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 사랑은 장모라고요?
베트남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고 딸 부부가 한 번씩 간다는 펍에 와인을 마시러 갔다. 실내가 텅 비어있어 왜 이렇게 한가로운가 했더니 뒤 쪽으로 안내한다. 실내를 가로질러 뒤쪽으로 갔더니 야외 정원에 손님들이 가득이다. 실내는 비어 있고 어디 가나 야외에 자리만 있으면 경쟁적으로 차지한다. 그건 해가 있는 낮에만 그런 줄 알았는데 밤에도 마찬가지였다.
일 년 중 해를 가장 많이 만끽할 수 있는 여름 한 계절 3개월, 이들은 그야말로 햇빛 사냥꾼(난 농담처럼 햇빛 성애자들이라 했다)들처럼 해 아래 노출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것 같다. 양산을 쓰거나 챙이 큰 모자를 쓰고 선크림을 덕지덕지 처바르는 일은 볼 수 없었다. 사계절 뚜렷한 나라에서 살던 지성이 앞으로 다가올 겨울을 어떻게 견딜지 심히 걱정되는 부분이다.
와인의 고장답게 맛있는 와인 두 잔씩을 마시고 귀가하는 길 나란히 다정하게 걷는 신혼의 둘을 바라보며 걷는 기분이 묘했다.
인연이란 것이 어떻게 작용하여 저 둘이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는지 그저 신비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그저 행복한 꿈에 부풀어 있을 저들도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투고 서로에게 실망하는 날이 있을 수 있을 테지. 끝없이 조율하고 타협하다 지치는 날도 있겠지. 30년 가까이 서로 다른 국적과 환경에서 살아왔는데 너무 완벽하게 맞는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라고 인정하고 출발하는 게 오히려 합리적인 생각이 아닐까.
예부터 사위 사랑은 장모라고 했다. 그 말을 믿어서가 아니라 내 식구가 되려니 그랬는지 처음부터 자식처럼 예뻤다. 처음 만나는, 그것도 외국인인데 낯설지 않았고 오래 만나온 인연처럼 편하고 친근했다. 사위 바보 장모가 될 것 같았다.
장모의 사위 사랑하면 떠오르는 사위질빵이 여기 독일 지성의 아파트 담장에 흐드러지게 피어있어 놀랐다. 첫날 그것을 보고 마치 내 속을 꿰뚫고 나를 환영하는 것 같아 반갑고 어리둥절했다.
오늘 귀갓길 달 아래서 둘에게 장모의 사위사랑이 깃들어 있는 식물 사위질빵의 이름에 대한 유래에 대해 얘기해줬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데 나 역시 마크가 예쁘긴 하지만 장모로서 잘하고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가족이 된 지 이제 겨우 몇 개월, 우린 아직 서로를 향해 눈을 마주치는 것도 어색한 단계가 아닌지.
이 17일간의 동거로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을지. 내가 낳지 않은 남을 내 가족으로, 내 딸의 남편 된 사람을 내 자식으로 받아들이는 일을 어찌 그리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받아들이기보다 자연스레 스며드는 순간을 기다리는 게 더 현명하지 않을까. 그래서 우린 지금 서로에게 스며드는 중이지 않을까. 사위가 나에게 잘 스며들게 하기 위해 나는 지금 나 자신을 최대한 말랑하고 부드럽게 단련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