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꿈 Aug 11. 2021

22화. 폭풍에 길을 잃다

그해 여름 못다 한 이야기



전설의 섬을 탐사한 아이들은 신비의 섬에서 탐험대의 목표와 계획에 따라 탐사활동을 마치고 섬을 떠났다. 사나운 짐승의 추격을 뿌리치려고 아이들은 어금니를 악물고 힘껏 내달려 배를 탔지만 그 기쁨도 잠시 뿐이었다.


마을에서 사람들이 밤을 지새우며 자신들을 애타게 찾고 있는 줄도 모르고 모래톱 아이들의 모험과 도전은 선택에서 필수로 전환되는 듯하였다. 들은 자신들이 처한 극한 상황 속에서 이제 그만두고 싶고 빠져나오려 해도 맘대로 발을 뺄 수도 없는 딱한 처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늦은 오후부터 파도가 맹수의 이빨처럼 포말을 하얗게 드러내더니 검은 먹구름은 바람과 비를 몰고 왔다. 나룻배가 전설의 섬을 떠나 바로 모래톱 마을로 돌아가더라도 이미 상현달이 서쪽으로 기울고 있는 늦은 밤이라 가족들의 걱정을 끼칠 것은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배는 모래톱 마을과는 반대 쪽인 남쪽으로 멀리 떠내려가고 있었다. 북쪽에서 비바람이 몰아쳐 내려오더니 급기야 나룻배 위로 비를 쏟아부었다. 배는 전설의 섬을 뒤로하고 파도에 휩쓸리며 남으로 남으로 떠내려가고 있었다. 노를 저어 배를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이들이 탄 나룻배의 선체는 거센 파도의 움직임에 오롯이 맡길 수밖에 없었다. 탐험대의 운명은 이제 폭풍 속에 내맡겨진 꼴이 되었다.


아이들은 집에서 걱정할 부모님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으며 폭풍을 헤치고 마을로 돌아갈 일도 꿈만 같았다. 배가 파도에 심하게 흔들려 무사하리란 보장도 없었을뿐더러 출입을 엄격히 금하고 있었던 전설의 섬에 발을 들여놓은 일도 어른들이 알면 경을 칠 일이었다. 그 사실이 발각되는 날에는 가차 없이 마을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이제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깊은 고민 속에 빠져야만 했다. 아이들의 도전과 모험은 신나고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루에도 열두 번 갈등과 고민 속에 번민의 시간도 동반되었다. 모래톱 마을 아이들은 모험을 통해 큐빅은 세상의 다양한 모습과 삶의 다채로운 색깔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사물놀이의 악기를 풍운우뢰에 비유했던가. 폭풍은 거세져 바람과 구름과 비와 천둥 벼락을 자유자재로 관장하며 나룻배를 요동치게 하였다. 바람은 파도를 해일처럼 배 위로 쳐올리고 빗물은 하늘에서 내리퍼부어 나룻배의 선체는 이제 해수면과 나란히 입을 맞추듯이 가라앉고 있었다. 배의 이물과 고물도 거친 파도 속에 잠기고 있었다. 대장인 단은 위기 속의 탐험대를 다시 독려하며 지휘하기 시작했다.

"나룻배의 물을 퍼내어라."

"나룻배가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물을 퍼내어라."라고 하며 반쯤 우는 목소리로 절규했다. 아이들은 모두 고무신이며 나룻배 구석에 나뒹구는 바가지를 들고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저 멀리서 집채만 한 파도가 나룻배를 삼킬 듯이 밀려오고 있었다. 거인처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듯이 머리 위로 덮칠듯한 파도는 하얀 포말을 뿜으며 이글거리는 맹수의 눈빛이 되어 포효했다.

"모두 선체를 꼭 붙들어라."

"배 위에서 나가떨어지지 않도록 선체에 몸을 낮춰라."라고 하며 단의 목소리가 바람에 섞여 희미하게 귓가에 들려왔다. 아이들은 바이킹을 타듯이 파도 끝에 밀려 올라간 나룻배를 붙잡고 괴성을 질렀다. 배는 하늘 높은 곳에서 바다 밑 심해로 떨어지는 듯하여 아이들의 뱃속 장기들이 아래로 아래로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우 우와 아아. 아앙아앙흐흐흐." 하며 아이들은 우는지 웃는지 모를 이상한 소리를 내질렀다. 큰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수 미터씩 남으로 남으로 나룻배는 이동하였다. 파도 하나가 지나갈 때마다

"휴우, 살았다. 한 고비 넘겼다!"라며 석이와 윤택이는 여유를 부리는 것 같기도 했다.



바닷가에서 살아온 아이들은 배가 파도에 순응하도록 조정하는 법을 알았다. 파도를 거스러며 마을로 돌아가려고 했다면 아마도 배는 난파선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아이들은 나룻배를 순풍에 돛을 단 듯이 파도가 가는 대로 움직이도록 내버려 두었다. 갈 곳은 달랐고 가야 하는 방향도 달랐지만 때로는 그렇게 나룻배를 내버려 두어야 한다는 것을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 경험 속에서 터득해 몸에 배어 있었다. 아이들은 바다에 대한 오랜 경험으로 폭풍우와 격랑에 맞서 꺾으려 하지 않고 너울의 흐름을 타며 노를 저어 보조를 맞추었다. 분노도 절망도 포기도 없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꺾이지 않고 파도와 같은 방향으로 휘어지고 휘청거리며 사납고 거친 폭풍의 바다를 건너고 있었다. 탐험대는 단지 현실을 받아들이며 그냥 몸을 맡기고 있었을 뿐이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었다.


한동안 비바람이 휘몰아치더니 서서히 바다는 평온을 되찾는 듯했다. 이미 많이 남쪽으로 떠내려온 배는 소녀가 휴가를 보낸 별장이 있는 섬을 지나 맞은편 작은 무인도의 모래밭에 닿았다. 아이들은 그런 와중에도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상현달이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반달이었다. 달 모양을 보며 조수 간만의 차가 가장 작은 '조금'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무인도에 정박한 배를 관리할 때도 '조금'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였다. 아이들은 '조금'이어서 물의 높이에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을 감안해 배를 정박시켰다. 반달을 보며 언제 폭풍이 있었냐는 듯 아이들의 입가에는 '반달'이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무인도에 동심을 전하였다. 그래서 아이들이라고 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폭풍을 만나지 않고 섬에서 늦은 밤에 마을로 돌아갔더라도 어른들이 가지 말라고 한 곳에 갔다며 경을 치고 마을에서 쫓겨날 것이 뻔했다. 아이들은 전설의 섬에서 탐사활동으로 알아낸 것도 많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마을에 알릴 수는 없었다. 그곳은 금단의 땅이어서 가서는 안 되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탐험대 대장인 단과 대원들은 나룻배가 천신만고 끝에 정박하게 된 무인도에서 탐험대의 활동을 계속 이어갔다.


잠깐이지만 탐험대는 무인도에서의 낯선 생활을 시작했다. 책에서 본 표류기나 모험 이야기 속에 나오는 활동들을 아이들은 따라 하는 것 같았다. 물이 있는 곳을 찾기도 하고 눈을 붙이고 잠깐 잠을 청할 만한 동굴이나 바위틈도 찾아 나섰다. 장비를 챙기고 복장을 갖추어 탐험대가 떠나던 첫날처럼 새롭게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소녀는 준비한 손전등을 비추며 일전에 별장에 휴가를 왔을 때 무인도에서 체험한 일들을 떠올리며 아이들을 안내하기도 했다. 로빈슨 크루소를 읽으며 무인도 생활도 꿈꿔봤던 단이는 실제로 먹거리가 될 만한 것도 찾고 배를 수리할 수 있는 물건들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아이들은 모두 폭풍 속을 빠져나오면서 잠은 어디론가 달아나고 똘망똘망한 눈이 되었다. 탐험대는 큰 바위 밑 이슬을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앉았다. 바위 밑은 깊지는 않았지만 동굴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탐험대 대장인 단은 대원들이 어떻게 마을로 돌아갈 것인지를 의논하자고 했다. 석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전설의 섬에 발을 디뎠다는 것을 말해야 할까?"

"그건 아닌 것 같아. 금단의 땅에 들어갔다고 하면 어른들이 노할 거야."라고 윤택이가 말했다.

"그러면 무인도에는 어떻게 정박하게 되었는지 물으시면?"

"그냥, 바다낚시하다가 폭풍을 만났다고 할까?"

"아니야, 일전에 우리가 바다에 나간 적이 있었잖아. 그때 바다를 보고 놀랐던 적조현상을 방학과제로 탐구하다가 폭풍에 휘말려 무인도에 떠내려왔다고 하는 건 어떨까?"

아이들은 저마다 마을 어른들의 걱정을 끼치지 않고 무사히 마을로 돌아가는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다. 대체로 아이들의 의견은 전설의 섬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바다가 붉게 변하는 것이 걱정되어 적조현상을 탐사하다가 폭풍을 만나 어쩔 수 없이 여기 무인도까지 떠내려왔다고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토론 시간에 경험한 것도 생각났던 것 같았다. 예를 들면 '선의 거짓말은 필요한가?'라는 토론 주제에 대해 찬반이 갈리기도 했던 사례를 참고하였다. 따라서 탐험대 대원들은 마을로 돌아가게 되면 마을 어른들의 걱정을 끼치지 않도록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하다는데 대체로 동의하였다. 아이들은 이제 마을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그전에 무인도 건너편 큰 섬으로 이동하여 아이들이 무사하다는 것을 마을에 알리는 일이 급선무였다. 아이들은 아침해가 동쪽 산 위에 떠오르기 전에 모두 한 마음이 되어 큰 섬으로 가기 위해 서둘렀다.



글 속으로 들어가기》

글 속의 인물들이 되어 선의의 거짓말은 해도 되는지, 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해 주장과 근거의 타당성을 생각하며 서로 토론해 봅시다.

작가의 이전글 21화. 마을에서 사라진 아이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