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가라사대(19)

잔인한 4월, 가지 않은 길, 그리고 인사동의 추억

by 김혁

4월도 어영부영 중순으로 접어들고 있다.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4월은 문자 그대로 잔인한 달이다. 곳곳에서 죽었다가 부활하여 화사하게 피어나는 꽃무더기들과 대비되는 엄청난 슬픔과 애도와 고통과 회한의 역사로 점철된, 그리하여 대다수 국민들이 마음 속 깊이 간직했던 가장 슬픈 상복(喪服)을 꺼내 입는 달이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 겨울은 따뜻했었다 /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 가냘픈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 먹여 살려 주었다---’

어쩌면 T. S. 엘리엇의 <황무지>는 우리 한국 현대사를 위한 추도시인지도 모른다.

극악무도한 이승만 정권이 권력을 잡기위해 혈안이 되어 반공이라는 가면을 쓰고 자행한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제주 4.3 사건,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고결하고도 빛나는 저항정신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지만 결국 찬란한 실패와 미완으로 끝나버린 4.19 혁명, 그리고 반세기가 훌쩍 넘도록 분단과 개발독재의 피를 먹고 자란 추악한 수구 기득권 세력들이 자신들의 죗값 대신 수백 명 꽃다운 아이들의 목숨을 속죄양으로 바친 저 4.16 세월호 참척 사건---.

하필이면 왜 이토록 산하가 찬란하게 아름다운 4월에 저런 피비린내 나는 사건이 그리고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비극이 벌어진 것일까. 과연 노자의 말대로 천지는 불인(不仁)이라서,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강아지처럼 취급하는 것일까. 꽃이 피자 비바람이 더욱 거세지는 것이 자연의 냉혹한 이치란 말인가. 어쩌면 우리 한국인들의 핏속에는 역사의 봄맞이를 하고자 하는 특출난 인자가 들어있는 것은 아닐까.


화창한 토요일 오후에, 놀자는 오랜만에 인사동 나들이를 하였다. 인사동에 있는 모 화랑에서 친하게 지내는 지인의 그림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이런 비상시국에 전시회를 열다니---! 저간의 사정을 익히 알고 있는 놀자로서는 지인의 열정이 부러우면서도 가슴 한켠이 짠했다.

인사동은 여전했다. 한참 만에 보는 낯익은 거리 풍경들이 몹시 반가웠다. 하지만 코로나 탓인지, 주말마다 그토록 붐비던 인파가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썰렁했다. 점포 곳곳에 붙어 있는 커다란 임대 안내문도 눈에 띄었다. 임대 자리가 거의 나오지 않거나, 나오더라도 번개처럼 나가던 예전 같으면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외국 관광객들이 도통 들어올 수가 없으니, 인사동인들 별 재간이 있으랴.”

“사실 코로나 이전부터 많이 타락했었지. 독특하고 격조 있는 옛 분위기 대신에 술집과 음식점만 잔뜩 생겨서 유흥가로 변해가니, 누가 좋다고 발걸음을 자주 하겠누, 쯧쯧!”

놀자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시골 노인네마냥 뒷짐을 지고 어슬렁거렸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그렇게 발걸음을 놀리다보니, 오랜 세월동안 여기서 함께 술 마시고 웃고 떠들며 정을 나누었던 친구들에 대한 추억들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 이 동네를 해방구처럼 누비고 다니던 그 많은 시인, 소설가, 화가, 괴짜 사이비교주, 술주정뱅이 개똥철학자, 허풍선이 엉터리 예술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방중술 대가, 자칭 타칭 아나키스트 혁명가, 뻥쟁이 토종 약초꾼들, 친구를 빙자한 꽃뱀과 사기꾼들, 겉만 번지르르 하고 속은 숯덩이처럼 시커멓던 시러베 잡놈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그리고 지금은 다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비록 가진 거라고는 달랑 거시기 두 쪽 뿐이었지만, 그래도 그들과 시나브로 어울리며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냈던 기억들이 떠올라서 놀자는 새삼 눈시울을 붉혔다. 문득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이상야릇한 행각으로 많은 이들의 눈총을 받고 또 입방아에도 오르내렸던 한 여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한때 그런 요망하면서도 멋진 여인이 설치고 다닌 적이 있었지. 꽃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수준이 높고, 행위 예술가라고 하기에는 너무 행동이 야하고 천박했던 그 여인이 오늘따라 무척 보고 싶구나---.”


벌써 오래전의 일이었다. 많은 문인과 예술가 그리고 문화계 인사들이 모이는 인사동을 무대로, 나름대로 독특한 예술적 성취(?)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한 여인이 있었다. 40대 초, 중반의 나이에다 제법 섹시한 외모를 지닌 그녀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고 했지만, 아무도 그녀의 정확한 신원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그림을 직접 보거나 전시회를 구경했다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인사동에서는 누구도 그런 걸 캐묻거나 개의치 않았다.

어쨌거나 그녀는 일주일에 두어 번 한껏 차려입고 나타나서는, 여러 유명 무명 인사들과 어울려 밤새 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며 뭇 사내들의 가슴을 끌탕하게 만들었다. 어디서 어떻게 주워들었는지 아는 것도 많았고, 입담도 꽤나 찰지고 맛깔스러워서 가는 곳마다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어느덧 그녀는 술자리에서 최고의 스타 대우를 받았고, 해질 무렵 그녀가 인사동에 나타나면 서로 데려가려고 난리였다.

당연히 주변의 많은 사내들이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기회만 있으면 어찌해 보려고 수작을 부렸고, 때때로 심하게 껄떡대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보기와 달리 결코 호락호락한 여자가 아니었다. 자신이 점을 찍은 상대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은 있을 수 있어도, 반대로 그렇지 않은 상대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다. 마치 여왕이 신하 중에서 맘에 드는 잠자리 상대를 점지하는 것 같았다.

그랬다. 그것은 그녀가 꾸며놓은 작은 왕국이었다. 그래서 난다 긴다 하는 숱한 인간들이 밤마다 부나비처럼 그녀 주변에 모여들어서, 여왕의 하해와도 같은 낙점을 애타게 기다리며 애꿎은 술잔만 속절없이 뒤집을 뿐이었다. 그녀가 통치하는 왕국의 법도 또한 매우 엄격해서, 어쩌다 만취한 인간이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감히 돈과 완력으로 여왕을 차지하려고 추태를 부렸다가는 즉각 충성스런 신하들로부터 응징을 당함은 물론, 얼굴을 들고 살 수 없을 정도로 개망신을 당해서 그날로 인사동을 떠나야 했다.

그녀가 자기를 개 무시하는 콧대 높은 유명 작가와 예술가를 유혹하고 굴복시키는 방식 또한 아주 기발했다. 일단 한 작가에게 필이 꽂히면, 도서관에 가서 그 작가에 대한 자료를 최대한 그러모아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 다음에는 대표작 하나를 골라서 처음 세 페이지 정도를 막힘없이 달달 외웠다.

그리고는 적당한 때 작가에게 접근해서, 슬슬 작품 얘기를 하며 관심을 끌다가 외워둔 부분을 줄줄 읊어대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는 이미 감동과 놀라움으로 눈이 휘둥그레진 작가 앞에서 작품에 대한 자신만의 독특한 분석을 빙자한 칭찬을 한껏 쏟아내며 쐐기를 박았다. 그러면 웬만한 작가는 그만 감격한 나머지 그녀에게 항복하고, 그녀가 하자는 대로 응했다. 그런 후 그녀는 보란 듯이 그 유명 작가와 한동안 진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칼로 무 자르듯 깨끗이 청산하고 돌아서서는 다음 상대를 물색하는 식이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이러한 남성편력 행각을 두고 꽃뱀이니 뭐니 하고 수군거리며 뒤에서 엄청 욕을 해댔다. 그러나 젊은 놀자는 결코 그러지 않았다. 욕을 하기는커녕 화엄경 <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가 만나는 선지식 중 하나인 절세미녀의 화신으로 여겨 그녀를 존경하고 숭배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혹시 자신에게도 차례가 돌아올지 모른다는 헛된 기대를 품고 목마른 사슴처럼 틈만 나면 그녀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보다 나이도 대여섯 살 어리고 이름도 없는 놀자를 몇 번 안아주기는 했지만 단 한 번도 뜨거운 눈길을 주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모 유명 인사와 함께 외국으로 사랑의 도피행각을 떠남으로써, 인사동의 밤을 뜨겁게 만들었던 그 유명하고도 화려한 퍼포먼스의 막을 내리고 말았다---.


골목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어슬렁거리던 놀자는 마침내 지인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화랑을 발견하고는 계단을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벽에 걸려있는 그림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전에 화실에서 두어 번 보았을 때보다 색감이며 구도 등이 훨씬 돋보이고 아름다웠다. 그간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역력했다. 무엇보다도 그림의 주요 모티브인 하천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지푸라기 더미들의 의미가 환하고 생생하게 살아나고 있어서 참 좋았다.

화가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지인도 좀 별난 사람이었다. 유명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처음에는 그림을 열심히 그렸다. 그러다가 공부에 빠져서 미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오랫동안 평론가로 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정년퇴직을 한 뒤, 다시 화가로 돌아와서 숱한 고뇌와 번민 끝에 첫 전시회를 연 것이었다.

“참, 자네 박사과정 때 전공이 노자였지?”

놀자는 손님맞이를 끝내고 온 지인과 근처 술집에 앉아서 막걸리 잔을 기울였다.

“응. 그건 새삼스럽게 또 왜 물어?”

“아니, 아까 그림속의 버려진 지푸라기 더미들을 보면서, 왠지 노자 생각이 나서 말여.”

“아하, ‘천지는 불인해서, 만물을 제사상에 올렸다가 버리는 짚으로 만든 강아지처럼 취급한다.’는 구절을 말하려는 거로구만.”

“뭐, 꼭 그렇다기보다도, 내가 보기에 전체적인 분위기가 왠지 노자를 떠올리게 하더라고. 역시 전공은 못 속이는 건가 봐, 히히!”

“나름대로 새로운 걸 찾기 위해서 열심히 한다고는 했지만, 내가 그렇지 뭐---.”

지인이 머리를 긁적이며 특유의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야, 그림들이 아주 좋았어. 새로운 게 뭐 별건가? 온고지신이라고, 옛날 것을 익히고 익혀서 마침내 그 속에서 미처 모르던 것을 새롭게 찾아내면 되는 거지.”

“좋게 봐줘서 고마우이. 그동안 남들 그림을 신랄하게 까대기만 하다가, 이제 입장이 바뀌어서 내가 비평을 받는 처지가 되고 보니, 무척 떨리고 신경이 쓰이네.”

“전문 비평가들은 뭐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코로나로 지치고 힘든 사람들이, 특히 춥고 배고픈 청춘들이 그림을 보고 많은 위안을 받을 거 같아. 그리고 도록에 실린 해설도 훌륭하더구만. 그중에서도 <세한도>에 비유한 부분이 아주 인상적이었어.”

“똑똑하기로 소문난 친구가 써주었는데, 너무 과찬을 해 놔서 그러잖아도 민망해 죽겠어. 감히 추사의 세한도에 비유하다니, 이게 어디 가당키나 한 소리야?”

“그렇지 않아. 화가나 예술가라면 누구나 평생을 걸쳐서 자신만의 세한도 한 점 남기려고 애를 쓰는 법이고, 자네도 그런 노력을 아끼지 않고 살아왔으니까, 아주 틀린 말도 아니지, 뭐.”

“------.”

“---그리고 로버트 푸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인용해서, 이제 새롭게 출발하려는 늦깎이 중고신인의 앞날을 격려해준 것도 좋았어.”

“가지 않은 길을 이 나이에 굳이 가보려고 하는 나의 어리석은 소치를 탓하는 얘기겠지, 뭐.”

“친구야, 난 오늘 그림을 보면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어!”

“---뭘?”

“아주 치열하게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살아온 자에게는 가지 않은 길도 곧 그의 길이라는 사실을 말여.”

“허허, 가지 않은 길도 길이라니, 그건 또 무슨 뚱단지 같은 궤변이야?”

“한번 생각해 봐. 누군가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걸어서 나름대로 성공했다고 했을 때, 그가 만일 도중에 여기저기 다른 길을 기웃거렸다면 그렇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어려웠을 거야. 결국 그가 포기하고 가지 않은 길이 그를 도와서 성공적으로 가게 만든 것이나 다름이 없어. 그러니까 가지 않은 길도 그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뭐 이런 말여.”

“그러니 가지 않은 길을 너무 아쉬워하거나 미련을 두지 말라는 얘기네.”

“하얗게 눈 덮인 미지의 들판을 걸어갈 때, 백범 김구의 말처럼 뒤에 올 사람을 위해 반듯하게 걸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방향을 잘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지. 그리고 옆에 빈 공간이 넉넉해야 안전하고 또 아름답지. 그렇게 자기만의 길을 꾸준히 걷다 보면, 모든 길은 하나로 통하니까 나중에는 어떤 형태로든지 다 합쳐지겠지.”

“듣고보니 그럴듯하긴 한데, 어쨌거나 참 잘도 같다 붙인다, 야! 하하하!”

“그게 바로 내 주특기 아니냐? 히히히!”

두 친구는 얼큰한 취기 속에서 각자 걸어온 길과 가지 못한 수많은 길을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막걸리 잔을 계속 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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