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셀 도큐멘타 15

카셀의 예술 사냥꾼들

Kassel Documenta 15- 카셀의 예술 사냥꾼들

카셀 도큐멘타는 1955년 창설 이후 1960년 2회 전시 후 매 5년 주기로 열리는 국제적인 현대미술 전람회다.

“엄마는 운도 좋아요. 엄마 오는 시기에 카셀에서 5년마다 열리는 국제 미술 전시회가 열린다니 우리 거기 가요.”

솔직히 말하면 나는 미술에 조예도 없고 더군다나 그런 전람회가 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었다. 다방면의 예술에 관심이 많고 좋아하는 지성에게는 굉장한 이벤트였던지 내 여행기간에 맞춰 미리 티켓을 예매하고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워낙에 규모가 큰 행사라 이후에 한국에서 친구가 오면 한번 더 방문을 계획할 정도였다.

인구 20만의 도시, 나치 시절에는 강제노동수용소와 대규모 군수공장이 있던 도시에 5년마다 100일간의 축제가 열리면 세계의 미술 애호가 100만 명이 모여들어 축제를 즐긴다.

마침 관광주간이라 독일 전역에서 9유로 티켓을 발행하고 있었다. 9-Euro Ticket은 독일 정부가 에너지 비용 경감 대책을 위해 6월부터 8월까지 이벤트성으로 도입했는데 한 달간 9유로 티켓으로 전국의 근거리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독일은 우리처럼 교통카드를 찍는 것도 아니고 기사가 표를 일일이 검표하지 않는 대신 불시에 검문을 하고 표를 소지하지 않았을 경우 60유로의 벌금을 문다.) 나도 독일 입국해 구입한 후 이름을 적고 늘 여권과 함께 소지하고 다닌다. 장거리 고속열차는 제외되기에 열차를 세 번 갈아타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3시간을 달려 도착한 카셀은 8월 한낮의 열기만큼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참여 작가만 해도 1500여 명에 대부분 팀으로 참여한 이번 전시회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기반의 현대미술집단 Ruangrupa루앙루파 일곱 명이 총감독을 맡았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인도네시아 공용 쌀 저장고인 Lumbung룸붕. 룸붕의 가치는 독식하지 않고 나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룸붕의 가치와 정신에 관한 것으로 공동체, 전쟁, 차별, 소통 사회문제 등을 말하고자 하는 전시가 대부분이었다.(유색인종이 총감독을 맡은 것은 두 번째이고 아시아인으로 처음 총감독이 된 첫 번째 그룹)


미술 하면 고작 회화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내게 비디오 아트, 설치미술, 조각, 사진, 퍼포먼스 등 장르의 경계가 없는 실험적인 예술행사를 직관하는 것은 지성의 말대로 운이 정말 좋은 기회였다. 그런 소중한 기회를 경험하는 것도 좋지만 여러 가지 느끼는 것이 많았다.

지자체나 주최 측 만이 주도하는 축제가 아니라 카셀 전체가 5년 만에 열리는 축제를 대하는 것에 진심이었다. 도시 이곳저곳에 열리는 전시회를 찾아다니는데 편의를 주기 위해 2일권 티켓에는 교통비가 포함돼 있었고 호텔에서도 무료로 교통카트를 지급했다. 우린 이미 9유로 티켓을 준비했기 때문에 필요 없었지만 좋은 아이디어 같았다. 전시장마다 시민들이 봉사를 하고 함께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시민들은 모두 친절했고 자신들 역시 즐기고 있다는 것을 표정으로 말해주었다.

여러 가지 인상 깊은 전시가 많았는데 역시나 한국 작가 그룹의 전시를 마주하게 되면서 반가움은 배가 되었다. 전시 작품이 주는 인상도 그 의미가 이번 주제와도 잘 어울렸다.

미리 한국 작가들의 정보 없이 <오토네 움 자연사 박물관> 전시장에 들어섰다가 아리랑 노래가 들려와 귀가 번쩍 뜨이는 놀람과 감동이라니. 지성의 의도가 바로 그런 나의 반응이었을 것이다.

한국 초청 작가 프로젝트팀 Ikkibawikrrr 이끼바위쿠르르의 비디오 내러티브 작품 미역 이야기 (Seaweed Story)와 열대 이야기(Tropica Story)를 주제로 한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한국 전쟁과 태평양 전쟁에 관한 전시였는데 “해녀는 사냥꾼이 아니라 농부다”라는 문구가 진심으로 와닿았다. 제주에 여러 번 다녀왔고 해녀들의 물질도 여러 번 봤다. 농부라니, 그렇구나 그녀들은 목숨을 걸고 농사를 짓는 것이구나. 다른 농사는 안 그럴까 내 부모도 평생 흙을 파며 살았다. 땅강아지처럼 흙을 파면 거기서 당신들과 자식들의 의식주가 해결되었다. 농사짓는 행위가 곧 목숨을 보전하는 일이었다.

아리랑은 제주도 하도리 해녀들의 노래였다. 독일에서 듣는 제주 해녀들의 노랫소리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검열된 예술가와 지식인들의 얼굴이 인쇄된 가면을 나무 거치대에 씌워놓은 쿠바 작가들의 검열에 관한 작품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예술이라는 행위가 예술가에게 어떤 의미인지 오랫동안 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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