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친정엄마는 처음이라

친정엄마라는 낯선 호칭


지난밤 11시에 잠들었다. 갱년기의 나는 여전히 불면증에 시달려 수면의 질이 엉망이다. 그동안 11시에 취침 인사를 하고 내 방으로 들어가도 늦도록 책을 읽었다. 깨어 부스럭거리면 행여 신경 쓰일까 봐 밤엔 물도 마시지 않았다. 저희끼리 살다 누군가 같이 있으면 그게 누구라도 신경 쓰일 것이다. 내 입장에서야 딸보다는 역시 사위가 신경 쓰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쩐 일로 전날은 바로 잠이 들었다. 물론 여러 번 자다 깨다를 반복한 탓에 여전히 말끔하지는 않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하루 8시간 근무를 탄력적으로 하고 있는 마크는 평상시 출근 시간이 빠른 편에 속한다. 올빼미형 인간인 지성과 아침형인 자신이 그렇게 하는 게 둘 사이 더 많은 시간을 공유하는 것이라 판단한 결론이란다. 일찍 퇴근해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자신이 졸린 시간에 지성이 맘껏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한.

마크는 정말 7시에 일어났다. 방문 열리는 소리, 화장실 문 여닫는 소리, 열쇠 꾸러미 소리, 잠시 후 현관문 여닫히는 소리로 마크의 출근을 확인한다. 창문을 열고 마크의 동선을 확인한 후 그제야 살그머니 방문을 열고 나온다.


엄마가 내 집에 와서 사위 눈치를 보면 그게 그렇게 싫었다. 늦게 퇴근하고 일찍 출근하는 남편 잠깐 보는 것도 민망하다고 툭하면 자는 척하고 딸 집에 와 있는 게 자꾸 미안하다고 했다. 엄마는 옛날 사람이라 딸 집이 어려운 거라 생각하면서도 울컥울컥 화를 내고 짜증을 부렸다. “아들 밥은 앉아서 먹고 사위 밥은 서서 먹는다”는 말이 말도 안 되게 불합리한 말이라고 성질을 부렸다. 평생 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산 97세 노인이니 그러려니 하면서도 곰 살 맞고 다정한 사위를 왜 어려워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위를 얻고 보니 이제야 알겠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에, 내 엄마 딸인가 보았다. 문 여닫는 소리조차 내지 않고 거실에 나와 전날의 일을 노트에 정리한다. 지성은 나를 닮아 아침잠 많은 올빼미 족. 나로 인해 곤한 잠이 깨지 않도록 최대한 아직 방에서 자는 척한다.

전날의 여행 에피소드를 다 정리할 때쯤 지성이 일어나 거실로 나온다. 딸과 발코니에서 모닝커피를 마신다. 지성이 정말 어른이 되었구나 싶은 순간은 이렇게 순간순간 찾아왔다. 내가 오지 않았다면 한참 잠들어 있을 시간에 늦잠을 포기한 걸 내색하지 않고 최대한 내게 맞추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외출할 때 내 손에 짐을 들리지도 않았고 식사 때마다 내 물을 꼬박꼬박 챙겼다. 어딜 가나 어린아이 챙기듯 내 손을 잡고 다니고 내가 한눈 팔 때마다 재밌어하면서 미아 될까 무섭다며 더 챙겼다. 그럴 땐 내가 노인이 된 기분마저 들 정도로 세심했다. 지성의 결혼 전에 받아보지 못한 어른 대접이다.

딸이 설거지를 하는 동안 청소기를 돌리다 울컥 눈물이 터져버렸다. 엄마가 내 집에 와서 잠깐이라도 내 일을 도우려 하면 나는 정색을 하고 거절했다. 다 늙은 엄마 부려먹는 못된 딸이 되는 것 같아 욕먹는 짓이라 생각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섭섭해하는 것도 모른척했다. 그런 게 아니었다. 내가 그 입장이 돼 보니 알겠다. 다행히 딸은 아직 세끼 중 저녁 끼니를 기꺼이 내게 부탁하고 제가 하는 집안일에 내가 손 보태는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아직은 그냥 엄마가 편하다, 친정엄마는 내게 어울리지 않는 남의 옷을 입은 것마냥 어색하다. 나도 친정엄마는 처음이라서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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