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성인의 시대>와 보물선을 찾아서!
태양을 향해 기도를 마치고 옥탑방으로 들어온 놀자는 답답한 마음에 도덕경을 펼치고는 큰 소리로 읽어 보았다.
“드디어 그 유명한 10장이로구나---.”
10장은 도덕경 중에서 가장 어렵다고 정평이 난 부분이었다. 그래서 내로라하는 학자들의 해석도 저마다 중구난방이요 천차만별이었다.
특히 도 깨나 닦는다는 사람들은 ‘그래! 바로 여기야말로 노자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기를 모아 잘 수련해서 어린아이로 돌아가자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라고 환호하며, 자기들 입맛대로 해석해서 이리저리 왜곡하기 일쑤였다. 이 모든 게 다 도덕경의 정치 사회적 의미를 망각한 데서 오는 오류라고 할 수 있다.
놀자도 물론 정확한 뜻을 알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도 닦는 것과 거리가 멀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애민치국(愛民治國) 같은 구절이 들어있는 걸로 봐서는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지혜롭게 잘 다스리라는 얘기가 주제인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앞뒤로 나오는 내용이 잘 연결되지 않고, 엉뚱한 소리가 되기 때문이었다.
놀자는 계속 되풀이해서 읽었다. 읽을수록 답답하던 가슴이 시원하면서 편안해졌다. 그리고 춘추 전국시대 당시 비참하게 생을 영위하던 백성들에 대한 노자의 깊은 연민과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도덕경은 약육강식이 난무하던 난세에, 나라를 다스리는 지도자들에게 주는 올바른 통치 지침서가 아니었던가. 그리고 제발 다음과 같이 다스려달라는 간곡한 당부의 말씀이 아니었던가.
“재영백포일(載營魄抱一)하여 능무리호(能無離乎)리오?”
나라를 하나의 수레에 비유한다면,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많이 가진 사람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신분이 높은 사람이든 낮은 사람이든 다 같이 수레에 태워서, 가능한 도중에 탈락하거나 이탈하는 사람이 없이 길을 함께 가야 하지 않겠는가?
“전기치유(專氣致柔)하여 능여영아호(能如嬰兒乎)리오?”
백성들이 서로 다투고 시기하고 모함하지 않도록, 언제나 일을 공명정대하고 공평무사하게 처리하되, 공동체 분위기를 오로지 부드럽고 친밀하고 화기애애하게 만들어서, 백성들이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천진난만하게 살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척제현람(滌除玄覽)하여 능무자호(能無疵乎)리오?”
백성들이 가는 길에 필요하다면 징검다리나 사다리를 놓아주고, 이것들을 잘 닦고 관리해서 이끼나 때가 끼지 않게 하고, 길이 푹 패이거나 끊어지거나 험하지 않은가 잘 살펴서 수리하고, 백성들이 아무 어려움이나 불편 없이 살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애민치국(愛民治國)하여 능무위호(能無爲乎)리오?”
백성을 사랑하기를 마치 제 몸처럼 사랑하고, 적들이 감히 침입하지 못하게 국방을 튼튼히 하고 백성들이 땀 흘려 일한 만큼 대우를 받고 살림살이가 넉넉해지도록 나라를 다스리되, 아무 욕심이나 사심 없이 무위의 경지에서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천문개합(天門開闔)하여 능무자호(能無雌乎)리오?”
(천문은 대궐문을 일컫는 옛 이름이다. 따라서 천문을 여닫는다는 건 나라의 가장 중요한 일인 인사권과 사법권 등을 집행하는 통치행위를 말한다.) 인재를 골고루 등용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각종 법을 집행함에 데 있어서, 아녀자나 환관이나 소인배들의 사사로운 정과 청탁에 좌우되지 않고, 이를 엄정하게 실행해야 하지 않겠는가?
“명백사달(明白四達)하여 능무지호(能無知乎)리오?”
나라의 크고 작은 정책을 계획하고 실행함에 있어서 백성을 속이거나 정보를 감추지 말고 모든 것을 깨끗하게 공개하고 밝혀서 의혹을 사지 않게 하고, 그럼으로써 관리들로 하여금 백성들을 수탈하거나 이권을 가지고 장난치거나 잔꾀를 부리지 못하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장이부재(長而不宰)하면 시위현덕(是謂玄德)이라.”
우두머리가 되어 이렇게 백성들을 다스리면서도 전혀 군림하거나 갑질을 하지 않으면, 이를 일러 현덕 즉 진정한 덕이라고 하느니라.
놀자는 읽다가 그만 감격해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리고는 늘 그랬듯이 혼자서 얘기를 주고받았다.
“아아, 이렇게 위대한 정치 철학서가 세상에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게 말이야. 나라를 이렇게 다스린다면야 얼마나 좋을까? 세상이 그 얼마나 살기 좋고 평화로울까?”
“그야말로 요순시대와 같은 태평성대가 도래할 거야. 하지만 너무나 꿈같은 얘기야. 안 그래?”
“응. 너무 이상적이라서 실현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다만 이걸 목표로 삼으라는 얘기겠지.”
“그래, 민주주의가 형식적으로나마 어느 정도 실현된 지금도 그런 사회를 기대하기가 어려운데, 그 옛날에는 훨씬 더 요원했을 거야.”
“아니야. 어쩌면 노자가 살던 당시가 지금보다 더 실현 가능성이 높았을지도 몰라. 틀림없어.”
“어째서?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뭐야?”
“역사가 막 시작되기 전에 존재했었다는 <성인의 시대>가 지난 지 얼마 안 되던 때였으니까 말이야.”
“성인의 시대라니, 아주 오래전에 있었다는 요순시대 같은 걸 말하는 거야?”
“응. 특별히 뛰어난 능력으로 집단에 큰 기여는 하지만 권력은 갖지 않았던 그런 걸출한 성인이 지도자였던 시대를 일컫는 말이지.”
“그런 시대가 과연 있기는 있었던 것일까?”
“당연히 있었고말고. 지금껏 여러 자료나 문헌을 통해 전해 내려오는 걸 보면 알 수 있지.”
“그런데 동양에서는 언제나 이상적인 정치 모델로 요순시대를 설정하고, 그 시대로 돌아가자는 복고주의가 주류를 이룬 것이 문제야.”
“맞아. 그런 복고주의가 워낙 오랫동안 강하게 지속되는 바람에, 서구에 비해 정치제도 발전이 뒤쳐지는 결정적 원인이 되기도 했지.”
“동양은 서양처럼 무역이나 상업 중심이 아니라, 농경 위주의 정주 사회였으니까 어쩔 수 없었을 거야.”
“어쨌거나 이처럼 뛰어난 통치 지침서를 엉뚱하게도 도를 닦는 얘기로 해석하다니, 쯧쯧쯧!”
“특히 천문을 여성의 거시기로 해석하는 변태들도 많이 있던데, 그 기발한 상상력에 정말 혀를 내두를 지경이야. 그들의 머릿속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해.”
“아니, 잠깐만! 그거야말로 여성의 존재를 하늘처럼 높이 추켜세우는 얘기 같은데, 페미니즘의 정수로 칭찬받아 마땅한 얘기 아니겠어?”
“예끼 이 사람아, 제발 정신 좀 차려! 옥편을 한 번만이라도 제대로 펼쳐 봤더라면 천문의 뜻이 무엇인지 금방 알았을 텐데, 그게 무슨 망발이냐고.”
“하긴 그래. 기초 지식도 없이 제멋대로 망상을 지어가지고는, 여자 거시기가 열리고 닫히는 것으로 해석하니 기가 찰 일이지.”
“또 천문의 실체가 콧구멍이니 상단전이니 백회혈이니 하고 열변을 토해가면서, 도 수련과 호흡과 기 수련의 요체라고 요란을 떨며 헛다리를 짚고 있는 사람들도 많지.”
“후대에 발달한 도가 학파의 문도들이 노자를 시조로 받들어 모시면서 그렇게 왜곡한 거겠지.”
“다들 참 잘났어, 정말! 히히히!”
요즘 한국 토지주택공사가 부동산 투기의 온상이었다는 뉴스 때문에 국민들의 엄청난 공분을 사고 있다. 나라의 땅과 주택에 대한 정책을 가장 엄정하게 관리 감독하고 집행해야 할 공직자들이 오히려 개발 정보를 이용해서 투기를 했다니, 그야말로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통째로 맡긴 격이었다.
“허허, 이런 놀음판의 유명 타짜들이 넙죽 엎드려 큰 형님! 하고 절을 할 놈들 같으니. 우째 이런 일이 다 있나, 그래.”
“어쨌거나 재주들도 참 좋네.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만 불쌍하구먼.”
“도덕경에 제아무리 백성들을 위한 주옥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한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놀자는 너무나 허탈해서 방바닥에 벌렁 누워 한숨만 길게 내쉬었다.
“부동산 투기는 나라를 말아먹는 불가사리 같은 괴물인데, 이를 잡아야 할 인간들이 잡을 생각은커녕 오히려 괴물로 변신해서 땅을 말아먹다니, 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
“하기야 이게 하루 이틀 된 일도 아니고, 몇십 년째 권력층의 비호와 주도하에 저질러진 비리이고, 또 국민들도 어느덧 대부분 불가사리로 변해가고 있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놀자는 한동안 눈을 감고 방바닥에 누워서 울분을 삭이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문득 가까운 친구로부터 커다란 사기를 당해 몹시 고통스러웠던 지난날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우리의 친구 놀자가 처음부터 옥탑방에 산 것은 아니었다. 비록 가난한 무명시인이었지만, 잘 나가던 시절에는 작은 아파트에서나마 평범한 중산층의 삶을 살기도 했었다. 직장생활을 하며 착실하게 모은 봉급에다 대출을 받아서 마련한 집이었다. 그때만 해도 집을 장만하기가 요즘처럼 어렵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호시절도 오래가지 않았다. 집을 장만하자마자 숱한 유혹의 손길이 뻗쳐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본디 세상 물정에 어두운 데다,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오지랖이 태평양만큼이나 넓은 놀자에게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유혹은 언제나 가까운 곳에서 다가왔다.
첫 번째 유혹의 손길은 보물선이었다.
어느 날 친구 하나가 다가와서 은밀하게 투자를 권유하였다. 다름이 아니라, 러일전쟁 때 울릉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러시아 군함을 비밀 탐사 조직이 오랜 노력 끝에 발견했는데, 그 안에 어마어마한 보물이 들어있는 걸 확인했다는 것이었다. 일본 측과 러시아 측에 남아있는 비밀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 전쟁자금 조달을 위한 금괴 운반선이 틀림없다고 했다. 당시 수십 척으로 이루어진 전함 선단에는 자금 조달을 위한 회계 선박이 꼭 한 척씩 끼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그 보물선을 인양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지금 투자하면 나중에 몇백 배의 배당금을 돌려준다고 했다. 사실 강남의 큰 부자들에게만 몰래 투자를 받고 있는데, 거기에다 슬쩍 끼워줄 테니 소액이라도 투자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정보는 극비사항이니 보안을 철저하게 지키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친구야, 넌 역시 내 평생의 은인이야!”
“죽을 때까지, 아니 죽은 뒤에라도 은혜를 잊지 않을게.”
“그리고 앞으로 술값 걱정일랑 조금도 하지를 마, 히히히!”
놀자는 그렇게 대단하고 확실한 사업에 자신을 끼워준 친구가 무척 고마웠다. 그리고 통장에 있는 돈을 다 털고 대출까지 받아서 투자한 뒤에, 한껏 꿈에 부풀어 지냈다.
그날 이후, 눈만 감으면 온갖 보물로 가득한 보물선이 유유히 수평선을 가로질러 다가오는 모습이 아른거렸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고급 술집에서 미녀들에게 둘러싸여 돈을 마구 뿌려대는 자신의 호기로운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서 저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친구들아! 조금만 기다려라. 그동안 받은 은혜를 한 방에 갚아주마!”
“내가 무명시인으로만 끝날 줄 알았지? 나도 한 방이 있는 놈이라고, 히히히!”
“그리고 날 기다리다 목이 빠진 언니들아! 조금만 참아라. 이 오빠가 간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보물선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친구 말에 의하면 작업이 워낙 힘들어서 계속 인양 중이라고 했다. 불안하긴 했지만, 믿고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대형 사기 사건이 터졌다. 바로 그 유명한 러시아 보물선 000호 사건이었다. 놀자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마치 보물선이 천천히 가라앉고 있는 바닷속처럼. 당장 대출금을 갚을 길이 막막했다. 하지만 놀자는 친구를 절대 원망하지 않았다. 친구도 피해자였고, 진심으로 자기를 도우려 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내 팔자에 보물선은 무슨 보물선!”
“그래도 한 번쯤은 기적 같은 행운이 찾아올 법도 하련만---.”
“눈먼 돈도 사람 하나는 기가 막히게 알아보네. 나를 잘도 피해 가는 걸 보면 말이야, 히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