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까마귀 - 삼족오의 비밀
놀자는 태양 숭배자다. 자연을 두려워하던 고대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태양을 살아있는 신처럼 받들어 모신다. 나름대로 도를 추구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도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기도를 하는 일이다. 역시나 자타가 공인하는 신비주의자답다.
놀자가 태양을 숭배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그저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볼 때마다 감격에 겨워서 눈물이 나고, 저절로 고개가 수그러질 뿐이다. 옥탑방에 살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생겨난 자기만의 비밀의식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비밀의식을 수행하다 보니 어느덧 몸에 배어 이제는 종교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오늘도 놀자는 세수를 단정하게 한 뒤, 좁은 옥상에 서서 멀리 빌딩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기도를 드렸다.
“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위대한 태양신이여!”
“오늘도 이렇게 따뜻한 사랑과 희망과 생명과 부활의 에너지를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저희들은 너무나 큰 고통에 빠져 있습니다. 부디 저희들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시고, 이 엄청난 코로나 사태를 극복할 수 있도록 힘과 용기와 지혜를 주시옵소서---!”
기도를 드리면서 태양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태양을 처음 본 듯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오늘따라 태양은 더욱 밝고 힘차게 빛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태양 빛 속에 들어있는, 그 어떤 초고속 전자현미경으로도 보이지 않는 극 초미세 입자들이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날아와서 그의 몸속을 파고들며 마구 간지럽혔다.
“히히, 너희들은 틈만 나면 또 이렇게 장난을 치는구나!”
놀자가 짐짓 나무라는 척하며 말을 걸었다.
“이게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니까 그렇지, 홍홍홍!”
입자들도 지지 않고 맞장구를 쳤다.
“너희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응. 그래야 생명체들이 죽지 않고 계속 살아가지. 안 그래?”
“아 참, 그렇지. 내가 깜빡했어, 히히!”
놀자가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맨 날 가르쳐줘도 까먹네. 바보같이, 홍홍홍!”
입자들이 깔깔대며 놀자를 놀렸다.
“그나저나 코로나 때문에 온 세상이 난리인데, 너희들만 살판이 났구나.”
“그럴수록 더 열심히 웃고 춤추고 노래해야 해. 그래야 힘이 나니까.”
“그건 그래.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아서 문제야.”
“저 하늘에 태양이 저렇게 빛나고 있는데 뭐가 문제야, 홍홍홍!”
“너희들은 참 속도 편하구나. 이 땅 위에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몰라서 그래. 정말 호락호락하지 않아.”
“우리도 잘 안다고. 고난과 환란을 통해서 성장하는 게 생명의 법칙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너무나도 달라졌어. 우리가 바이러스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있는 게 생각할수록 한심해.”
“바이러스를 그렇게 얕잡아 보다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홍홍홍!”
“앗! 미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우리가 환경을 너무 파괴하고 오염시켜서, 잠자코 있던 착한 바이러스를 저렇게 화나게 할 만큼 못되게 굴었다는 얘기야.”
“그건 그래. 맞는 말이고 말고, 홍홍홍!”
놀자는 한동안 태양을 바라보며 명상을 했다. 태양을 계속 바라보고 있노라니, 태양이 약간 거무스레하게 변하면서 둥근 원 주위로 밝은 불기운이 마치 쥐불놀이하듯 빙빙 돌았다. 꼭 개기일식과도 같은 모습이었는데, 천지사방이 어둡지 않고 환한 것이 달랐다.
“참, 너희들이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걸 만들었다는 게 사실이야?”
명상을 마친 놀자가 궁금해서 또 입자들에게 캐물었다.
“사실이고 말고. 당연한 걸 또 왜 물어? 바보같이, 홍홍홍!”
입자들은 틈만 나면 놀자를 놀려댔다.
“그게 아니고, 알면서도 내 머리로는 잘 이해가 안 돼서 그래.”
“이해하고 말고 할 게 어디 있어. 양자보다 훨씬 더 작은 우리가 이 모든 걸 다 만들었다니까.”
“그럼 태양은 또 누가 만든 거야?”
“당연히 태양도 우리가 만들었지.”
“너희는 태양 빛 속에 들어있는 아주 미미한 존재들일뿐이잖아. 근데 어떻게 태양을 만들어?”
“우리가 태양을 만들면, 태양이 또 우리를 만드는 거지, 바보야! 홍홍홍!”
“아하, 그렇구나. 그럼 우리 몸속에 있는 영혼도 너희들이 만든 거야?”
“당연하지. 우리는 물질이자 영혼이고, 영혼이자 물질이니까.”
“아니, 물질과 에너지가 하나라는 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때문에 대충 알겠는데, 물질과 영혼이 하나라는 건 너무 터무니없고 생뚱맞은 얘기 아냐?”
“너희는 영혼에 대해 전혀 모르니까, 이해를 못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야.”
“모르긴 왜 몰라. 내가 이래 봬도 영혼을 울리는 시만 쓰는 그런 시인이라고, 히히!”
“그래? 그럼 어디 그런 시 좀 하나 읊어 봐.”
산다는 건 / 모진 비바람 속에서 남몰래 / 블랙홀을 꿈꾸는 것 / 그 존재하지 않는 심연에다 / 온갖 슬픔과 절망을 다 묻고 / 한없이 떠도는 것 / 그리하여 마침내 / 한 점 때묻은 사랑이 / 천만 송이 연꽃으로 / 곱게 피어날 때까지!
“어쭈, 제법인데? 뭔지 모르지만 막 눈물이 나오려고 하네.”
“이거, 창피하게 또 왜 이래. 하던 얘기나 계속해 봐.”
“그래. 모든 에너지에는 영혼이 깃들어있어. 말하자면 영혼의 겉으로 드러난 그림자가 곧 에너지야.”
“그거야말로 옛날에 원시인들이 믿던 미신 같은 얘기 아냐?”
“너희가 영혼에 대해서 잘 몰라서 그래. 영혼에도 많은 차원이 있어.”
“어떻게?”
“바위처럼 단순하고 낮은 차원에서부터 태양처럼 아주 높은 신의 차원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해. 그리고 인간들의 영혼은 서열상으로 볼 때 중간 정도밖에 안 돼.”
“히히, 점점 알쏭달쏭한 얘기만 하네. 그걸 지금 나더러 믿으라는 거야?”
“믿거나 말거나, 홍홍홍! 한마디로 말해서 우주 전체가 수많은 층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거대한 영혼이라는 얘기지.”
옛날 우리 동이족은 태양 한가운데 금으로 된 까마귀가 산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금 까마귀가 지상의 모든 흥망성쇠를 주관한다고 믿었다. 이를 금오(金烏)라고 하기도 하고, 삼족오(三足烏)라고 하기도 하는데, 중국 신화와 일본 민간신앙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아주 특이한 신앙이었다. 고조선과 고구려를 상징하는 깃발에 삼족오가 그려져 있었던 것도 이런 때문이었다.
“근데 정말로 태양 한가운데 금 까마귀가 살고 있어?”
놀자가 능청스럽게 물었다.
“당연히 살고 있지. 하지만 너희들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거야, 홍홍홍!”
입자들은 한껏 뻐기면서 놀자를 흘겨보았다.
“그건 또 어째서?”
“금 까마귀는 실제로 존재하는 까마귀가 아니라, 거대한 태양의 영혼을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이니까.”
“그럼 태양이 신이라는 거야?”
“당연하지. 태양은 지금 너희가 알고 있는 것처럼, 핵융합을 계속하고 있는 단순한 불덩어리가 아니야. 천지 만물을 만든 최고의 신이야.”
“창조주나 조물주가 태양을 만든 게 아니라, 그 반대라고?”
“응. 지금 당장 태양이 사라져 봐. 세상의 모든 종교와 신들도 동시에 싹 사라져 버릴 거야.”
“결국 태양이 없으면 신도 없다는 얘기네?”
“당연하지. 태양이 없으면 그 어떤 신도 존재할 수가 없어.”
“하지만 우주 전체에서 보자면, 태양도 아주 보잘것없는 그런 존재일 뿐인데, 어떻게 태양이 최고의 신이라고 할 수 있어?”
“맞아. 저 태양도 사실은 하나의 그림자일 뿐이야. 진짜 태양은 따로 있어.”
“그, 그게 무슨 말이야?”
“태양 너머에 진짜 태양이 있는데, 그 진짜 태양은 몇천 배나 더 밝아.”
“히히, 점점 더 황당무계한 얘기만 하는구나. 난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믿거나 말거나, 홍홍홍! 아주 먼 옛날에 태양이 아홉 개 있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지?”
“책에서 읽어봤지. 근데 그건 신화 속의 얘기일 뿐이잖아?”
“단순한 신화가 아니야. 태양이 아홉 층으로 이루어진 걸 말하는 거야.”
“이거야 원, 뭐가 뭔지 통 모르겠구먼. 하기야 현대 물리학의 첨단 이론인 초끈(super string) 이론에서도 우주가 10차원으로 이루어졌다고 설명을 하긴 하더라만---.”
“어쭈, 인간들도 제법인데? 홍홍홍!”
“히히! 너무 무시하지 마. 우리도 아주 멍청하지는 않다고,”
“그래.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모든 존재 안에도 태양이 들어있다는 사실이야.”
“그게 정말이야?”
“응. 우리가 모든 존재를 만들었으니까 당연한 얘기지.”
“불교에서는 티끌 하나에 우주가 다 들어있다고 하던데, 미시와 거시가 결국 하나로 통한다는 그런 얘기야?”
“하나라기보다는, 접속의 차원을 말하는 거야.”
“접속이라니, 무슨 접속?”
“한 알의 먼지가 진정으로 우주와 접속하는 순간, 먼지는 곧 우주 전체가 되는 거지. 한 방울의 물이 커다란 바다와 하나가 되듯이. 그게 진짜 사랑이야.”
“아하, 그래서 남녀가 밤낮으로 붙어서 그렇게 껄떡대는 거구나, 히히히!”
“껍데기끼리의 접속은 아무 소용없어. 우리처럼 알맹이가 중요하지, 홍홍홍!”
”천부경에 나오는 ‘본심본태양(本心本太陽)’이라는 말도 그런 얘기야?”
“바로 그거야. 모든 차원을 다 하나로 아우르는 진정한 마음의 중심을 말하는 거지. 금 까마귀는 결국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어.”
“너희들 말대로라면 저 태양의 태양도 존재하고, 태양의 태양의 태양도 존재하고, 태양의 태양의 태양의 태양도 존재하고--- 뭐, 그런 거야?”
“당연하지. 이제야 얘기가 조금 통하네.”
“와, 아직도 어리둥절하기는 하지만, 그 유명한 파인만도 죽을 때까지 풀지 못한 우주의 비밀이 여기 숨어 있었네! 히히히!”
“쉿! 앞으로 100년 동안은 절대 비밀이야, 홍홍홍!”
“자, 오늘은 이만 안녕!”
“안녕!”
오랜만에 빛의 입자들과 유쾌한 농담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려던 놀자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저 아래서 출근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문득 가슴속이 아릿하면서 커다란 슬픔이 밀려왔다.
“다들 힘들고 어려울 텐데, 그래도 열심히들 사네---.”
놀자는 그들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들었다.
'도덕경 10장에 ‘척제현람(滌除玄覽) 능무자호(能無疵乎)’라는 말이 나오지. 한 나라의 지도자나 위정자들은 백성들을 위해서 꼭 필요한 징검다리나 사다리를 놓아주고, 길을 잘 살펴서 장애물을 없애주고,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없게 하라는 뜻이지. 자고로 정치 지도자들이라면 늘 가슴에 새기고 살아야 할 경구인데, 우리의 현실은 과연 어떠한가?'
문득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중대 재해기업 처벌법>이 떠올랐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법을 만드는가 했더니, 역시나 입법 과정에서 이런저런 입김으로 알맹이는 빠지고 껍데기만 남은 누더기가 되고 말았다. 그 생각을 하니 화가 불같이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울면서 기도를 올렸다.
“태양신이시여! 우리는 지금 노동자들의 살아있는 목숨을 끊임없이 갈아 넣어야 유지되는, 그런 참혹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매일 예닐곱 명씩이나 산업 현장에서 죽어 나가는 이 땅의 노동자들이 너무나도 불쌍합니다. 제발 그들이 더 이상 죽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또한, 그들의 희생과 피땀으로 쌓아 올린 저 추악한 욕망과 탐욕과 위선과 오만과 무지의 바벨탑 위로 천벌을 내려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