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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꿈 Jun 08. 2021

아이들의 글 쓰는 힘 기르기

글쓰기 노트  활용 사례


글쓰기는 머리로만 쓰는 것이 아니다.
...
 시간이 제약되어 있고 글을 써야 한다는 간절함까지 곁들여져야 비로소 글은 쓰인다.


요즘엔 백일장이나 글짓기 대회 같은 것도 없고 주변에서 글을 쓰고 있는 아이들을 좀처럼 보기도 어렵다. 그런데 학원 차를 기다리거나 무슨 활동을 하다가 중간에 틈이 나면 스마트폰이나 게임기 같은 것에 머리를 박고 뭔가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들은 어디서든지 볼 수 있다. 이런 사회적 현상이 말해주듯이 차분히 생각을 가다듬어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을 요즘 아이들에게서 상상한다는 것은 어쩌면 세대차를 드러내는 것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글쓰기는 멀리하거나 싫어하는 활동 중의 하나여서 아이들이 글과 담을 쌓고 지내게 된 지 오래다. 옛날에는 붓으로 글을 쓰기도 하고 잉크를 펜에 묻혀 펜글씨를 쓰며 글자의 모양도 뽐내고 글을 쓸 기회가 많았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에게 글쓰기 기회는 디지털이라는 쓰나미가 덮치면서 본의 아니게 빼앗겨버린 꼴이 되어버렸다. 아니 빼앗겼다기보다는 아예 처음부터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경험을 제대로 갖지 못했다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 '글쓰기 노트'라는 것을 만들어 글쓰기를 평소 생활 속에서 실천해 보기로 했다. 글쓰기 훈련을 통해 '창의적이고 논리적이며  설득력 있는 사람이 된다면 인간의 잠재 역량이 극대화될 수 있다.'라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평범한 가정에 따른 것이다.  무엇을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그것을 강요한다는 것은 그것을 시키는 사람도 힘들겠지만 그 일을 당하는 아이들은 더 힘들기 마련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글쓰기에도 왕도는 없는 것 같다. 세계 최고의 대학 중의 하나인 하버드에 '150년 하버드 글쓰기 비법'이라는 것이 있는 것을 보면 글쓰기가 머리로만 쓰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글쓰기도 훈련이나 숙달이 필요한데 여기서는 OREO 즉, Opinion(의견) - Reason(이유) - Example(예시) - Offer/Opinion(제안/의견 강화) 등 일정한 순서대로 글을 쓰는 훈련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유명한 작가나 글쓰기 달인인 강사도 아이들의 글쓰기 지도법을 이해하고, 왜 글을 써야 하는지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할 수는 있겠지만 아이들의 글쓰기 힘을 장담하기에는 무리가 따를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이들의 학습환경이나 자라온 지난 시간들 속에서 어떻게 글과 함께 지내왔는지에 따라 글을 대하는 자세는 물론이고 글쓰기 수준이나 능력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무슨 일이든 힘들 것이라고 짐작되거나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예측되는 일을 시작할 때는 그 일을 시작하기 전에 서로의 공감대 형성은 물론이거니와 철저한 준비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그 일을 통해 얻게 될 보람이나 성과에 대해 쌍방 모두의 확신이 서 있을 때 처음에 의도했던 목표 달성의 성공 가능성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모든 과업이 다 그렇듯이 글쓰기의 힘을 기르는 것도 무작정 시작하는 것보다는 반드시 해야 하는 다른 목적이나 과업들과 조화를 이루며 삶 속에서 천천히 편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여건이나 환경을 조성해 어야 한다. 그래야 어떤 힘이든 자연스럽게 생기기 쉬울 것이고 순풍에 돛 단 듯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배우고 익히는 활동을 할 때 좋은 교육이란 '순풍에 돛 단 듯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도록 하면 된다. 따라서 평소의 생활이나 자연스러운 삶 속에서 글의 소재를 찾기도 하고 그 속에서 뭔가를 배워가는 것을 염두에 두며 아이들의 에너지나 열정이 집중되도록 해서 글쓰기 지도를 하는 것이 좋다. 아이들이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글쓰기뿐만 아니라 어떤 사소한 공부도 몰입이 수반되지 않고서 고비를 쉽게 넘어설 수 있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먼저, 글쓰기 노트를 만들고 아이들의 수준에 맞는 글의 종류나 소재를 찾아 준비했지만 아이들은 그런 것을 알아채지 못한 채 노트에 주제에 따라 글을 써나가게 하였다. 그랬더니 처음에는 예상했던 대로 대부분의 아이들이 한 문장을 시작하는 것조차 어려워하며 멍하니 앉아서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하루의 시작인 짧은 아침시간에 글은 쓰지 않고 머뭇거리고 있는 아이들에게 글의 소재를 던져주기라도 하면 어떤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주제로 바꾸어 글을 쓰겠다는 경우도 있었고, 어떤 아이들은 던져준 주제에 맞게 써 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지나다니면서 슬쩍슬쩍 노트를 보면 글을 써 내려가는 양이나 글의 짜임 등은 서로 큰 차이 없이 지지부진 그 자체였다. 그런 아이들의 태도를 우리말 속에서 떠올려보면 억지로 글을 쓰는 모습이 '주리를 튼다'라는 말로 대신하면 꼭 맞는 장면이 계속 연출되기도 하였다.




며칠 그렇게 하다가 아침마다 힘들어하는 아이들의 글쓰기에 슬쩍 변화를 주기로 했다. 글이 삶이나 생활 속에서 소재를 가져와 자연스럽게 말하듯이 써 내려가면 좋을 같아서 글의 첫머리와 첫 문단은 TV 화면을 보면서 모든 아이들이 같이 써 내려가도록 해보았다. 우선, 하루나 이틀 전에 어떤 활동을 함께 한 경우 그것을 글의 소재로 던져주고 글의 첫머리는 모든 아이들이 같이 써 내려가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화면을 함께 보며 먼저, 교사가 있었던 일을 말로써 설명을 곁들이며 주제에 맞게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아침시간에 그렇게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쩌면 TV 화면 속에 써 내려가는 교사의 글은 생생하고 신선할 뿐만 아니라 아이들 글쓰기의 마중물 역할도 하게 되는 셈이다. 아이들은 글의 시작이 자신들이 했던 활동이기 때문에 기억을 되살려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교사가 그 내용있었던 사실 중심으로 써 내려가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글이 참 쉬워 보이는 것 같았다. 평소에 왼손으로 글을 써서 글 쓰는 것을 무척 힘들어하고 속도도 느려 글쓰기를 싫어했던 아이들도 손에 땀이 나도록 힘을 내어 화면을 따라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글쓰기 노트


며칠 전에 있었던 일 중에서 흥미가 있었거나 관심이 높았던 일을 글로 옮기는 것이니 모두 쉽게 따라서 글을 써 내려갔다. 처음에는 글의 삼분의 일 정도를 써주며 나머지 이어지는 내용을 써보라고 했다. 그리고 그다음 단계는 화면에 보이는 대로만 쓰지 말고 '사실'은 그대로 쓰되 그것과 관련된 '의견'은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거나 바꾸어 쓰는 것이 좋다는 말도 해주었다. 그랬더니 평소에 공책 한 페이지의 1/5도 못 채우고 힘들게 글을 쓰던 아이들이 공책의 절반 이상을 쓰게 되고, 자신이 쓴 글을 신기한 듯이 다시 읽어보는 아이들도 있는 것 같았다. 이처럼 스텝 바이 스텝으로 글을 쓰게 하다가 어느 날부터는 아이들 혼자서 온전히 자기 글을 쓰도록 해보았다. 글쓰기는 대단한 전문성을 갖춰서 쓰는 것이 아니라 그냥 쓰는 것이다. 그리고 꾸역꾸역 쓰는 것이며 엉덩이로 쓴다는 말도 있다.  글쓰기 노트는 이러한 우여곡절을 거치며 하루, 이틀 그리고 1주, 2주를 쓰게 되니 어느덧 아이들이 쓴 글이 제법 공책에 쌓여가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국어 수업에서 다루게 되어 학습주제를 통해 익힌 '글의 짜임' '생각이나 느낌'  '사실괴 의견' '제안하기' '뒷이야기 이어 쓰기' 등을 아이들의 글쓰기에 알게 모르게 양념으로 치게 되니 이제 글쓰기 노트는 '주마가편'이라는 욕심을 떠올리게 되는 것 같다.




코로나 상황으로 중간중간에 원격수업을 하게 되다 보니 글쓰기의 긴장감이 수시로 풀리기도 하여 가끔 아침 글쓰기가 느슨해지거나 흐트러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제 아이들은 매주 2회 정도의 글쓰기는 당연히 하는 일이 되었고, 누가 글을 잘 쓰는지 그렇지 않은지 서로 평가도 가능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글을 써내는 시간도 빨라지고 표정도 힘든 기색이 없이 밝아지고 있는 것 같다. 13가지로 구분되어 글쓰기 노트의 맨 앞장에 붙어 있는 글의 종류에는 아이들이 무슨 글을 썼는지 표시가 되니 글을 골고루 쓰는 습관도 점검할 수가 있다. 모두 같은 수준의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글쓰기에 자신감 즉, '힘'을 가지게 된 것은 매우 큰 성과라는 생각이 든다. 더 나아가 글쓰기를 하는데만 머물지 않고 각자가 쓴 글을 돌려 읽기를 하면서 서로가 힘들여 쓴 글을 읽고, 듣고, 생각을 나누며 글을 쓰고 읽는 활동은 이제 아이들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 굴러가게 하는 모습도 연출하고 있다. 부모들은 글쓰기 노트를 수행평가 자료로 받아보고는 아이들의 글쓰기 수준이 갑자기 크게 달라진 데 대해 고무되어 있거나 글쓰기 활동에 격려의 의견들이 잇따르기도 했다. 그런데 한 아이만 유독 글쓰기가 고통이나 괴로움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있어 다른 아이들과 방법을 달리 적용하고 있고, 나머지 모두는 글쓰기 트랙의 정상 궤도 위에 안착해 가는 느낌이 들어 글쓰기 노트로 글쓰기 힘 기르기의 성공 예감을 미리 짐작해보기도 한다.


글쓰기 활동 참고자료


글을 써내려는 힘은 단순히 글만 쓰는 힘이 아니라 다른 공부를 하는데도 바람직한 영향을 주게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넘사벽'이라는 유행어처럼 글쓰기 힘은 모든 공부 가운데 가장 넘기 어려운 과업일 뿐만 아니라, 최고의 파급력을 가지는 능력인 것 같다. 글쓰기는 자질구레하고 잡다한 여러 가지 공부 습관을 어쩌면 한 방에 통제하는 어떤 힘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아이들이 여러 종류의 공부를 해나가고 있지만 다른 공부들은 짧은 시간이나 가볍게 그때그때 하면 되는 것이 대부분이고 어떤 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딱히 크게 문제가 될 일이 없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글쓰기라는 것은 아이들 속에 뿌리를 내리는 것일 뿐만 아니라 '글을 써내는 힘'을 눈앞에서 바로 보여줘야 하는 활동이어서 몸에 배이게 하거나 익히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 연유로 매우 중요하지만 숙달하는데 까다롭기 때문에 글쓰기는 언제나 우선순위에서 뒤처지기도 다. 그런데 그 힘든 과정을 넘어서게 되면 다른 가벼운 공부들은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쉽게 여겨지고 더 나아가서 공부에 집중하거나 흥미를 갖는 등 공부의 힘이나 기술을 터득하게 되는 것 같다.




요즘은 아이들의 글쓰기 노트를 챙기며 점검을 할 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자전거 타기에 비유하며 어떤 노트는 쌩쌩 달리는 자전거이고 또 어떤 노트는 운동장 같은 넓은 공터에서 안전하게 타는 자전거라는 표현이다. 그리고 아직도 몇몇 글쓰기가 힘든 아이들의 노트는 자전거에 올라타서는 몇 바퀴 굴리지도 못하고 넘어지는 격이라고 표현하면 아이들은 꽐꽐꽐 웃음으로 반응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글쓰기 노트를 세심하게 점검하지 않고 글의 전체적인 모습과 글을 어느 수준에서 풀어내어 써내는지만 보고 넘겼다. 그리고 주로 칭찬을 쏟아내며 자전거에 올라 타 페달을 밟는 아이가 있으면 그 사실을 모두 공유하고 칭찬 샤워를 은연중에 시키며 힘을 북돋워주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한 편의 글이 나오면 글의 대강의 흐름부터 글의 짜임이나 사실과 의견 등 국어와 연관 지어 살펴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쌩쌩 달리는 자전거는 큰 차가 다니는 도로에도 나갈 수가 있으니 신호등이나 교통법규를 잘 지켜서 타야 한단다." "글쓰기 노트가 바르게 가고 있는지 살펴봐야겠다."라고 하면 아이들은 그 말의 의미도 잘 이해하는 것 같다. 어쩌면 그런 잔소리 같은 채근들을 들으며 좀 더 글의 짜임새와 내용에 집중해서 글을 써내겠다는 다짐도 보이는 것 같아 우리 모두가 힘들게 해 온 몇 달간의 노력에 대해 보람을 느껴보기도 한다.




누구든지 글을 쓸 수는 있지만 글쓰기에 왕도는 없는 것 같다.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에서 '대통령의 글쓰기'로 알려진 강원국은 '글쓰기의 두려움을 이기는 법'으로 몰입을 강조하기도 했다. 일단 한 문장이라도 글을 써둠으로써 글쓰기에 착수하고, 어떤 내용을 쓸지 늘 걱정해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즉, 시간이 제약되어 있고 거기에 글을 써야 한다는 간절함까지 곁들여져야 글이 쓰인다는 이야기이다. 글쓰기 달인이라는 분의 말씀치고는 정말 소박하고 겸손한 표현인 것 같다. 하지만 글을 한 번이라도 써 본 사람이라면 그 말이 사실임을 깨닫게 된다. 글쓰기 마감 시간을 정해두고 단 한 줄이라도 착수를 해놓으면 그 글을 이어서 써야 한다는 걱정이나 간절함이 생겨 쓰던 글을 완성하기 쉬운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의 글쓰기도 아침시간이라는 제약 조건을 내걸고 정해진 시간 안에 글을 써내게 하고, 단 한 문장이라도 글쓰기를 시작하게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글쓰기 요령은 가끔 브런치에서 글을 쓸 때 몸소 터득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평소 지하철 통근을 자주 하는 편인데 지하철의 백색소음과 제한된 시간을 활용하기도 하고, 브런치 속 '작가의 서랍'이라는 코너에 글의 소재나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로 몇 줄 남겼다가 나중에 글을 이어서 쓰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이처럼 글쓰기에 있어서 꾸준함이나 간절함은 글을 써내려는 사람에게 동기 부여가 될 뿐만 아니라 힘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글쓰기 숙제를 내지 않고 촉박한 아침시간을 택해 글쓰기를 시키는 것은 부모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측면도 있지만 아이들에게 다급함과 간절함을 주기 위한 숨은 의도도 있다. 한 사람의 교사가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과 그 작용에 따라 아이들의 배움과 성장은 크게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것은 교육의 답을 교실에서 찾아야 하는 까닭이 되기도 다. 글쓰기는 혹독한 훈련이 필요한 과정이지만 글쓰기를 하는 아이들이 그 고통을 잊은 채 즐겁게 글을 써나간다면 최고의 지도 기술을 가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이 제대로 페달을 밟으며 신바람 나게 내달리는 자전거를 타듯이 폼나게 글쓰기를 할 수 있는 그날이 바로 내일이길 바라며 오늘도 소소한 경험을 그냥 글로 남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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