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과 위험한 사랑

함부로 사랑하지 마



지성의 집 근처에는 헤센 주립 미술 자연박물관이 있다. 여러 번 그 옆을 지나치면서도 지성은 그곳을 안내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 역시 고집하지 않은 것은 지성이 그곳을 그냥 넘어갈 리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지성에 대해서는 영화의 대사처럼 “지성인 다 계획이 있었구나?” 그런 느낌 적인 느낌이랄까.

드디어 그 계획을 실행할 날인가 보았다. 지성이 미술관으로 안내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배경이 되는 신전처럼 웅장한 석조 기둥 사이 괴테상이 먼저 맞이하는 미술관 계단을 걸어 올라간다. 괴테가 아무리 위대한 작가이긴 하지만 미술관에까지? 좀 의아한 부분이었는데 1814년과 1815년 비스바덴에 방문해 박물관 건설에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괴테 탄생 250주년을 맞아 계단이 시작되는 부분에 설치되었다가 관장의 지시에 따라 현재의 위치인 입구 쪽으로 옮겨 설치했다고 한다.

티켓 창구를 기준으로 한쪽은 자연사 박물관이고 한쪽은 미술관으로 나뉘어 있다. 우린 먼저 미술관의 상설전시 공간으로 가 이 지역 컬렉터의 작품을 감상하기로 한다. 이 지역 컬렉터인 F.W.Neess(페르디난트 볼프강 니스)가 기증한 500점 이상의 어마어마한 유겐트 스틸(아르누보) 작품들이 전시 중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들은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가구와 식기류들이다. 도대체 그는 그 많은 예술품들을 무슨 목적으로 수집했을까 싶을 만큼 종류가 다양하고 수적으로도 어마어마했다. 종류를 불문하고 작품 하나가 가지고 있는 디테일과 미적 감각은 장인이 아니라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경지의 것이었다.

컬렉터 또한 분명 유겐트 스틸 스타일의 작품에 매료된 사람일 것이다. 장인과 그걸 알아보는 컬렉터. 그로 인해 후대인들은 잠시나마 아름다움의 경지에 빠져볼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자세히 보기 위해 조금만 다가가도 경보가 울리고 경비원이 쫓아다녀 감상을 방해하는 것은 최고의 흠이었다.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할 거면 차라리 유리를 설치하던지 줄이라도 쳐 놓을 것이지.

다른 전시관에는 Alexei Von Jawlensky(알렉세이 야블렌스키)와 그와 교류한 친구(동료) 회화 작품이 전시 중이었다.

그의 작품은 강렬하고 독특했지만 생애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 가난한 귀족 출신의 그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러시아 쌍테 페테르부르크로 갔다가 러시아 부호의 딸 Marrianne Von Wereffkin(마리안느 폴 베레프킨)을 만나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여자 집안의 반대에 그들은 뮌헨의 집단 창작촌으로 이주한다. 안정을 찾아갈 즈음 러시아에서 여자를 돕기 위해 메이드 인 Helene Nesnakomoff(헬레나 네스나코모프)가 오면서 그들의 불행이 시작된다. 그 자신도 훌륭한 화가였지만 자신의 그림을 포기하다시피 하면서까지 마리안느가 아버지의 유산으로 남자의 뒷바라지를 해줬지만 남자는 결국 메이드와 사랑에 빠져 이곳 비스바덴으로 이주했던 것이다.

남자를 돕기 위해 아버지의 유산이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남자와 법적 부부가 될 수 없었던 여자. 그래서 남자가 메이드와 바람나 곁을 떠나도 어찌할 수 없었던 딱한 아니, 답답하고 한심하기까지 했던 여자. 자신을 희생해 남자를 세우겠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위험한 일이다.

그런 여자의 초상화 하나 그려주지 않은 야박하고 나쁜 남자. 그런데 나는 나오면서 기념품으로 그 남자의 회화가 그려진 에코백 하나 사들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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