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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꿈 Aug 12. 2021

23화. 별장지기와 해녀들의 회상을 듣다

그해 여름 못다 한 이야기



탐험대는 갑자기 불어닥친 폭풍우 속에서도 운 좋게 무인도에 정박하여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거친 풍랑을 헤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탐험대 아이들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라는 속담을 떠올렸다.


아이들의 타고난 본성은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탐험대 아이들은 도전과 모험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위험을 무릅쓰게 되고 자신감을 갖게 되면서 평소 힘들고 귀찮게 여겼던 일들 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존재로 성장해 가고 있었다. 그들은 아침해가 밝아오자 무인도에서 별장이 있는 맞은편 섬으로 나룻배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챙길 일들이 많았는데 아침나절에 한 가지 더 의논을 해야 할 것도 있었다. 무엇보다 어른들이 귀가 따갑도록 주의를 줬던 일을 저질렀기 때문에 아이들은 마을로 돌아가는 일이 두려웠다. 어제오늘 한 일련의 행동들이 어른들이 금하고 있는 일탈 행위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별장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 어떻게 탐험대가 마을로 돌아가야 할지 머리를 짜내어야 했다. 밤새 떠내려온 나룻배를 저어서 모래톱 마을로 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다. 가는 길에 다시 폭풍우를 만날 수도 있으니 다른 좋은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때 소녀가 입을 뗐다.

"나중에 무인도에서 별장으로 건너가 별장 관리인을 만나보면 어떨까?"

"별장 관리인을 만나서 뭘 하려고?"라고 하며 단이가 되물었다.

"별장 관리인이나 해녀들을 만나서 묻고 싶은 것도 있고···."라고 하 소녀는 말끝을 흐리며

"마을에서 우리를 찾고 있을 테니 별장에 있는 전화기로 우선 마을에 우리가 무인도에 정박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게 좋을 것 같아."라고 제안했다. 소녀의 말을 듣고 있던 아이들은 한시라도 빨리 우리가 무사하다는 것을 마을에 알려야 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하는 것이 마을 사람들이나 가족들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는 일이라고 여겼다.


탐험대는 아침나절에 마을로 돌아가는 일에 대한 의논을 마치고 나룻배를 저어 별장이 있는 큰 섬으로 갔다. 별장에 도착하니 관리인과 해녀들은 아직 물질을 하러 나가기 전이었다. 해녀들은 물질을 나가려고 바지랑대를 비스듬히 하여 빨랫줄을 눈언저리까지 내려 해녀복을 챙기고 있었다.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들이라 소녀는 그들을 만나자마자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별장 관리인은 마을의 기와집에 급히 전화를 드리는 것 같았다. 아이들 소식을 들은 마을에서는 안도하며 조속히 아이들을 소녀 외할아버지의 목선을 이용해 마을로 데리고 오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룻배는 노를 저어 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니 별장 관리인에게 부탁하여 동력선인 목선에 나룻배를 묶어서 바지선처럼 끌고 마을로 돌아오도록 했다고 전해주었다.


마을로 바로 돌아가지 못하고 무인도에 정박한 아이들은 짬을 내어 별장 관리인과 해녀들로부터 전설의 섬에 관한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옛날에 전설의 섬 부근에서 많은 사람들이 주검으로 발견되기도 했는데 실종자 한 명은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주었다. 해녀들은 전설의 섬과 관련해 새로운 소문도 살짝이 귀띔을 해주었다. 바다 밑 깊은 곳에는 심해 해구가 있다는 것이었다. 세계에서도 내노라는 깊은 해구이며 그 주변에서 당시 조업하다가 실종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는 소문이었다. 그곳은 주변에 섬이 많은데 옛날에도 전란이 일어났을 때 유달리 그 섬을 이용하여 왜선들을 섬멸했던 곳이라고도 했다. 특히,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 보물선이 태풍을 만나 침몰한 적도 있어 깊은 심해 해구에는 갯벌 속에 귀한 보물들도 많이 묻혀 있다는 얘기가 떠돌았다고도 했다. 아이들은 해녀들이 말하는 소문이 처음 듣는 얘기라 신기해하기도 하고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묻기도 하였다.

"보물선이 침몰했다면 많은 보물들이 묻혀 있었겠군요?"

"값비싼 도자기들도 묻혀 있었을까요?"

"고려나 조선시대는 청자나 백자가 유명했으니 그런 보물이 그곳에 묻혀있었다고요?"라고 하며 아이들은 보물선과 보물에 많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우리도 보물을 찾으러 가면 안 될까?"하고 석이가 농담처럼 말했다. 그러자 해녀들은

"섬 주변에서 이상한 일들이 많이 생길 때 보물을 찾는 배들이 외국에서 왔다는 소문도 있었다네."

"외국에서요?"

"그러면 보물을 캐기 위한 도굴꾼들의 각축장이 되었을 수도 있었겠군요."라고 하며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다. 그러자 별장 관리인은

"모르긴 해도 그 당시 보물선을 독차지하려고 서로 이간질도 하고 조업하는 사람들을 일부러 밑에서 귀신처럼 끌고 물속으로 들어갔다는 소문도 나돌았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인지는 모르지만."이라고 하며 말끝을 흐리자 아이들은 귀를 쫑긋하여

"해녀들도 물귀신들이 잡아갔어요?"

"머구리들이 그랬다는 소문도 무성했다지."

"머구리가 뭐예요?"

"왜놈들이 산소 호수를 연결한 잠수부를 그렇게 불렀지."

그 당시 머구리는 일본말로 모구리 즉, 잠수[ もぐり( 潜り)]나 자맥질하는 사람들을 일컬었다. 별장지기와 해녀들의 말속에는 왜인들의 노략질에 대한 원망과 저주가 깔려있는 것 같기도 했다. 별장 관리인은 말을 이었다.

"과거에 조선통신사가 다니다 침몰하기도 했다던데 그 배를 찾으려고 그랬는지 바다 밑으로 도굴꾼들이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는 얘기도 있었고···."

"머구리들이 물속에 살 수도 있어요?"

"머구리는 물속에서 오랜 시간 산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물속 귀신이라는 소문도 무성했었지."

"왜, 조업하는 사람들을 물밑으로 끌고 들어갔을까요?"라고 하며 아이들은 궁금해 죽겠다는 시늉을 하며 물었다.

"아마 보물선 도굴꾼들이 그 해역에 불안을 조성해 사람들이 무서워서 접근하지 못하게 하려고 그랬겠지···."라고 하며 관리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

"어쨌든 도굴꾼들이 수작을 부려서 그런지 크고 작은 재앙들이 자주 생기니 사람들은 그 섬 옆으로는 조업을 나갈 수도 없었고···, 쯧쯧쯧······." 하며 별장 관리인은 그 당시를 회상하며 안타까운 듯이 혀를 차며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별장 관리인과 해녀들의 이야기처럼 신비의 섬 주변은 그쪽 해역의 심해에 깊은 해구가 있어 물살이 세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아이들은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전란이 발발했을 때 왜구를 섬멸하는데 이용되었을 정도로 물살이 매우 심하게 소용돌이쳤다는 것이나 보물선이 침몰하기도 하였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모래톱 마을 어부들이 조업하다가 다수가 실종되었을 당시에 바다 밑 갯벌에 묻혀있는 그 보물선을 도굴하려는 무리들이 몰려들어 어떤 장난을 쳤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일부러 물귀신처럼 어부들을 실종시키기도 했다는 소문도 전해지고 있다는 얘기는 정말 놀랄만한 일이었다. 모래톱 마을 어른들은 전설의 섬이 노하여 마을에 재앙과 같은 일들이 생겼고,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해신제도 지내고 있었는데 해녀들의 이야기는 영판 다른 이야기였다. 미신이나 신앙심과는 전혀 관계없이 단지 보물선이나 보물을 도굴하려는 사람들의 술수 노략질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아이들은 실종된 사람에 대해서 별장지기나 해녀들에게 이것저것 궁금한 점과 그 사람들에 관한 소문의 자초지종을 묻기도 하였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하였다. 아마도 아이들에게 말을 잘못 전하여 모래톱 마을 사람들의 오해를 사거나 좋은 관계에 금이 갈 수도 있기 때문에 말조심을 하는 것 같았다. 소녀와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불현듯 그 실종자와 어젯밤 섬에서 아이들을 쫓아왔던 사나운 짐승이 연관되어 스쳐 지나가는 듯하였다. 아이들은 별장지기와 해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궁금한 점을 어느 정도 해소한 것 같았다.


폭풍이 지난 바닷가는 한여름의 태양이 내리쬐고 바닷가에는 잔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오고 밀려갔다 하였다. 한 바탕 휩쓸고 간 폭풍의 잔해 속에 언제 그랬냐는 듯 잔잔한 바다가 아이들을 부르고 있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지난 일들을 모두 잊고 바닷가로 달려 내려가 물장구를 치며 이리저리 모래사장을 달리며 뛰놀기도 하였다. 여름방학이 되어 가족 휴가나 탐험대 활동으로 아이들이 함께 모여서 놀지도 못했는데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는 한 때를 보내었다. 아이들에겐 언제나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 같았다. 한 순간에 긴장되고 두려웠던 모든 것들잊어버리고 맘껏 놀 수 있는 순간이 다시 찾아온 것이었다. 그래서 어른들은 삶에 쉽게 찌들지 않고 마음에 못이 박히지도 않으며 순간순간 자유로운 영혼이 되기도 하는 아이들의 세상,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물놀이를 마치고 돌아온 소녀는 바다 건너 수평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단이도 챙길 것을 챙겨놓고 소녀 옆에 다가와서 나란히 서 있었다. 두 아이는 바다 너머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와 단은 지난 이틀 사이에 있었던 숱한 일들타임머신을 타고 되돌려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별장지기와 해녀들이 들려준 소문들이 몹시 궁금했던 소녀는 읍내에 있는 도서관에서 신문이나 간행물을 열람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당시의 신문을 들춰보며 전설의 섬 부근에서 발생했던 사고와 관련된 기사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옛날 신비의 섬 인근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파헤쳐보고 전설의 섬에 살고 있었던 짐승에 대해서도 밝혀보고자 마음먹었다. 마을로 돌아가면 아이들은 일체 다른 이야기는 입밖에 내지 않기로 약속하고 소녀와 단이가 주도하여 탐사활동을 이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소녀와 단이가 새롭게 알아낸 것이 있으면 수시로 강나루 연못가 쉼터에서 모두 만났을 때 서로 이야기하며 조사한 내용도 해주기로 했다.  



오전에 잠깐 휴식을 취한 아이들은 별장에서 점심을 얻어먹고 오후가 되어 모두 동력선인 목선에 올라탔다. 이제 따뜻하고 다정다감한 부모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틀 사이에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고  마을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표정에는 기쁨과 걱정이 순간순간 교차하였다. 탐험대가 전설의 섬에 상륙하였지만 아직 정체를 다 밝힌 것이 아니었기에 마을이 안고 있는 어둠의 그림자를 걷어내려는 의지도 엿보이는 것 같았다. 나룻배는 목선 뒷부분에 묶여 바지선이 인양되듯이 서서히 끌려가고 있었다. 어젯밤 폭풍우를 만났던 바다와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전설의 섬을 지그시 바라보며 아이들은 각자 알 수 없는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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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별장지기와 해녀들로부터 어떤 소문들을 들었으며, 탐험대의 활동은 어떻게 전개될지 앞으로의 이야기를 상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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