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린, 서로를 키워가고 있는 것일지도.
순무를 임시보호하던 날, 다짐했다.
따뜻한 집과 맛있는 밥, 순무가 멋진 주인을 만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사랑을 주겠노라고.
결국 그 멋진 주인은 나였다. 똥개와 함께한 지 4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순무를 키우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가 순무에게 길들여지고 있는 걸까?
원래 규칙적인 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며, 아침은커녕 점심도 건너뛰기 일쑤였다.
순무가 온 후, 내 하루 일정이 완전히 바뀌었다. 주말 아침 8시, 눈꺼풀이 3톤쯤 되는 기분으로 침대에 누워 있는데, 순무가 나타난다. 그리고 아주 정교한 발차기로 내 머리를 강타한다. 이건 거의 종합격투기다.
덕분에 졸린 눈을 비비며 기어나와야만 한다.
산책도 마찬가지다. 원래 나는 집순이 중에서도 최상급 집순이였다. 순무 덕분에 하루 한 번 강제 운동을 하게 되었다. 처음엔 귀찮아서 모른 척했지만, 순무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조그마한 발로 내 다리를 툭툭 치고, 슬픈 눈빛을 장착하고 나를 올려다본다. 그 눈빛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 돌처럼 단단한 심장을 가진 자뿐일 것이다. 결국 나는 운동화 끈을 묶으며 패배를 인정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부지런한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같은 길을 걸어도 나는 스마트폰을 보며 걷지만, 순무는 모든 순간을 오감으로 만끽한다. 가로수 냄새를 맡으며 한참을 서 있고, 바람에 날리는 낙엽 하나에도 열렬한 관심을 보인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바쁜 척하며 주변을 지나쳐 왔을까?
언제부터 자연의 작은 변화들을 당연하게 여겼을까?
순무는 기쁘면 온몸으로 표현하고, 속상하면 세상 끝난 것처럼 처량해하다가 금방 잊어버린다. 반면 나는 기쁘면서도 괜히 무덤덤한 척하고, 서운해도 쿨한 척한다. 사실, 순무처럼 솔직하게 사는 게 더 건강한 삶이 아닐까? 순무는 늘 진심이니까.
이쯤에서 어린왕자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하게 되는 거야.
너는 나에게 이 세상 단 하나뿐인 아이가 되는 거고, 나는 너에게 이 세상 단 하나뿐인 여우가 되는 거지."
어린왕자와 여우처럼, 순무와 나는 서로를 길들였다. 순무는 나에게 생활 패턴을 길들이고,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가르쳤다. 나는 순무에게 맛있는 밥을 주고(가장 중요한 부분), 따뜻한 잠자리를 마련해 줬다.
밤이 되면 순무는 내 옆에서 조용히 코를 골며 잠든다. 피곤했을 것이다. 하루 종일 나를 감시(?)하고, 사랑을 가르치느라. 나는 이 작은 친구에게 무엇을 주었을까? 그리고 순무는 내게 무엇을 주었을까?
아마도, 우리는 서로를 키워가는 중일 것이다.
어린 왕자가 여우를 길들이고, 여우가 어린 왕자를 길들이듯이.
그 길들여짐이, 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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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솔직히 말하면… 순무가 나를 더 잘 키우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