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개의 추억

학교 폭력과 국가 폭력과 제국주의 폭력은 동일하다.

by 김혁

초등학교 시절, 시내 아이들은 방과 후에 주로 오포대 주변에서 놀았다.

로타리 번화가 한가운데 높다랗게 서 있는 망루인 오포대는 뭔가 특별한 느낌을 주었다. 일제 강점기 때 공습을 대비하기 위해 세웠다는 그 높은 철탑에서는 정오만 되면 사이렌을 울려서 시간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어디서 큰 불이 나거나, 현충일에 묵념을 알리거나, 그 밖에 긴급한 일이 있을 때도 사이렌을 요란하게 울리곤 했다.

꼭대기에 달린 스피커를 통해 잃어버린 아이를 찾거나 홍수 경보 등 이런저런 방송도 했는데, 아주 드물게는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 때 밤새 개표방송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철골로 이루어진 괴상한 형상은 언제나 거대한 파수꾼이자 감시자 같은 느낌을 주었다.

집이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나도 간혹 그 아이들 틈에 끼어 놀았지만, 그건 드문 일이었다. 아이들도 각자 노는 집단과 영역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일로 인해 한동안 그들과 한패가 되어야만 했다.


같은 반 친구 중에 오포대 옆에서 정육점을 하는 집 아이가 있었다.

그는 힘도 아주 세고, 싸움도 잘하고, 성격도 매우 거칠어서, 반 아이들을 대부분 휘어잡았다. 반장은 따로 있었지만, 그가 실질적인 반장이었다. 그리고 어디서 나는지는 몰라도 언제나 용돈이 넉넉했고, 주변 친구들에게 먹을 것을 사주는 등 인심도 잘 썼다. 그래서 자연히 친구들이 많이 따랐다.

그는 인상도 고약한데다 몸에서 늘 이상한 냄새가 풍겼다. 꼭 무슨 피비린내 같았다. 아마도 정육점에서 밴 모양이었다. 그의 옆에는 언제나 따라다니며 수발을 드는 친구가 하나 있었다. 말이 친구지 졸개나 다름이 없었다. 아무리 졸개라지만, 친구지간에 어쩌면 저렇게 비굴하게 굴 수 있을까 무척 궁금했다.

그의 아버지도 특이한 사람이었다. 평소에는 지저분한 차림으로 돼지를 잡고 고기를 써는 등 정육점 일을 하다가, 학교 운동장에서 집회만 열리면 양복을 말쑥하게 빼입고 참석했다. 주로 북한 괴뢰도당의 만행을 규탄하는 궐기대회였는데, 엄숙한 표정으로 이마에 띠를 두르고 대열의 맨 앞에 서서 구호를 열심히 외치다가, 궐기대회가 절정에 이르면 앞으로 뛰쳐나가서 비장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쓰곤 했다. 이런저런 직함도 여러 개 가지고 있었는데, 혈서 잘 쓰는 덕에 출세했다고 사람들이 수군대기도 했다.


어느 날 그가 나에게 접근해 왔다. 그리고는 귀가 번쩍 뜨이는 제안을 했다.

“야, 이따 학교 끝나고, 나하고 영화구경 가자.”

“영, 영화구경?”

“응. 영화구경 하고 나서, 맛있는 것도 많이 사먹고.”

그는 주머니에 든 두둑한 돈을 보여주며 유혹을 하였다.

“그래, 좋아.”

당시 아이들에게 영화구경은 가장 강력한 유혹의 수단이었다. 꾐에 빠진 나는 멋도 모르고 무작정 그를 따라나섰다. 그리고 그날부터 오포대 주변의 극장과 빵집과 만화방 등등을 전전하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사흘---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그 탈선의 맛은 너무도 달콤했다. 평소 접하기 힘든 음식도 실컷 먹었다. 그때 맛 본 찐빵, 왕만두, 통닭, 짜장면 등의 맛은 지금도 생각날 만큼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다. 그러다가 나는 어느덧 그의 부하가 되고 말았다.

그는 학교에서나 방과 후에나 나를 수족처럼 부렸다. 실컷 부려먹다가 날이 어둑어둑해져서야 놓아주었다. 이미 노예가 된 나는 그의 명령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하루하루가 지옥과 같았고, 학교가기가 죽기보다도 더 싫었다. 일부러 아프다고 꾀병을 부리며 학교에 가지 않는 날도 점차 늘어만 갔다.

모두가 빤히 보는 앞에서 물을 떠다 바치고, 딱지나 구슬을 깨끗하게 닦아서 챙기고, 필기를 대신해 주는 등 대장의 수발을 들 때마다, 나를 바라보는 반 친구들의 그 냉담하고도 조소어린 시선들은 정말로 견디기 힘들었다. 방과 후에도 마음은 동네 뒷산에 가 있으면서도, 몸은 어쩔 수 없이 대장을 따라다니며 시내 아이들과 한패가 되어 놀아야만 했다.

오포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미군들이 관리하는 통신 중계소가 있었다. 중요한 군사시설인 모양이었다. 미군들은 가끔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웃으면서 미제 껌과 캔디 쵸콜렛 등을 던져주기도 했다. 대장은 틈만 나면 나를 보내서 껌과 과자 등을 얻어오게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죽을상을 하고 찾아갔지만, 번번이 정문에서 수위에게 쫓겨나곤 했다. 어쩌다 몰래 침입에 성공한 날이면, 미군들 앞에서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들은 화난 얼굴로 나가라고 마구 소리치면서도 껌이나 과자를 조금 손에 쥐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장이 느닷없이 우리 동네 뒷산을 가자고 했다. 거기다 멋지게 본부를 차려놓고, 전쟁놀이를 신나게 해보자는 것이었다. 시내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데다, 산도 나지막하고 숲도 적당히 우거져서 시내 아이들도 종종 놀러오곤 했던 것이다.

“야, 늬가 잘 아는 곳이니까 빨리 앞장서라.”

대장과 몇몇 조무래기들은 나를 앞세우고, 마치 대단한 정복이라도 하러 가는 양 굴었다.

‘이거, 큰일인데. 이러다 우리 동네 아이들 본부를 빼앗으면 큰 싸움이 날 텐데---.’

나는 앞에서 얼쯤얼쯤 걸어가며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왠지 예감이 불길했다.

아니나 다를까, 동네 뒷산에 도착한 대장 일행은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다가, 동네 아이들이 골짜기 깊숙한 곳에 비밀리에 만들어 놓은 본부를 발견하였다.

“야, 여기 멋진 데가 있네. 이제부터 여기가 우리 본부다!”

대장은 멋대로 본부를 접수하였다. 그리고 앞으로 있을 전투에 대비한다면서 나뭇가지를 꺾어 무기도 만들게 하고, 이런저런 작전을 짜는 등 진짜 지휘관처럼 굴었다. 그동안 숱하게 봐 왔던 반공 영화를 그대로 흉내 낸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소식은 금방 전달되었고, 동네 형이 아이들 몇 명을 데리고 득달같이 달려왔다. 급기야 본부를 사이에 두고, 두 진영이 긴박하게 대치를 하였다.

“야, 늬들이 뭔데, 우리가 만든 본부를 떡 하니 차지하고 앉아서 난리냐, 응?”

나보다 두 살 많은 동네 형이 대뜸 눈을 부라리며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여차하면 한판 붙을 태세였다. 그는 덩치도 크고 인상도 험악해서 장비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뭐라고? 이게 늬들 거라는 증거라도 있냐? 있으면 어디 한번 내놔 봐라.”

대장도 지지 않고 대거리를 했다. 시장바닥에서의 숱한 싸움 경험 때문인지, 전혀 기가 죽지 않았다.

“원래 우리 거니까 우리 거라고 하지, 괜히 그러겠냐?”

“원래가 어디 있냐. 먼저 차지하는 놈이 임자고 장땡이지.”

“이 새끼들 이거, 말로는 안 되겠네---. 근데 야, 늬가 왜 거기 있냐, 응?”

동네 형이 나를 보면서 매서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나더러 설명을 하라고 했다.

“마침 잘됐다. 늬가 한번 말해 봐라. 이 본부를 누가 만들었는지. 그리고 누구네 건지.”

“------.”

“빨리 말 안 할래, 응?”

“하, 할게. 사실, 우리가 만들긴 했지만---, 근데, 거 머시냐---, 서로 사이좋게 사용하고---, 전쟁놀이도 같이 하고---, 시내 애들도, 알고 보면---, 다 좋은 애들이고---, 싸우면 서로 손해니께---.”

나는 양쪽 눈치를 보느라 겁에 잔뜩 질린 나머지, 뜻 모를 말을 밑도 끝도 없이 계속 옹알거렸다.

“야, 너, 이 새끼! 이쪽으로 빨리 안 뛰어 올래, 응?”

마침내 동네 형의 분노가 폭발하였다.

“안 돼! 절대 가지 마! 가면 넌 나한테 죽는다?”

대장은 옆에서 종주먹을 쥐고 나를 협박하였다.

중간에 낀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양 쪽 눈치만 살피며 엉거주춤 서 있었다. 두 다리에 힘이 쫙 풀리면서 몹시도 오줌이 마려웠다. 그렇게 두 진영 간에 전쟁이 막 터지려고 할 때, 호랭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주 무서운 산 주인 할아버지가 어떻게 알았는지 지게 작대기를 들고 달려오면서 고함을 질렀다.

“야, 이 못된 놈들아!”

“내 산에서 썩 물러나지 못할까!”

그 바람에 동네 아이들, 시내 아이들 할 것 없이 본부고 뭐고 다 팽개치고 꽁지가 빠져라 줄행랑을 쳤다.


그날 이후로, 나는 더욱 초라하고 불쌍한 졸개가 되었다. 동네에서도 배신자라고 왕따를 당하고, 대장으로부터도 더욱 심한 구박을 받았다.

이제 대장의 덫에서 빠져나오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호소할 수도 없었다. 어린 마음에도 그러기에는 너무나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죽기 살기로 한판 붙어볼까 하는 마음도 여러 번 먹어보았지만,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힘으로나 싸움 실력으로나 그에게 상대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집에 들어가기만 하면, 날마다 늦게 들어온다고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처음엔 이런저런 변명도 해봤지만, 나중에는 그것도 통하지 않았다. 그렇게 재미있던 영화도 보기가 싫었다. 탈출구는 어디에도 없었고, 희망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잠도 잘 오지 않았고, 밤마다 몸뚱이가 갈기갈기 찢어져서 정육점에 고깃덩이처럼 매달리는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제 모든 게 다 끝났다. 나는 곧 죽을 것이다---.’

그렇게 몇 개월간 지옥과도 같은 절망과 고통 속에 시달리다가, 다행히도 그에게 새로운 부하가 생기면서 겨우 헤어날 수 있었다. 매사에 어리숙하고 굼뜬 나보다 눈치 빠른 한 친구가 대신 희생양이 되었던 것이다. 비록 덫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되기는 했지만, 심리적 고통과 불안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트라우마가 워낙 심했던 터라 회복이 그리 쉽지 않았다.

그리고 초등학교 졸업 10주년 기념 모임에서 오랜만에 그를 다시 만났다.

옛날과 달리 그는 몸집도 나보다 작고 행색도 초라해 보였다. 술이 몇 순배 돌자 나는 옛날 얘기를 작심하고, 그러나 무심한 듯 꺼냈다. 하지만 그는 그때 재미있었지 않았느냐면서, 나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인심을 썼던 것뿐이라며, 아름다운 추억이었노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언젠가는 단단히 복수를 하리라 결심했던 나의 마음은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여기저기서 학교폭력이라는 말이 들려올 때마다, 문득문득 그의 얼굴이 떠오르며 온 몸에 소름이 돋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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