행하려고 달려들지는 못하였다. 원망의 대상이지 정복의 대상은 여전히 아니었다. 자라나는 아이들의 끝없는 도전과 모험심은 과연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까. 신비의 섬도 모래톱 마을도 운명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초저녁부터 사라진 나룻배를 수색하느라 지친 마을 사람들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바닷가에서 아이들을 눈물로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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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가 밤새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을 기다리는 부모님들의 심정에 대해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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