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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꿈 May 08. 2022

문명에서 조금 비켜 걷는 출근길

내가 만드는 공간의 일상



'문명(文明)의 이기(利器)'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래전에 자주 들었말이죠. 문명이 절정에 이른 지금은 좀처럼 듣기 어려운 말이 된 것 같기도 해요. 문명의 이기란 문명의 발달에 의해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여러 가지 편리한 도구나 기구. 자동차, 비행기, 텔레비전, 컴퓨터, 스마트폰 따위를 말하죠. 요즘은 디지털 기기가 주는 편의의 뒷면에는 부작용도 심각하여 디지털 디톡스라는 말도 유행하고 있는 것 같군요. 더욱이 다가올 미래에는 자율주행차나  AI, 로봇 등 새로운 문명의 이기도 등장한다고 하니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듯해요. 이런 생각이 저만의 노파심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요.


문명에서 조금 비켜 산길과 숲길을 택해 출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저랍니다. 저와 같은 또 다른 사람들도 아침에 자주 만나기도 합니다. 아마도 그들도 저와 생각이 같을지도 모르겠군요. 어쩌면 문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디지털 디톡스의 또 다른 현상은 아닐까요. 아니면 균형과 조화를 찾으려는 몸부림일까요. 어쨌든 버스에서 내려 바로 목적지로 향하지 않고 산길로 접어들어 그냥 마음이 가는 숲길을 지나 자연스럽게 걷습니다. 걷다가 시간이 남으면 작은 봉우리의 둘레길도 걸어보고, 저 멀리 보이는 높은 산이나 친근한 강도 바라보다가 좁은 길을 따라 내려갑니다.


둘레길이 있는 작은 봉우리는 오봉산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오봉산은 동네에 있는 자그마한 산인데 봉우리가 다섯 개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주변의 지역명으로 무정리가 있고, 해림사라는 절이 던 산을 오지봉(五指峰)이라 하였는데 오봉산의 다른 이름이라고도 합니다. 오지봉의 유래는 다섯 손가락으로 거문고를 타고 춤을 춘다는 무정(舞亭, 춤추는 정자)이 있었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네요. 이름의 유래를 떠올려보니 옛사람들의 모습도 스쳐 지나가는군요.


오봉산 둘레길을 걷다 보면 아래쪽에 학교 건물들이 여럿 보입니다. 인문 도서관도 보이고 초중고등학교들도 모여있는 곳이죠. 그 옆에 조금 떨어져 오봉산 자락에 바짝 붙어 있는 터는 넓으나 아이들은 적은 학교가 하나 있습니다. 숲길을 따라 그곳으로 출근을 합니다. 산 중턱에서 내려오다 보면 도심 속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다양한 감각을 체험하게 됩니다. 목적지도착하기까지 오감을 되살릴 수 있어 좋습니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등 오감을 체험하는 문명에서 조금 벗어난 길이죠.


산 중턱에서 먼저 눈요기를 합니다. 봄에는 꽃들이, 여름이면 녹음이, 가을이 오면 단풍이 숲길을, 또 겨울이 오면 낙엽과 앙상한 가지들이 길을 반겨줍니다. 문명의 이기 속에서 해독을 갈구하며 균형과 조화를 체감하는 거죠. 디지털 기기에 중독된 듯한 침침한 눈을 즐겁게 하고 맑아지게 하죠. '몸이 백 냥이면 눈이 구십 냥’이라는 말이 있듯이 숲으로 힐링이 된 눈은 세상에 찌든 온몸을 맑게 지배하게 되죠. '일 더하기 일은 이'가 아니고 오십이나 백이 되는 걸 직접 체험하게 됩니다.


눈요기만 있지 않습니다. 옛말에 귀를 씻는다는 말이 있는데 숲길을 접어들어 산 중턱을 내려오면 그런 표현이 떠오릅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들을 수 있는 닭 울음소리가 들려와요. "꼬끼오! 꼬끼오!" 닭들이 날개를 휘저어며 훼를 치는 소리도 덩달아 귀를 씻어줍니다. 공작새의 움직임을 느끼게 하는 소리도 들리고 닭장 안에서 서로 쫓고 쫓기는 모습을 상상하게 하 소리도 들려옵니다. 또, 어미 염소의 울음소리와 새끼 염소의 울음소리도 뒤섞여 호응하며 들려옵니다. 산새들의 지저귐은 또 얼마나 맑습니까. 그런 소리들을 들으며 숲길을 내려오다 보면 절로 맘이 편해집니다. 일부러 정신을 맑게 하려 애쓰지 않아도 그냥 몸도 마음도 새로워지고 맑아집니다.


조금 더 내려오면 나그네를 부르는 손길도 있어요. 산기슭 오솔길에서 먼저 손짓하는 잎들이 향기를 뿜어내어 부릅니다.  향기는 매연에 찌든 코를 정화시켜주고 신선한 공기를 온 몸속으로 불어넣어 주죠. 매캐한 문명의 이기 속의 공기에 익숙했던 후각은 순간적으로 새로 태어납니다. 갑자기 새것이 되는 거죠. 순식간에 일어납니다. 숲 속을 걸어보세요. 지금 당장! 공감이 되실 겁니다. 이처럼 숲이 주는 깊은 호흡은 습한 녹음으로 수분을 내뿜어 나그네를 힐링시키기도 합니다. 요새 말로 탄소중립을 실현한다고 해야 할까요. 하하하.


오솔길을 걷다 보면 새순도 보입니다. 금방 나온 듯한 연초록 나뭇잎을 살짝 쓰다듬어 보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기도 하죠. 이른 아침 숲길에서이처럼 촉감도 감지됩니다. 숲에 사는 이름  모를 곤충들의 활동도 파노라마처럼 선명합니다. 좁은 오솔길을 걷노라면 이마에 거미줄이 걸리는 느낌을 수시로 체감합니다. 밤새 여러 활약 해온 곤충들의 움직임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군.


미각도 느낄 수 있을까요. 입에 침이 고인다면 그건 곧 미각이겠네요. 식당 밥을 기다리는 맘은 이미 입속에 미각을 느끼게 합니다. 숲길을 다 빠져나오기 전인데도 말이죠. 모든 아이들이 기다리는 급식입니다. 정성이 가득하니 그런 것 같아요. 숲 속에 어울리는 식단으로 아이들의 건강을 챙기니 꼽사리 끼어 맛있는 식사를 제공받기도 하네요. 좋게 보면 다 좋은 일이죠. 긍정의 힘은 무한하니까요.


오늘도 연둣빛 길을 따라 천천히 내려옵니다. 오감 체험을 하고 교실에 앉습니다. 초록이 싱그러운 창문을 통해 들어오네요. 아까 지나온 길을 떠올리니 실내에서도 오감 체험이 계속 이어지는 듯해요. 생각은 자유이니까요. 창밖을 내다보는 아이들도 같은 맘이기를 소망해 봅니다. 가끔씩 틈을 내어 '이런 학교도 있어요!'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네요. 멋진 아이들과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을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군. 틈을 만들어 오늘 하루, 문명의 이기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 보세요. 딴 세상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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