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함께 한 옛날 장터의 추억
며칠 전, 저녁 무렵이었다. 오랜만에 시내에 나가서 일을 보고 돌아오던 중이었다. 원룸으로 꽉 들어찬 건물들이 좌우로 길게 늘어선 골목길로 막 접어들었을 때, 앞에서 걸어가는 두 젊은이가 주고받는 말이 놀자의 귀에 들려왔다. 보아하니 최근에 한강변에서 친구와 밤늦게 술을 마시고 실종된 뒤, 며칠 후 안타깝게도 시신으로 발견된 한 젊은이에 대한 얘기인 것 같았다.
“우리 같은 놈들은 죽어도 하나도 안 억울해, 씨벌!”
“맞아, 맞아!”
“공부를 잘하길 하냐? 그렇다고 집안이 빵빵하길 하냐? 씨벌!”
“우리가 죽으면, 아무도 아는 척도 안 할 거야.”
“당근. 우리 같은 찌질이들한테 누가 관심이나 갖겠어? 씨벌!”
“근데 걔는 죽는 게 진짜 억울했을 거야.”
“말하면 잔소리지. 공부를 잘해서 그렇게 의대까지 들어갔으니까, 씨벌!”
“평소에 부모님하고도 그렇게 친하게 잘 지냈대.”
“그게 더 속상하지. 우린 그런 것조차도 못하는 머저리들인데 말이야, 씨벌!”
“아무리 그래도, 죽고 나면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야?”
“그러게 말이야, 씨벌!”
“그나저나 요즘은 괜찮은 알바 거리도 하나 없고, 진짜 깝깝해 죽겠다, 야!”
“우리가 언제는 깝깝하지 않은 적이 있었냐? 씨벌!”
“그건 그래!”
“이번 기회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금보다 훨씬 더 독하고 쎄져 가지고, 인간들이 다 같이 싸그리 죽었으면 좋겠어, 씨벌!”
“등신아,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될 거 같냐? 없는 놈들만 더 힘들고 괴로워지지.”
쿵-! 놀자는 그들의 얘기를 듣고 머리에 강한 펀치라도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갑자기 두 다리에 힘이 쭉 빠지면서, 자리에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얼핏 뒷모습을 보니 놀자와 같은 건물에 사는 젊은이들인 것 같았다.
놀자의 옥탑방은 옥상이 딸린 5층에 있었다. 그리고 3-4 평 되는 좁은 원룸이 한 층에 네 개씩 4층 건물을 꽉 채우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물론 없었다. 주로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생들이 살고 있는데, 고시원보다 크게 나을 게 없는 공간이었다. 얼마나 비좁은가 하면, 비 오는 날이면 우산 놓을 데가 없어서 문 바깥 손잡이에다 걸어놓을 정도였다.
놀자는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그들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또 담배를 피우려고 건물 밖으로 나와서 서성대는 걸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대화를 나눈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파트에서와 마찬가지로, 원룸 건물에서도 서로 모른 체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였다.
“허허, 저렇게 딱한 철부지들을 봤나---!”
“애지중지 키워주신 부모님들이 이 말을 들으면 얼마가 기가 막힐까---!”
놀자는 잠시 근처 전봇대에 기대어 쉬면서 장탄식을 했다. 아들 뻘 되는 아이들의 조금 전 대화가 가슴을 계속 후벼 팠다.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공부 잘하는 애들의 생명을 훨씬 더 가치있게 생각하고, 그렇지 못한 자신들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다니, 이게 도대체 있을 수 있는 얘기란 말인가.”
“누가 앞날이 창창한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저토록 커다란 자괴감과 열등감과 패배감을 심어주었나?”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암기위주의 시험 성적만으로 모든 아이들을 한 줄로 나란히 세워서, 마치 병아리 감별하듯 우열을 나누고 또 적성을 무시한 채 진로까지 결정하고, 그에 따라 아이들 인생 전체가 좌우되는, 이런 사이비 종교를 닮은 무책임하고 파렴치하고 어처구니 없는 바보들의 행진을 도대체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그리고 핵폭탄이 터진다 해도 꿈쩍도 하지 않을 만큼 견고한 기득권 세력의 구도와, 이를 둘러싼 엄청난 이권과 부패와 타락을 어찌하면 좋을까.”
“젊은이들의 정신세계와 가치관을 이 지경에 이르도록 만들어 놓고도, 소위 정치권이나 언론이나 학계의 지도층이라는 작자들이 감히 미래를 말 할 자격이 있을까---.”
놀자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갑자기 좌우에 즐비하게 늘어선 원룸 건물들이, 죄 없는 청춘들을 끊임없이 잡아다가 가두고 고문하며 그들이 가진 유일한 재산인 꿈과 희망의 골수를 빼먹는 끔찍한 괴물처럼 보였다. 놀자는 몸서리를 치면서 비탈길을 겨우 걸어 올라갔다. 오늘따라 옥탑방으로 가는 길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이 모든 게 인간의 생명을 시장논리로만 대하는 데서 생긴 병폐라 할 수 있는데, 인간의 존엄과 시장논리는 왜 공존할 수 없는 것일까. 본래 양립할 수 없는 것인가.”
“인간의 가치를 오로지 돈으로만 계산하고, 돈으로만 환산하고, 돈으로만 판단하는 사회는 자연의 질서에 따라 살고 있는 저 동물들의 세계보다 훨씬 더 못하고 비참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문명이 과연 존재할 가치가 있을까.”
“어쨌거나 현재의 자본주의가 지금처럼 계속 밀고 나가기만 하다가는, 앞으로 줄지어 출현할 괴 바이러스가 아니더라도, 세계 도처에서 극을 향해 치닫고 있는 갈등과 원한과 분노와 증오 같은 파멸적 요인들로 인해 스스로 망하리라---.”
어버이날이 가까와 온 때문인지 놀자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몹시 그리웠다. 문득 어머니를 따라 장 구경을 하던 어린 시절 추억들이 떠올랐다. 철모르던 때의 기억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다들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장마당 풍경만은 언제나 풍성하고 훈훈하고 신명나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언젠가 장터에서 어머니와 함께 겪었던 한 특별한 사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어린 시절, 놀자의 아버지는 중학교 교사였다. 본디 조용하고 차분한 성품에다 오락이나 잡기라고는 아무것도 할 줄 몰라서, 그저 학교와 집만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던 고지식한 분이었다. 당연히 어머니의 고생이 막심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적은 봉급을 쪼개고 또 쪼개서 살림을 하셨지만, 육남매를 먹이고 가르치는 데는 많이 부족하였다. 그래서 당시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그랬듯이, 닭과 돼지도 치고 밭에다 채소도 가꾸는 등 억척스럽게 일을 해서 부족한 가계를 꾸려나갔다.
한번은 온 가족이 나서서 새로 만든 밭에다 씨 마늘을 심고 거름도 듬뿍 주고 정성껏 길러서, 초여름 무렵에 제법 많은 마늘을 거둬들였다. 오랜만에 맛보는 풍성한 수확의 기쁨이었다. 흙냄새와 뒤섞인 강렬하고도 싱그러운 마늘 향이 온 집안에 진동을 하였다.
“마늘 농사가 맨 날 이렇게만 잘 되면, 우리도 금방 부자 되것다, 야!”
어머니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마늘을 쓰다듬었다. 알이 굵고 좋은 것들은 골라서 시장에 내다 팔고, 나머지 시원찮은 것들은 집에서 먹을 심산이었다. 놀자도 옆에서 마늘을 고르고 엮는 일을 거들었다. 마늘 두 대의 뿌리가 각각 양쪽 끝으로 가게 가지런히 모아 짚으로 머리 땋기처럼 길게 엮어서 한 접씩 만들었다. 오십 줄을 묶은 것이 한 접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작업해서 햇마늘 여러 접을 만들었는데, 마지막 접에서 문제가 생겼다. 딱 마늘 두 대가 부족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알이 작은 것들 중에서 이것저것 한참 살펴보다가, 성에 차지 않는지 그냥 한 줄을 빼먹고 엮었다. 그리고는 큰 광주리에 몽땅 담아 머리에 이고는 놀자를 앞세우고 서둘러서 시장으로 떠났다.
“에미가 이렇게 죽어라 고생해서 마늘 팔러 가는데, 너라도 따라가서 도와야 되지 않것냐!”
초등학교 고학년이던 놀자는 창피해서 정말 가고 싶지 않았지만, 눈치 빠른 동생이 벌써 어디론가 내빼고 보이지 않는 바람에 꼼짝없이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시끌벅적한 시장에 도착한 놀자와 어머니는 단골 장돌뱅이들이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께는 감히 다가갈 생각도 못하고, 적당히 구석진 곳을 찾아서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는 마늘 더미를 앞에 늘어놓고 무작정 손님을 기다렸다. 본디 장사 일과는 거리가 먼 데다, 남 앞에서 얘기를 하는데도 익숙하지 못한 어머니는 호객행위는커녕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그저 어색한 웃음만 지으며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다 볼 뿐이었다.
임자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힐끗거리며 오가는 시장 바닥에 나앉아서 손님을 기다리는 시간은 몹시도 고통스럽고 지루했다. 유난히 어리배기라서 낯가림을 많이 하던 놀자에게는 그야말로 견디기 힘든 고문과도 같았다. 신나게 시장구경을 할 때와는 너무도 다른 가혹한 형벌의 시간이었다. 놀자는 마치 자신이 팔려고 내놓은 물건이라도 되는 양 부끄러워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어디 쥐구멍에라도 기어들어가고 싶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빨리 여기서 벗어나 친구들과 딱지치기나 자치기를 하며 놀 수 있기만을 간절히 원했다.
“걱정하지 마라. 여기가 목은 안 좋지만---, 그래도 우리는 물건이 좋으니께, 조금 있으면 사람들이 와서 다 사갈 것이다---. 암, 다 사가고말고---.”
초보 장사꾼인 어머니도 초조한지 연신 입술에 침을 바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하나 둘 마늘 더미 앞에 멈춰 서서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이윽고 어머니와 가격 흥정을 하기 시작했다. 어머니 말대로 물건이 좋아서 관심을 끈 모양이었다.
“잘 보세유! 진짜로 다른 사람들 것보다 훨씬 좋아유! 그래도 값은 똑같이 받을 게유!”
어머니는 신이 나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마침내 한 접 두 접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놀자는 고개를 들고 어른들이 거래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값을 좀 깎아 달라고 조르는 얌체 손님들에게 어머니는 능청스럽게 잘도 대처를 하였다.
“품질이 이리도 좋은데 값은 똑같으니께, 이미 깎아준 거나 다름이 없지유, 안 그래유?”
놀자는 어머니의 능란한 말솜씨에 새삼 감탄을 하였다. 그리고 왠지 가슴이 뿌듯해졌다. 그렇게 열심히 팔다보니 어느덧 다 팔고, 광주리 바닥에 보자기로 감추어둔 것만 남았다. 드디어 한 줄이 모자라는 그 물건을 내놓는 어머니의 얼굴에는 긴장하는 빛이 역력하였다. 마침 그때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부인이 다가와서 가격을 묻자, 당황한 어머니는 아주 싸게 값을 불렀다.
“아니, 제 값을 다 받으셔야지, 그렇게 싸게 받으면 되나요?”
부인이 의아해하며 어머니와 마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 그래야 하지만, 그걸 다 받기에는, 뭐, 좀, 거시기하고, 또 미안해서리---.”
어머니는 몹시 당황해하며 말을 더듬었다.
“아니, 그럼 마늘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서 그러는 건가요?”
“아, 아니유!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좀 싸게 드리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보아하니 장사를 처음 하는 거 같은데, 장사 그렇게 하면 안돼요. 자, 제 값 다 받으세요.”
“아 글씨, 그런 게 아니라, 거 뭐시냐---.”
부인과 어머니는 제 값을 다 받으라느니, 그렇게는 못하겠다느니 하며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실랑이를 벌였다. 사정을 잘 아는 놀자도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가슴이 마구 쿵쾅거렸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며 한두 마디씩 거들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갑자기 광주리를 들고 머리에 이더니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이건 안 팔 거니께, 그리 아셔유! 정말 죄송해유!”
어머니는 놀자의 손을 억세게 잡아채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놀자는 어머니의 돌발적인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까닭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앞만 똑바로 쳐다보고 걷고 있는 어머니는 무엇엔가 단단히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어떤 알 수 없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어느덧 해가 서산에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 내내 놀자와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발걸음을 열심히 놀릴 때마다, 석양에 비낀 두 사람의 긴 그림자만이 한데 어우러져서 너울너울 춤을 출 뿐이었다.
그날 이후, 놀자는 힘든 일로 어머니가 그리울 때마다 그때 춤추던 그림자를 떠올리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