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혁명과 포르노
놀자와 두 친구는 옛날에 즐겨 보았던 포르노 잡지와 비디오 얘기를 계속 흥미진진하게 이어갔다. 그쪽 방면에도 남다른 식견이 있던 놀자는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참으로 오랜만에 다들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며 한참을 낄낄댔다.
“참, 놀자야. 너 옛날에 성인용 비디오 만드는 회사에도 다니지 않았어?”
백수 친구가 놀자를 바라보며 불쑥 물었다.
“넌 또 왜 친구의 감추고 싶은 흑 역사를 새삼스럽게 들추고 그러냐?”
은퇴 친구가 감싸는 척하면서 두 사람의 눈치를 슬쩍 보았다.
“그, 그게 아니고, 선배가 운영하던 조그만 출판사에 어렵사리 취직을 했는데, 거기서 그런 일도 같이 하더라고. 그래서 맡은 바 임무를 열심히 수행한 거지, 뭐! 졸따구가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별 수 있나, 히히!”
무안해진 놀자는 흰머리로 뒤덮인 머리통을 긁적이며 대충 얼버무렸다.
“어쨌거나 늬 덕에 그때 좋은 것들 많이 봤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야!”
“그리고 그 일을 계속했더라면 너도 지금쯤 강남에다 빌딩 하나쯤 가지고 떵떵거리며 살고 있을 텐데, 정말로 아쉽다.”
“예끼, 이 못된 친구들 같으니, 히히히!”
젊은 시절, 놀자가 근무했던 영세한 출판사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성인용 영상물 사업도 병행을 했다. 그 바람에 그는 자연히 남들보다 많은 작품을 폭넓게 접할 수가 있었다. 절대로 개인적인 취미나 과도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었다. 당시 출판사 사장은 입만 열면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본격 성인물을 갈망하는 수많은 청춘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무작정 외면할 수만은 없다!’면서 뻔뻔한 변명을 늘어놓곤 했다.
그런데 시절이 하 수상해서, 전두환 독재정권이 우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3S(스포츠 스크린 섹스) 산업을 적극 장려하는 바람에, 성인용 영상물 사업이 크게 번창하였다. 그가 주로 하던 일도 책 원고 교정에서 에로 비디오 교정으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어렵사리 취직한 출판사를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 속으로는 은근히 즐겼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비록 무명이긴 했지만, 시인으로서의 감수성이 가장 예민하게 살아있던 그때, 그가 밤을 새워가며 심혈을 기울여서 수정하고 편집하고 이름 붙인 수많은 에로 비디오들은 출시할 때마다 강호의 목마른 늑대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중에서 몇 개는 전설적인 명작으로 인정받아, 아직도 그 바닥에서 늙다리들 사이에 널리 회자되고 있는 실정이다. (간혹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옛날을 회상하며 그런 얘기를 할 때마다, 그는 자발 머리 없는 뿌듯한 자부심과 함께 심한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곤 한다.)
이제 와 돌이켜 보면, 그는 B급 장르 부문에서 꽃 피울 재능을 타고났으면서도, 되지도 않는 순수예술을 한답시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아까운 재주만 다 썩힌 셈이었다. 그래도 결코 후회가 들지는 않았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예술가로서 자존심만큼은 올곧게 지키며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늬들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 알지?”
놀자가 뜬금없이 무슨 변명이라도 늘어놓으려는 듯이 말했다.
“그럼, 대충은 알지. 권력을 가진 제왕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권력을 행사하라고 가르친 아주 고약한 정치 사상가잖아. 나 같이 선량한 사람은 현직에 있을 때 아무리 따라 하려고 해도 못 하겠더라고, 하하!”
은퇴 친구가 너스레를 떨었다.
“나도 그렇게 따라 했더라면 사업에 크게 성공했을 텐데 말이야. 근데 갑자기 마키아벨리는 왜?”
백수 친구가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궁금해했다.
“권모술수의 대명사로 알려진 마키아벨리도 알고 보면 참 불쌍하고 훌륭한 사람이더라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이탈리아가 작은 공국들로 분열되어 다투던 난세에 태어난 그는, 피렌체 공화국에서 젊은 나이에 실력을 인정받고 고위직에 올라 외교에서 아주 뛰어난 활약을 했지만, 공화국이 왕정으로 뒤집히는 바람에 반역자로 몰려 혹독한 고문으로 죽을 고비를 겨우 넘기고 쫓겨나 가난과 멸시 속에 살면서, 출세를 위해 심혈을 기울여 <군주론>을 써서 당대의 최고 권력자에게 바쳤으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찬밥 신세로 떠돌다, 말년에는 엉뚱하게도 섹스 스캔들을 주제로 한 코미디 작가가 되어 마침내 전 유럽에 이름을 크게 떨쳤다네.”
“허허, 온갖 권력을 다 누린 아주 악독한 인물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런 파란만장한 사연이 있었구만. 왠지 인간적으로 동정이 간다, 야!”
“그가 <군주론>을 쓴 진짜 이유도, 난세에 유능한 지도자가 나와야 백성들 삶이 안전하고 편해지니까, 힘 있고 능력 있는 지도자를 위한 통치력 연마용 교과서로 쓴 거래.”
“그래? 그게 사실이라면, 아까 우리가 얘기한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참신한 해석, 즉 위에 있는 지도자는 물처럼 선을 행해야 한다는 덕목을 실천할 지도자를 위한 지침서라고 할 수 있겠네.”
“그렇지. 지도자가 무조건 많이 베푼다고 해서 선한 게 아니라, 국방을 튼튼히 하고, 부정부패가 생기지 않도록 하고,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도록 잘 통치하는 게 진정한 선이라고 할 수 있지. 무능하고 우둔하고 우유부단한 지도자야말로 백성들에게 가장 해악을 끼치는 나쁜 지도자지. 우리도 얼마 전에 익히 경험해 봤잖아.”
“그런 그가 어쩌다가 섹스 스캔들을 주제로 코미디 작품을 쓰게 됐을까?”
“말년에 할 일이 없어서 시골 동네 과부와 노닥거리다가 심심풀이로 썼는데 그게 그만 대박이 나서, 살아생전에 군주론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고, 코미디 작가로만 널리 알려졌대.”
“그거 정말 코미디 같은 일이로 구만, 하하!”
“마키아벨리가 코미디를 쓴 것도 당시 세태를 풍자하기 위한 방편이었지. 그리고 그가 쓴 것 중에서 <만드라 골라>라는 작품은 얼마나 재미있고 뛰어난지, 지금도 유럽 각지에서 인기리에 연극으로 상연되고 있다네.”
“허허, 그 양반 참 재주도 많은 양반일세, 그려!”
“힘없고 가진 것 없는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철철 넘치는, 그야말로 상선약수를 몸소 실천한 멋진 사상가라고 할 수 있지, 히히히!”
이탈리아는 고대 로마 때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성애 문학에 대해 유구한 전통이 있었고, <데카메론>이라는 훌륭한 교과서가 있었기에 마키아벨리의 이런 작품도 나올 수 있었다. 프랑스 또한 결코 뒤지지 않았다. 뒤지기는커녕 심지어 역사 발전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기폭제가 된 것도 사실은 <사회계약론> 같은 거창한 책이 아니라, 당시 크게 유행하던 포르노 소설이나 로맨스 소설들이라는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가 있어.”
놀자가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허허, 그건 또 무슨 궤변이야?”
은퇴 친구가 놀라서 눈을 둥그렇게 떴다.
“하여간에 우리 놀자는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진기한 얘기들을 참 잘도 물어 와요, 하하하!”
백수 친구는 빙글빙글 웃으며 놀자를 놀려먹었다.
“예끼, 이 친구야. 내가 무슨 똥개냐? 남들이 먹다 버린 뼈다귀나 물어오게, 히히히!”
“그래서 그 전문가의 연구 내용이라는 게 도대체 뭐야?”
“궁금하지?”
“그래. 몹시도 궁금하다, 야!”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민중들이 무슨 책을 많이 읽었는지를 면밀하게 조사해 보니, 볼테르와 디드로 같은 위대한 계몽주의자들이 쓴 포르노 소설이 압도적으로 많았대.”
“허허, 그런 위대한 계몽주의자들이 하필이면 야한 포르노 소설을 썼다니, 이해가 잘 안 가네. 그 이유가 뭐래?”
“그야 당연히 여러 가지를 계몽하기 위해서였겠지, 히히! 포르노라고는 해도 철학과 정치적 주장을 많이 담았으니까, 일종의 계몽 서적이라고 할 수 있지. 점차 커져만 가던 인권과 평등사상을 널리 고취시키고,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풍자하는 데는 포르노 소설만 한 게 없었을 거야. 일단 재미가 있으니까, 강요하지 않아도 널리 읽힌다는 장점도 있었을 테고.”
“아하, 그러니까 발가벗고 보면 상류층이나 하류층이나 다 거기서 거기고, 인간의 본질은 신분과 계급을 떠나서 다 똑같은 것이고, 그러므로 인권은 누구에게나 다 소중하다는 주장을 그렇게 펼친 거로 구만.”
“바로 그거야. 그리고 당시 루소가 쓴 <신 엘로이즈>라는 연애소설은 너무나 인기가 많아서 각 지역에서 시간 단위로 책을 빌려주기까지 했고, 하도 많은 사람들이 봐서 책이 다 너덜너덜해졌대. 그리고 글을 못 읽는 사람들은 책 읽어주는 사람 주위에 모여서 들었기 때문에, 거의 모든 파리 시민이 읽은 셈이라는 거야. 프랑스혁명의 성서라고 일컬어지는 그 유명한 <사회계약론>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이야.”
“인간들이 다 그렇지 뭐. 근데 웬만한 사람은 다 읽었을 정도라니, 정말 대단한 초대형 베스트셀러였던 모양이군.”
“응. 우리말 번역으로 1천 페이지가 넘는 지루하고 방대한 서간체 소설인데, 그것도 다들 짧아서 아쉬워했다네. 그렇게 전 파리 시민이, 신분이 달라서 빚어진 남녀 주인공의 안타깝고 비극적인 사랑에 완전히 몰입해서 함께 울고 웃고 탄식하고 애원하고 분노하고 번민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 감정을 공유하고, 잘못된 사회 제도와 관습과 도덕에 대해 분개하면서 점차 혁명의 분위기가 고조되어 갔다는 거지.”
“와, 프랑스혁명의 열기가 바로 이해가 되네, 하하하!”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라고 할 수 있어. 성리학에 철저하게 짓눌리고 지배당한, 답답하고 편협하고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던 조선 사회에서는 이런 사건이 결코 일어날 수 없었을 거야. 만일 다산 정약용이 포르노 소설을 썼다고 가정해 봐. 어찌 됐을 거 같아?”
놀자가 이번에는 화살을 조선으로 돌렸다.
“헉! 생각하기도 싫다, 야! 당장 대역 죄인으로 몰려서 사약을 받거나, 능지처참을 당했겠지.”
“아마 그랬을 거야. 다산뿐만 아니라 실학자 중에서 아무도 겁이 나서 그런 소설을 쓸 수 없었을 거야.”
“사회 분위기상 아예 쓸 생각조차 못 했겠지.”
”실학을 집대성한 정약용은 부패한 나라를 개혁하려고 평생 애썼지만, 결국 양반들의 기득권 지키기에만 몰두했다고 볼 수 있지. 안타깝게도 인권 평등을 주장한 위대한 계몽주의자까지는 되지 못했어. 당시 조선 인구의 30-40 퍼센트 가까이가 노비였는데, 세계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심각한 신분 차별과 인권유린 문제를 도외시하고서 어떻게 진정한 사회개혁을 논할 수가 있겠어?”
“노비 문제가 그렇게나 심각했어? 그럼 실학이 다 엉터리라는 거야?”
“그건 아니고, 근본적인 대책이 되기에는 한계가 너무나 컸다는 얘기야. 정약용은 노비해방을 주장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지. 목민심서에도 분명히 나와 있어. 영조가 조금 완화한 것을 예전대로 되돌려야 한다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랫것들 힘이 점점 커져서 사회 기강이 다 무너진다고. 그리고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의 구분은 본디 하늘이 정해 놓은 불변의 이치라고---.”
“허허,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네.”
“이는 정약용뿐만 아니라 당시 대표적인 실학자들 모두의 공통된 생각이었지. 그러니 실학이 제대로 꽃을 피울 수 있었겠냐? 결국 나라가 망하게 된 거지.”
“오호라, 조선이 망한 것은 온 백성이 열광하며 읽을 만한 연애소설이나 포르노 소설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구나! 통탄할 일이로고!”
“허허, 이거 펜트하우스 얘기하다가, 상선약수를 거쳐서 여기까지 야그가 흘러왔네. 역사를 반추하는 일은 언제나 힘들어.”
“그러게 말이야. 간만에 너무 떠들었더니 목이 마르네. 어디 가서 시원하게 맥주나 한잔 하자고.”
“그거 좋지. 참, 놀자야! 너도 이참에 참신하고 야한 소설 좀 하나 써봐라. 넌 경험이 많아서 아주 잘 쓸 거야.”
“예끼, 이 쪼잔한 친구 같으니라고! 철 지난 흑 역사를 가지고 또 나를 디스 하겠다, 이거지?”
“뭐, 꼭 그런 건 아니고,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
“좋아, 그럼 나도 늬들 흑 역사를 다 까발린다?”
“어이쿠, 제발 그것만은 하지 말아 줘, 하하하!”
“진즉 그렇게 나올 것이지, 히히히!”
오늘도 목마른 세 명의 늙다리 친구들은 목을 축일 시냇물 아니 약수를 찾아서 거리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