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나에겐 아직 열흘이 더 남았습니다.

8월 3일 17일간의 여행 마지막 날.

카셀에서 2박 3일의 도큐멘타 관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들러 PCR 검사를 받았다. 검사 후 공항까지 마중 나온 마크의 차를 타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보니 나름 알찬 여행이었다. 애초에 여행을 계획하고 왔다기보다 결혼한 딸 집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딸 집에 처음 방문하는 것에 더 큰 목적을 뒀기에 그간의 여행은 그야말로 선물 같은 것이었다.

귀국 짐을 싸고 더 이상 필요 없어진 남은 유로를 지성에게 주고 내가 마크에게 선물하기 위해 비행기에서 산 위스키도 한 잔씩 마셨다. 지성과 마크에게 그간 고마웠고 신경 쓰이게 해서 미안했고 애썼다고 고마운 마음도 전했다.

귀국일인 8월 4일 아침 7시

마크는 자택 근무를 신청해서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 업무 중이었다. 내 비행 출발 시간이 오후라 근무를 마치고도 여유가 있다고 했지만 더 서두르는 듯했다. 나는 그동안 아침마다 해오던 전날 일기를 정리하고 있었다.

“엄마, 큰일 났어, 엄마 오늘 못 가, 양성이야.”

전날 PCR 검사를 받았지만 그때까지 아무런 증상도 없었다. 말로만 듣던 코로나 무증상 감염이었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고 누가 내게 찬물을 한 양동이 들어부은 것처럼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코로나 시대 2년 넘도록 무사히 넘어갔는데 하필 이 시점에, 이 낯선 나라에서? PCR 검사 음성 확인서가 없으면 한국 입국 불가였다. 당장 비행기 표부터 변경해야 했다.

곰곰이 생각해봤다. 어디서 감염됐을까? 독일은 대중교통 외엔 거의 마스크를 하지 않았다. 실내에선 착용하라고 했지만 거의 자율에 맡기는 분위기였다. 우리도 실외에선 그들처럼 마스크를 벗었지만 식당이든 어디든 실내에선 열심히 마스크를 착용했다. 그럴 때마다 눈치 아닌 눈치를 봐야 했다.

카셀 행 열차를 타고 갈 때가 떠올랐다.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보니 열차 승무원과 승객이 말씨름 중이었다. 누군가 노 마스크인 승객을 신고한 모양이었지만 그 승객은 승무원의 제지에도 끝까지 마스크 착용을 거부했다. 결국 다른 차량으로 이동해 가는 것으로 일단락되는 것을 보며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했었다.

얼마 전 한국에 있는 막내도 확진 소식을 알려왔었다. 내가 없는 동안 확진되어 꼬박 자가 격리하면서 힘들었던 얘기를 나눴다. 다행히 내 방문 전에 지성과 마크도 확진이 된 후 회복한 상태라 감염 위험은 낮다고 했다. 그래도 혹시 모를 재감염에 대한 걱정과 내가 부주의했다는 자책감에 어찌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복잡하고 화가 났다. 생각할수록 절로 눈물이 났다. 그때까지 무증상이더니 결과를 알고 나서 갑자기 조금씩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행히 심하지 않은 일반적인 감기 증상이었다.

오후에 장을 보고 온 마크가 내게 꽃다발을 안겨줬다. 그러면서

“엄마, 기분이 좋으면 병이 더 빨리 나아요, 엄마의 기분이 좋아져야 해요.”

그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어떻게 기분이 안 좋을 수가 있을까.

독일의 격리 기간은 5일이다. 어쩔 수 없이 집안에서 5일을 견뎌야 한다. 이 좋은 날씨에 독일이란 낯선 나라에서 격리라니 말이 되나? 하지만 말이 되고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나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공공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지켜야 했다. 여유 있게 열흘 뒤로 비행기 표를 변경하고 나의 코로나 격리가 시작되었다.

방에 틀어박히거나 최대한 접촉을 피하고 내리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다행히 지성의 책이 많아 오랜만에 맘껏 독서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어느새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가지지 못했을 귀한 시간을 갖게 된 것이라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와 있는 17일간 둘만의 시간이 아쉬웠을 지성과 마크 외출도 시켰다.

매일 아침 자가진단키트로 검사를 했다. 야속하게도 어김없이 두 줄이 나타나 실망스러웠다. 그렇게 하루하루 애타게 보내고 6일째 되는 날 아침 자가진단 키트에 더 이상 두 줄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나는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는 순간이었다.

워낙에 많은 확진자가 보고되고 시기만 다를 뿐 누구나 감염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차라리 빨리 걸리고 홀가분해지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도 부지기 수였다. 나 역시 그런 알량한 마음이 들만큼 개인 방역에 신경 쓰는데 지쳐가던 참이었다. 당분간은 재감염의 위험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 홀가분하기까지 했다.

“엄마, 코로나에 걸린 건 유감이지만 기쁜 소식이 있어. 코로나로 2년 동안 열리지 못한 와인 축제가 곧 열릴 거야. 엄마는 출국 전 3일간 이 지역 와인 축제를 즐길 수 있다는 말씀이죠.”

딱 맞춰 5년 만에 열리는 카셀 도큐멘터에 이어 3년 만에 재개되는 와인 축제까지? 며칠간 자가진단키트의 선명한 두 줄을 보면서 비운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우울했던 기분은 실종되고 순식간에 기분이 산뜻해지는 소식이었다.

이전 10화이방인으로 산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