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예쁜 희생양

어린 시절에 경험한 미국인의 두 얼굴

by 김혁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시골동네에 미국 선교단체에서 세운 병원이 있었다. 당시 대도시에서도 보기 드문 꽤 큰 병원이었다. 그 병원에는 몇 명의 한국인 의사와 함께, 개부슨이라는 이름의 미국인 의사가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깊슨이었는데, 발음이 너무 생소하고 어려워서 그만 개부슨이 된 것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안보는 데서 그를 개부랄이라고 부르며 킬킬거리곤 했다.

아버지는 병원에 집사 겸 관리인으로 취직해서 잡일을 도맡아 했다. 그리고 닥터 개부슨을 우상처럼 받들었다. 늘 ‘우리 딱터 개부슨 선상님’을 입에 달고 살았다. 누가 병원에 대해 싫은 소리나 욕을 조금만 해도 아버지로부터 아주 혼쭐이 났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 무렵에, 내가 하늘같은 아버지와 닥터 개부슨에게 크게 대든 사건이 있었다. 집에서 기르던 새끼 양 한 마리 때문에 벌어진 돌발적인 사건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당시 시골에서는 자아넨 산양을 기르는 집이 더러 있었다. 나라에서 적극 장려한 덕분이었다. 어머니는 집안일과 텃밭 일을 하는 틈틈이 돼지도 키우고, 어미 양 한 마리를 길렀다. 그리고 저녁마다 젖을 짜서 사이다 병에 담아 몇 군데 배달을 하고, 남는 것은 식구들이 먹었다. 양젖은 누린내가 좀 나기는 했지만, 소금을 약간 치면 우유보다 더 고소하고 맛있었다. 특히 풀 냄새가 향긋하게 배어 있어서 마실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나는 시간이 나는 대로 양을 돌보았다. 집 근처 풀밭에다 매어 놓았다가 저녁 무렵에 끌고 오는 일도 나의 몫이었다. 오가는 길에 여학생들을 만나면 창피하기도 했지만, 마치 대단한 양치기 목동이라도 된 듯 으쓱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자아넨 산양은 머나먼 알프스가 원산지라고 했다. 나는 양을 돌보면서, 동화책에서 본 흰 눈 덮인 신비로운 알프스 산맥과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생각하기도 했다.

어미 양은 우리 집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눈이 부시도록 새하얗고 솜처럼 보드라운 털을 가진 새끼를 한 마리 낳았다. 새끼 양은 너무나 예쁘고 앙증맞았다. 그래서 형제들도 틈만 나면 서로 갖고 놀려고 다투곤 했다. 나는 정성껏 새끼를 돌보았다. 새끼 양도 어미한테 달려가서 젖을 빨아 먹을 때만 빼고는 방안 여기저기를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며 우리를 잘 따랐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자, 새끼 양은 살도 토실토실 오르고 울음소리도 제법 우렁찬 것이 숫양의 모습을 조금씩 갖추기 시작했다. 나도 수시로 먹이를 갖다 주고 털을 빗겨주는 등 더욱 정성을 기울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달려가 살펴보았고, 학교에서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정이 듬뿍 들고 말았다. 난생 처음 길러보는 동물이라 더욱 애틋하였다.

“하이고, 늬 에미 애비를 그리 보살피믄, 효자라고 온 나라 안에 소문이 자자하것다, 야!”

어머니는 못마땅한 얼굴로 이렇게 자주 핀잔을 주었다.


그럴 즈음, 우리 지역에 세계적인 유명 인사의 방문이 예고되었다. 병원을 설립한 종교단체의 우두머리가 우리나라를 찾아온 김에 병원도 방문하기로 예정돼 있었던 것이다. 우리 지역으로서도 매우 큰 행사였다. 그래서 시내 여기저기 대형 플래카드도 내걸고, 그 밖의 여러 가지 환영 행사준비를 하였다.

병원 측에서도 최고의 귀빈인 만큼 최선을 다해서 접대 준비를 했다. 그리고 마침내 방문 날짜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한 가지 커다란 고민이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그 우두머리가 새끼 양 요리를 좋아해서 하루에 한 끼는 꼭 그걸 먹어야 하는데, 시골이라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태어난 지 3, 4개월 된 새끼 양을 반드시 구해 오시오!”

드디어 병원 직원들에게 특명이 떨어졌다.

“이거야 원,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양 새끼를 우리가 어떻게 구하냐구유!”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드니, 참말로 환장하것네!”

“근디 그 대장인가 뭔가 하는 냥반, 식성 한번 되게 별나구먼유.”

“누가 아니랴, 하필이먼 양 새끼 괴기를 그리 즐겨 먹는댜?”

“아, 우리도 돈 있는 냥반들은 소보다 송아지 괴기를 더 좋아한다잖여.”

“그런가유? 그나저나 양 새끼를 어디 가서 구한대유?”

직원들은 모이기만 하면 이렇게 걱정을 하면서 쑥덕거렸다. 그런 와중에, 늦게사 얘기를 전해들은 아버지가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걱정들 마시우! 우리 집에 양 새끼가 한 마리 있으니께!”

“뭐유? 그기 참말이유?”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럼유. 집에서 키우는 양이 몇 달 전에 새끼를 한 마리 낳았단 말이유!”

“허허!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참말로 잘 됐수, 잘 됐어!”

직원들은 모두 손뼉을 치며 기뻐하였다.

“까짓 거 내 기꺼이 희사하리다!”

아버지는 내친 김에 흔쾌히 새끼 양을 바치기로 약속하였다.

“우리 딱터 개부슨 선상님이 그렇게 귀한 손님을 대접한다는디, 어찌 그 돈을 받을 수가 있겠수? 오히려 내가 영광이니께, 그리 알고 지발 좀 그냥 받아 주시우!”

그렇게 해서 그토록 애지중지하며 키우던 새끼 양이 그야말로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며칠 후, 그런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던 나는 학교에서 오자마자 새끼 양한테로 갔다. 하지만 우리는 텅 비어 있었다.

“어머이, 새끼 양 어디 갔어유?”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부엌에서 저녁밥을 짓고 있는 어머니를 찾았다.

“글쎄--- 아부지가 바람 좀 쐬이려고 끌고 나간 거 같은디---.”

어머니가 말꼬리를 흐렸다.

“그래유? 어디로유?”

“밥이 거진 다 됐으니께, 해찰하지 말고 어여 들어가서 밥이나 먹어라. ---마침 늬가 좋아하는 고등어자반을 좀 혔다, 야!”

어머니는 딴청을 피우며 억지로 내 등을 떠밀었다.

나는 동생들과 둘러앉아서 저녁을 먹었다. 하지만 신경이 곤두서서 그런지 그토록 좋아하는 고등어자반구이도 맛이 없었다. 그리고 저녁밥을 다 먹고 한참이 지나도 아버지는 새끼 양을 데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문득 불길한 생각이 든 나는 방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와, 나도 모르게 병원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날이 벌써 어두워 캄캄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온통 불을 환하게 밝힌 가운데 내일 올 귀빈 맞을 채비로 분주하였다. 그리고 잘 아는 직원으로부터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조금 전에 닥터 개부슨의 사택에서 아버지가 새끼 양을 잡는 것도 봤다고 했다.

‘아아, 이럴 수가!’

순간 가슴이 철렁하면서 눈앞이 캄캄하였다. 그리고 두 다리에 맥이 빠져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곧이어 지금껏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엄청난 분노가 가슴 밑바닥에서 치밀어 올라왔다.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벌떡 일어섰다. 이미 제 정신이 아니었다. 이성은 완전히 마비되고, 내 안에 분노만 가득했다. 두 눈에서 뜨거운 분노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제 아버지고 닥터 개부슨이고 전혀 안중에 없었다. 주위의 모든 어른들이 너무나 추악하고 혐오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닥터 개부슨의 사택 주변을 맴돌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야, 이 나쁜 놈들아!”

“내 새끼 양 내놔라!”

“그렇게 어린 새끼를 잡아먹는 것들이 인간이냐!”

“어글리 맨!”

“어글리 개부슨!”

“어글리 아메리칸!”

그러나 아무리 고함을 질러도 누구 하나 대꾸하지 않고 철저하게 침묵으로 대응했다.

나는 그렇게 한 시간 가량을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그리고 화를 참지 못해 밤늦게까지 동네를 맴돌다 집으로 돌아와서 아버지를 정면으로 쏘아보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돌아앉아서 담배만 태웠다.

나는 윗방에서 서럽게 흐느껴 울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잠결에 아랫방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누는 얘기를 어렴풋이 들었다.

“쟈가 저리 날뛰는 거 첨 봐유. ---괜찮을까유?”

“허허, 참! 그깟 노무 양 새끼 한 마리 가지고 뭘 저리 유난을 떠는 지, 원!”

“그래도 쟈가 그리 이뻐했는디, 맘이 많이 아프것지유.”

“쯧쯧, 사내놈이 저리 용해 빠져서 어따 써 먹을랑가 모르것네!”

“어른들한티 욕하고 대들었다고 너무 나무라지는 말어유.”

“괘씸하긴 하지만, 홧김에 그런 거니 워쩌것어. ---그라고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을 테니께 걱정 말어. 다 그러다 마는 겨.”

(하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그때의 분노와 배신감과 허탈감은 아주 오랫동안 가슴 속에 남아서 나를 괴롭혔다.)

다음날, 역 광장에서 환영식이 거창하게 열렸다.

밴드의 요란한 축하연주 속에, 군수를 비롯한 기관장들과 지역 유지가 단상에 자리를 잡았고, 구경나온 주민들과 학생들이 작은 광장을 가득 메웠다 이윽고 유명인사가 나타나자, 사람들은 손에 든 태극기와 성조기를 마구 흔들어댔다. 마치 구세주라도 맞이하는 것 같았다.

군수와 기관장들은 호들갑을 떨며 그를 맞이하였다. 눈부신 금발에다 파란 눈을 하고, 한국인보다 훨씬 크고 당당한 체구를 지닌 유명인사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시종일관 손을 흔들며 친근감을 과시했다. 화환에 둘러싸인 그는 통역을 통해서, 자기는 한국을 무척 사랑하며, 특히 우리 지역을 너무나 사랑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 힘껏 돕겠다고 약속했다. 그 말에 주민들은 더욱 열광하였다.

하지만 어젯밤의 분노가 아직도 가슴속에 가득했던 나는 조금도 신이 나지 않았다. 신이 나기는커녕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광경이 너무도 불쾌하고 역겨울 뿐이었다. 왠지 그의 말과 행동거지가 엄청난 사기극처럼 보였고, 그가 꼭 악당 두목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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