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가 필요해
내 인생에서 가장 치열했던 싸움 중 하나는 체급 8kg, 네 발을 가진 상대와의 한판 승부였다. 그렇다, 바로 우리 집 강아지 "순무"와의 대결이다. 순무는 작은 몸집에도 불구하고 자존심 하나는 태산 같았다. 처음에는 그 귀여운 눈망울과 통통 튀는 걸음걸이에 홀려 “아, 이 아이와 나는 평생을 함께할 운명이야!”라고 생각했는데… 몇 번의 치열한 전투(?)를 치른 후, 나는 이 관계가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으리란 사실을 깨달았다.
평화로운 저녁이었다. 맛있는 소고기 등심을 구우며 "오늘도 고생했어, 나 자신!"이라며 한 입 베어 물려던 순간, 내 옆에서 시선을 강렬하게 보내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순무.
“안 돼, 이건 언니 거야.”
순무는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연기력을 발휘하며 눈물을 머금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강하게 키워야 했다. 갑자기 순무는 기습 작전에 돌입했다. 내 팔을 툭치더니 떨어지는 등심 조각을 순식간에 낚아채더니, 초고속으로 거실 반대편으로 도망쳐 "우걱우걱" 먹어치웠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야!!”라고 외쳤다. 그 순간 순무는 식사를 중단하고 나를 힐끔 쳐다봤다. 그리고는 다시 우걱우걱…
나는 깨달았다. 아무리 소리쳐도 순무는 나의 분노를 ‘배고픔에서 비롯된 소리’쯤으로 이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스코어 0:1
뭉치는 산책을 좋아했다. 아주 많이. 하지만 문제는 순무는 원시인이라는 것이다. 원시인이란 내가 아무것도 몸에 걸치기 싫어하는 순무에게 지어준 별명인다. 산책을 나갈 시간이 되면 순무는 하네스를 하기 싫어서 도망간다. 순무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을 하네스 목구멍에 쏙 넣고 순무가 입을 넣기를 기다린다.
또다른 문제는, 내가 산책을 끝내려 할 때 벌어진다.
그날도 산책을 마치고 아파트 자동문 앞에서 똘이가 뒷다리를 단단히 버티며 들어가길 거부했다.
"이제 집에 가야지."
"..." (더 놀 거야!)
나는 간식을 흔들며 설득했다.
"자, 이거 먹고 집에 들어가자!"
"-_-" (안 통해!)
심지어 그는 귀를 닫은 듯이 들은 척도 안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머, 강아지가 정말 가기 싫은가 봐요"라며 웃으며 지나갔다. 아니, 이건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나는 고민 끝에 최후의 수단을 꺼냈다.
"순무야, 연어 먹으러 가자!"
순무는 눈을 번쩍 뜨고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물론 연어간식은 없었고, 나는 속으로 ‘이걸 또 속네…’ 하며 안도했다. 결국 1:1으로 내가 승리했지만, 순무의 눈빛을 보니 복수를 꿈꾸는 듯했다.
스코어 1
거실에 놓아둔 내 새 운동화 한 짝이 감쪽같이 사라졌고, 순무의 침자국이 찍힌 채 소파 아래에서 발견된 것이다. 나는 순무를 불러 심문했다.
“너 이거 물어갔어?”
순무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아주 느~리게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마치 ‘그게 무슨 소리지? 난 아무것도 모른다만?’ 하는 표정이었다.
“이거 네 침 묻었어. 증거 있어.”
나는 신발을 들고 흔들었고, 순무는 갑자기 앞발을 핥기 시작했다. 이건 100% 유죄다. 하지만 강아지는 말을 못하니까, 나 혼자 추궁하는 셈이었다.
“네가 그랬다고 말하면 간식 하나 줄게.”
이때 순무의 눈빛이 반짝였다. 간식이라는 단어를 이해한 것 같았다. 순무는 갑자기 내게 다가와 내 얼굴을 핥았다. '아니, 지금 회유하는 거야?'
나는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이게 아니라 네가 신발을 물고 갔냐고!”
그러자 순무는 귀를 쫑긋 세우더니 갑자기 바닥에 드러누웠다. 네 발을 하늘로 뻗고, 배를 내보이며 ‘난 죄 없는 강아지’ 모드 발동!
나는 말싸움에서도, 감정싸움에서도, 심지어 협상에서도 완벽하게 졌다.
내가 아무리 논리적으로 따져도, 순무는 듣지도 않고, 순식간에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어버렸다. 인간과 달리, 개는 실수를 인정하지도 않고, 변명도 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최선으로 만드는 데 집중한다.
나는 한숨을 쉬며 신발을 치웠다. 그리고 간식을 하나 꺼내 순무에게 건넸다.
“그래. 네가 이겼어.”
순무는 반짝이는 눈으로 간식을 받아먹더니, 아주 태연하게 꼬리를 흔들며 소파 위로 뛰어올랐다.
강아지와 대화가 가능했다면 어땠을까? 말이 통하지 않아서 다행일까? 아니면 말이 통하면 더 즐거울까?
스코어 1:2
이렇게 하루하루 반려견과의 ‘협상’과 ‘전투’를 반복하면서,
하지만 확실한 건, 대화가 없어도 우리는 매일 소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콩이의 눈빛과 몸짓을 이해하려 하고, 콩이는 나의 말과 톤을 감지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화보다 더 중요한 건 ‘간식’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 후로도 나는 콩이와 여러 번 싸웠지만, 결국 이긴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떠랴. 어차피 나는 반려견의 충직한 집사일 뿐이니까.
반려견과 싸운 순간들은 모두 어처구니없으면서도
반려견과 싸운 순간들은 모두 어처구니없으면서도이렇게 하루하루 반려견과의 ‘협상’과 ‘전투’를 반복하면서,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강아지도 우리와 대화가 필요하다.” 물론 말로 하는 대화는 어렵겠지만,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소통 방식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순무도 나름대로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고, 내가 그걸 잘 알아듣지 못할 뿐이었다.
결국, 반려견과의 전쟁에서 이기는 길은 싸움이 아니라, 대화를 배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괜찮다. 어차피 결국은 간식이 이길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