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가라사대(18)

금풍생이, 이순신 장군, 그리고 희대의 사깃꾼들

by 김혁

여수에 사는 놀자의 후배 하나가 금풍생이를 택배로 보내왔다. 금풍생이는 돔과에 속하는 바닷고기인 ‘군평선이’를 친근하게 부르는 말인데, 여수 사람들이 이맘때쯤이면 최고의 맛으로 친다는 생선이었다. 몸집이 작은데다 지느러미와 가시가 무척이나 억세고 단단해서 볼품은 없어 보이지만, 굵은 뼈들 사이에 촘촘히 박혀있는 살들은 무척 찰지고 고소해서 천하일미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놀자는 문득 삼삼하게 떠오르는 여수 밤바다를 생각하면서, 간만에 술친구 두 사람을 불러서 금풍생이 구이를 안주삼아 조촐한 술자리를 마련하였다.

“와, 이 가시 좀 봐! 엄청 크고 단단하네. 생긴 것도 꼭 깡패 같아. 근데 맛은 기가 막히게 좋구만.”

모 공기업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가 은퇴한 친구가 가시를 발라먹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게 말이야. 근데 바다를 휘젓고 다니는 크고 사나운 놈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으면 가시가 이리도 억세고 단단해졌을까? 먹는 나까지 괜스레 마음이 짠해진다, 야!”

사업하다 재산을 몽땅 말아먹은 백수친구가 큰 눈을 껌벅이며 동병상련의 표정을 지었다.

“얘들아, 늬들 이 고기 별명이 뭔 줄 알아? 샛서방 고기란다. 샛서방 고기! 옛날부터 하도 맛이 좋아서 샛서방한테만 몰래 주었다나 어쨌다나, 히히히!”

놀자가 히죽히죽 웃으며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오, 그래? 그럼 우리도 오늘 샛서방이 되는 거야?”

“생각만이라도 그리 하면서 술을 마셔보자고, 하하하!”

세 친구는 모처럼 코로나 사태로 인한 근심과 스트레스도 잊고, 또 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로 촉발된 엄청난 국민적 분노도 내려놓고 잠시나마 즐겁게 술잔을 뒤집었다.

그런 와중에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놀자가 문득 허공을 바라보며 즉흥시를 읊었다.


벚꽃이 발정 난 듯 흐드러지게 핀 날 / 세상을 살만큼 산 헌 서방 셋이 모여서 / 샛서방 고기에다 술을 마신다 / 세상은 언제나 지독하게 부정하고 / 또 지랄 같다고 입을 모아 성토를 하며 / 우리도 한때는 누군가의 샛서방이 되고자 / 헛된 꿈을 꾼 적도 있었지만 / 이제는 힘도 다 빠지고 이빨도 성치 않아 / 억센 가시 사이로 살을 발라먹기도 힘이 드는데 / 아무리 참고 기다려도 우리가 기다리던 / 진짜 멋지고 씩씩한 샛서방은 오지 않고 / 착한 누이의 고운 속살만 파먹는 / 기생오라비들과 투기꾼들만 살판이 나서 날뛰는데 / 이제 세상 뒷전으로 밀려나 별 볼 일 없는 우리는 / 다 먹고 난 억세디억센 샛서방 가시를 가지고 / 무정한 세월의 허파만 속절없이 찔러대고 있구나---.


“와, 좋다! 뱃속에서 금풍생이가 우리와 함께 눈물을 줄줄 흘릴 것만 같다, 야!”

“아이고, 샛서방도 한번 되어보지 못하고 흘러가버린 내 청춘이 너무나 억울해, 하하하!”

두 친구가 한껏 칭찬을 하자, 놀자는 더욱 신이 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았다.

“옛날에 이순신 장군께서도 이 금풍생이 고기를 즐겨 드셨대. 그러니까 이 고기로 말할 것 같으면,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왜군 함대와 23번이나 크게 싸워서 모두 이긴 불멸의 전적을 이룩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뭐 그런 말이야.”

“그래? 그 얘기를 들으니 이 별난 고기가 더욱 각별하게 느껴진다, 야!”

“아 아, 이순신 장군이야말로 도덕경 10장에 나오는 지도자상에 꼭 맞는 그런 분이라고 할 수 있지.”

“맞아, 맞아! 그런 분이 임진왜란 이후에 왕이 되어서 나라의 기틀을 바로잡고 다스렸더라면 우리 역사도 확 달라지고 참 좋았을 텐데, 정말로 아쉬워.”

“참, 놀자야, 너 예전에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뭔가에 투자한다고 하다가 왕창 말아먹지 않았냐?”

백수친구가 눈치도 없이 지난 얘기를 불쑥 끄집어냈다.

“야, 넌 또 왜 놀자의 가슴 아픈 기억을 들쑤시고 그러냐? 그게 뭐 그리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아니, 지금 생각해도 너무 황당하고 웃겨서---.”


그랬다. 놀자에게 다가온 두 번째 유혹의 손길은 생뚱맞게도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것이었다.

“지난번 일은 내가 죽을죄를 졌다. 정말 미안하다. 형편이 되는대로 꼭 갚을게---. 그리고 제발 내 얘기 좀 들어봐. 정말로 기가 막힌 소식이 있어.”

한동안 잠수를 탔다가 제 발로 놀자를 찾아온 친구는 보물선 인양 중에 알게 된 특급 비밀정보라면서 숨이 넘어갈 듯 호들갑을 떨었다. 지난번 실수에 대한 사과도 할 겸, 조금이라도 손해를 만회해보려는 의도가 역력했다. 하여간 염치도 좋은 친구였다.

“이번엔 또 뭔데 그래? 한번만 더 나한테 사기를 쳤다간 그땐 죽을 줄 알아?”

놀자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친구를 노려보며 으름장을 놓았다.

“이번엔 진짜야, 틀림없어 이순신 장군이 유언으로 황금을 산더미처럼 숨겨두었대.”

“뭐, 이순신 장군이 황금을 숨겨?”

“응, 그렇다니까!”

“그게 말이 돼?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를 하는 거야? 도대체 나를 뭐로 보고 그따위 망발을 지껄이는 거야, 응?”

놀자는 화가 나서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나, 나도 처음엔 하도 황당무계해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어. 근데 자세히 알아보니, 아 글쎄, 그게 사실이더라고---.”

친구는 흥분해서 입에 게거품을 물고 무려 1시간 동안이나 떠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들려준 얘기는 정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임진왜란이 끝나갈 무렵의 일이라고 했다.

명나라 황제가 왜군과 맞서 싸우라고 보낸 수군 함대를 통해서 이순신 장군에게 어마어마한 양의 황금을 보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극비리에 행해진 일이라 몇 사람만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명 황제는 왜 그토록 많은 황금을 보냈을까? 그건 무능하고 우유부단하고 의심 많은 선조를 갈아치우고, 이순신 장군을 왕위에 앉히려는 계획의 일환이었는데, 말하자면 새로운 왕조를 세우기 위한 거사 자금인 셈이었다. 그래야 다시는 왜국이 조선을 쉽게 넘볼 수 없고, 명나라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편해질 거라고 했다. 민심도 비겁하고 옹졸한 선조보다는 이순신 장군을 훨씬 더 따를 것이라고 보았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당시 점점 세력을 넓혀가고 있는 후금이 명 황제에게는 가장 커다란 걱정거리였다. 조만간 명나라의 명운을 위태롭게 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데, 유일한 해결책은 명과 조선이 굳건한 군사동맹을 맺고 후금을 공략하는 것이었다. 특히 이순신 장군 같은 뛰어난 인물이 왕이 되어 후금을 적극 공략함으로써 명나라 조정의 안위를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 황제의 판단이었다. 만일 계획대로 실행이 된다면 중세 동북아 역사를 뒤흔들 엄청난 사건이 될 것이었다.

명나라 황제는 이미 수많은 환관과 그 수하들에게 둘러싸여 허수아비가 된지가 오래였다. 권력을 뜻대로 행사하기는커녕 조그만 일 하나도 마음대로 처리할 수가 없었다. 이제 믿을 수 있는 건 아무리 둘러보아도 이순신 장군 뿐이었다. 장군의 놀라운 활약과 훌륭한 인품에 대해서는 황제도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선에 새로 믿음직한 나라가 들어서고, 함께 힘을 합쳐서 후금을 쫓아내고, 아울러 그 기세를 몰아서 지긋지긋한 환관의 무리들을 궁에서 쫓아낼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댓가라도 흔쾌히 치루고 싶다는 게 황제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런 정세 판단과 치밀한 계획 하에 진짜로 믿을 수 있는 충신을 극비리에 보내서 막대한 황금과 함께 자세한 계획을 전달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이 누군가. 나라를 위한 충성심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위인이 아닌가. 장군은 감히 거역할 수 없는 명나라 황제의 은밀한 제의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건 만고에 빛나는 충신으로서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엄청난 역모였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온갖 수모와 굴욕을 참아가며, 심지어 백의종군까지 해가면서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몸 바쳐 싸운 자신의 붉디붉은 우국충정이 결국 왕위 찬탈을 위한 술수였다고 손가락질 받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후금에 대한 걱정만은 정말로 남 일 같지가 않았다. 이순신 장군은 전에 함경도에서 여러 해 동안 근무하면서 그들과 크고 작은 전투를 많이 해 본 경험이 있어서, 여진족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그들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세력도 점차 커지고 있어서 조만간 큰 나라를 건국하여 중원은 물론 조선까지 위협할 것이 자명했다. 그렇게 되면 현재의 왜란 못지않은 난이 일어날 지도 모를 일이었다.

장군은 여진족에 대한 생각이 남달랐다. 비록 조정의 명령으로 토벌작전에 나서서 그들을 여러 번 물리치기는 했지만, 무조건 오랑캐라고 무시하면서 배척만 할 게 아니라 잘 타이르고 달래서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는 게 필요했다. 따지고 보면 그들과 우리는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피를 나눈 사촌지간이나 다름이 없으며, 건국 초기에 태조 이성계가 그들의 도움을 요긴하게 받았으면서도, 그 이후 이런저런 이유로 무시하고 홀대한 건 큰 잘못이라는 게 장군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당시 대부분의 사대부들은 그들을 그저 오랑캐라고 무시만 할 뿐 아무런 현실적인 대책이 없었다. 주자학에 찌든 사대부들에게 후금과의 화친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곧 하늘을 배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중국이 쳐놓은 소 중화사상의 덫에 제대로 걸린 꼴이었다. 그리고 현실 정치를 주도하고 있는 그들의 그런 생각과 판단은 훗날 나라에 엄청난 화를 불러올 것 같아서 불안하기만 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눈앞에 있는 왜적을 물리치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에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어쨌거나 이순신 장군의 고민은 깊어만 갔다. 명나라 황제의 명을 받들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단칼에 거부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만일 이런 사실이 외부로 알려질 경우, 아무리 명나라 황제의 일방적인 제안이라고는 하나 당장 대역죄로 몰려 처형될 게 뻔했다. 그리고 양국 간에 커다란 정치문제로 비화할 것이 명약관화했다. 어쩌면 시기심 많은 선조도 조금은 눈치를 채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큰일이니 빨리 뭔가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고민 끝에 장군은 죽음을 각오하고 황제의 명을 거역하기로 했다. 어차피 전쟁이 끝나면 이런저런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선조가 자신을 죽이리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던 터였다.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장군은 마지막 노량해전에서 죽을 결심을 하였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양의 황금을 후대를 위해 숨겨두기로 했다. 먼 훗날 나라가 힘들어졌을 때, 후손들이 요긴하게 쓸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그 후, 장군의 충직한 부하들은 노량해전이 벌어지기 직전에 명령을 받들어 황금을 몽땅 남해 바다 한가운데 있는 어느 무인도로 은밀하게 옮겼고, 땅속 깊이 파묻은 뒤 수백 년 동안이나 철저하게 비밀에 붙였다고 한다. 얼마나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했던지, 이제는 이런 사실을 아는 후손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어쩌다 바람결에 소수의 섬마을 사람들에게만 전설처럼 전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세상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눈 밝은 고수가 있는 법. 어느 호기심 많고 유물 탐사능력이 뛰어난 전문가가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오랫동안 끈질기게 추적하고 연구한 끝에, 마침내 황금이 묻혀 있는 무인도의 소재를 알아냈다고 한다. 그의 주장인즉슨 이순신 장군이 남긴 난중일기 영인본을 수백 번이나 독파하면서, 그 안에서 수많은 영감과 암시를 얻어 마침내 무인도의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 백 조원에 달하는 황금 발굴을 위해 뜻을 함께 할 수 있는 동지들을 비밀리에 모집하는데, 발굴에 성공하면 절반은 나라에 기부하고 절반은 투자자들과 함께 나눌 계획이라고 했다.

“오, 오, 이럴 수가---!”

놀자는 이 황당무계한 얘기를 듣고 나서 코웃음을 치기는커녕 온 몸에 전율이 이는 걸 느꼈다. 마치 고압전류에 감전된 것만 같았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거대한 역사의 비밀이 풀리면서,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충분히 피할 수도 있었던 죽음을 스스로 택한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이건 절대로 사기꾼들이 적당히 꾸며낼 수 있는 그런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스케일이 크고,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역사의 깊은 진실이 들어 있다!”

“이런 거룩한 사업에 내가 끼지 못한다면, 너무나 억울해서 내 명대로 살지 못할 것이다!”

놀자는 흥분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그리고 친구를 덥석 껴안고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친구야, 넌 역시 내 평생의 은인이야!”

“지난번 보물선 건은 없었던 일로 할게. 조금도 걱정하덜 덜 말어!”

놀자는 이번에도 이렇게 대단하고 확실한 사업에 자신을 끼워준 친구가 무척 고마웠다. 그리고 보물선에 투자했다가 손해 본 자금을 만회하고자 집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아서 투자를 한 뒤, 한껏 꿈에 부풀어 지냈다.

그날 이후로 눈만 감으면 번쩍번쩍 빛나는 황금 더미가 훨훨 날아서 수평선을 가로질러 다가오는 모습이 아른거렸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남해 무인도에서 황금 더미를 발굴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친구 말에 의하면 작업이 워낙 힘들어서 계속 발굴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가 친구도 자취를 감추었고, 지금껏 행방이 오리무중이었다---.


“이런 시베리아 십장생 조까 똥통에 빠져서 죽을 놈들 같으니라고! 이순신 장군까지 끌어다 사기를 치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은퇴 친구가 새삼 분개해서 소리를 질렀다.

“암만! 백 번 죽어 마땅한 놈들이지. 근디 아무리 사기꾼들이라고 해도 시나리오 하나는 그럴 듯하게 잘 썼네. 참 잘 썼어, 하하하!”

백수 친구가 놀자 눈치를 보며 연신 감탄을 하였다.

“장군님, 정말 죄송합니다요. 저희가 하는 꼬락서니가 늘 그렇지요, 뭐. 제발 용서해주세요, 히히히!”

놀자는 또 백치처럼 히죽거리면서 먼 허공을 향해 고개를 계속 조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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