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가라사대(27)
홍범도 장군과 안중근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
놀자는 지난 8.15 광복절에 모처럼 신이 났다. 항일 무장투쟁의 영웅이자 전설인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돌아와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아주 뜻깊은 행사가 벌어진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광복절에 딱 들어맞는 가슴 뭉클하고도 역사적인 소식을 접하면서, 놀자는 감격에 겨워 만세를 불렀다.
“오, 위대한 장군의 귀환이여!”
“장군님은 우리 독립운동사의 크나큰 영광이요 축복이옵니다!”
“덕분에 우리 겨레도 기죽지 않고 살아나서 광복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좁은 옥탑방에 누워서 동서고금의 성현들과 사상가들, 그리고 이런저런 사건에 대해 공상을 하며 빈둥거리는 것이 주요 일과인 놀자에게 장군의 귀환 소식은 오랜만에 대하는 빅뉴스였다. 그래서 장군에 대한 각종 자료들을 훑어보며 분주하게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가끔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서 소리를 지르곤 했다.
“장군님 같은 분이 김일성 대신 북쪽의 수령이 되셨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해방을 불과 2년 앞두고 돌아가셨으니, 이 얼마나 원통한 일입니까!”
“이제라도 조국의 품에서 고이 잠드시고, 평화통일을 이루도록 도와주소서!”
걸핏하면 흥분하길 잘하는 놀자는 비분강개 하여 눈물을 줄줄 흘렸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홍범도 장군은 증조부가 홍경래의 난에 연루되는 바람에 쫓겨 다니며 고단하게 살아야 했던 집안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당연히 부패한 기득권 세력에 대한 저항의식과 의협심이 강한 조상의 피를 이어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랬기에 어려서 부모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지독한 가난으로 머슴과 막일꾼 승려 등을 전전하면서도, 그는 기회만 있으면 일본인 순사를 때려잡는 등 용감하게 항일투쟁을 벌였다.
남달리 뛰어난 체력과 담력 그리고 출중한 사격솜씨를 지녔던 그는 한때 삼수 갑산 풍산 등 우리나라에서 산세가 가장 험준하기로 유명한 곳에서 호랑이 잡는 명포수로 활동을 하다가, 일제의 침탈이 갈수록 심해지자 포수들을 중심으로 의병 세력을 대대적으로 규합한 뒤 의병장이 되어 백두산과 만주 벌판을 누비며 신출귀몰한 작전으로 일본군을 숱하게 섬멸하였고, 나중에는 정식으로 대한독립군을 결성한 뒤 사령관이 되어 뛰어난 활약을 하였다. 그 와중에 가족 모두를 일제의 고문과 전투에 제물로 바치고,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비록 말년에 스탈린의 야만적인 강제 이주정책으로 머나먼 중앙아시아 땅으로 쫓겨 가서, 모든 지위와 능력과 기회를 박탈당한 채 어쩔 수 없이 초라하게 생을 마감하긴 했지만, 장군은 누가 뭐래도 불세출의 독립운동 영웅임에 틀림이 없다. 지금껏 고려인들의 절대적인 추앙을 받으며 정신적 지주로 남아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홍범도 장군은 역사학자 이 이화 선생의 평가대로, 개인적인 불행과 민족적인 비극을 일치시켜 철저한 신념과 굳센 의지로 민족 모순과 봉건 모순을 체험적으로 터득하며 독립투쟁사에 가장 빛나는 성과를 올린 그런 분이라고 할 수 있다.
놀자는 문득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떠올렸다. 특히 아버지가 젊은 시절에 만주로 독립운동을 하러 갈 뻔했던 아주 엉뚱한 에피소드가 생각나서 한참을 웃다가 그만 목이 메었다.
힘이 항우장사라고 소문났던 할아버지는 해방 전에 머나먼 만주와 하얼빈까지 누비며 장사를 하러 다니셨다고 했다. 그러다가 비적 떼를 만나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기도 했고, 독립군 첩자로 오인을 받아 일본군에게 끌려가다 가까스로 탈출도 했고, 낯선 이국땅에서 사기를 당해 가진 걸 몽땅 잃고 오도 가도 못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런 재미난 얘기를 어른들 틈에 끼어서 들을 때마다, 어린 놀자는 너무나 놀랍고 신기해서 가슴이 마구 쿵쾅거렸다.
“아 글씨, 한 번은 봉천인가 어딘가 여인숙에서 잠을 자는디, 옆방에서 웬 처자가 너무도 구슬프게 흐느끼며 울더란 말여. 그래서 사정을 들어 보니께, 삼대독자인 남편이 오래전에 독립운동을 한다고 만주로 떠났는디 하도 소식이 없어서 물어물어 찾아왔더니, 남편이란 작자는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고, 하루하루 날짜가 지나다 보니 가진 돈도 다 떨어져서 꼼짝없이 되놈 술집에 팔려갈 신세가 됐더란 말여.
허 참, 세상에 그렇게 딱한 처지가 있나. 그래서 내가 잠자고 있던 사람들을 다 깨워가지고 가슴을 치면서 호소를 혔지. 우리가 비록 독립운동은 하지 못할망정, 이렇게 곤경에 처한 동포 처자 하나 돕지 못한다면 정말로 개돼지보다도 못한 인간들이라고. 그러니 성의껏 십시일반으로 노잣돈이나 모아서 주자고 말여.
그랬더니 다들 눈물을 훔치며 한 푼 두 푼 모아서 노잣돈을 마련해 줬지. 그래서 그 처자는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갔는디, 아 글씨,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께, 돌아가던 중에 사정을 잘 아는 사람으로부터 남편이 죽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는 낙심한 나머지 그만 두만강에 빠져 죽었다는구먼. 그 소식을 듣고는 어찌나 가슴이 아프던지, 다들 당시 크게 유행하던 <눈물 젖은 두만강>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지---.”
어린 놀자는 이 얘기를 들을 때마다 눈물을 글썽이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곤 했다.
한편, 3.1 만세운동 직후 일제 치하에서 태어난 놀자의 아버지는 매우 소심하고 내성적이면서도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로, 조그만 상점의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20대 청년시절을 별다른 희망도 없이 우울하고 조용하게 보냈다고 한다.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해볼 수 없는 식민지 청년의 비애와 울분을 그저 속으로만 삼키며, 하루하루 무사히 그리고 묵묵히 견디는 것만이 주어진 최선의 삶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해방이 됐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아버지는 갑자기 불화살이라도 맞은 것처럼 흥분해서 날뛰며, 만주로 독립운동을 하러 가겠다고 가족들에게 그야말로 폭탄선언을 했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늦지 않았시유!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을 해야 겠시유!”
그 말을 듣고 할아버지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고 한다.
“허허, 이미 일본 놈들이 패망해서 독립이 됐는디, 시방 그기 무신 소리냐?”
그러자 아버지는 이렇게 대꾸했다고 한다.
“알아유. 하지만 일본 놈들이 어디 하루아침에 싹 없어지겠어유? 그동안 지도 독립운동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기회를 엿보다가 그만 때를 놓쳤구만유. 이제라도 가서 한풀이를 해야겠시유!”
“허허, 내가 여러 번 가봐서 아는디, 거기는 인자 파장여, 파장!”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거구 만유---.”
“다 끝난 일이래두 그러는구나. 그렇게 뒷북치다 망신당하지 말고, 조신허게 있거라. 이제 해방이 됐으니께, 여기서도 할 일이 많이 있을 틴디 만주는 무신 놈의 얼어 죽을 만주. 늬가 거길 한 번이라도 가보기라도 혔냐!”
할아버지의 엄한 꾸지람에도 아버지는 한동안 흥분해서 방방 뜨다가, 어느 틈엔가 슬며시 제 풀에 주저앉았다고 한다.
그 후 놀자의 아버지는 독학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교원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교사를 천직으로 알고 평생을 교단에서 국어와 한문을 가르치는 평교사로 지냈다. 동양고전에 조예가 깊고 성리학 서적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선비였으며, 틈틈이 시도 썼지만 발표는 거의 하지 못한 무명시인이기도 했다. 비록 성품이 조용하고 온화한 데다 겁이 많고 소심하여 늘 살얼음을 딛듯 세상을 살았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는 홍범도 장군 못지않게 강한 애국심과 정의감과 의협심이 들끓고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내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2대째 영광스러운 무명시인이로구나, 히히히!”
놀자는 그리운 아버지를 회상하며 울다 웃다를 반복하였다.
사실 홍범도 장군의 활약도 대단하지만, 그가 의병장으로 활약하던 초기에 세계만방을 놀라게 한 안중근 의사의 쾌거는 더욱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민족정기와 자존심을 한껏 드높인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 쾌거가 엄청난 기폭제가 되어서 크고 작은 수많은 독립투쟁 운동이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안중근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 간의 싸움이 끝나지 않고,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이게 무슨 얘기냐고? 이토가 기초를 닦아 놓은 일본의 근대화와 엄청난 발전, 그리고 그 틀 안에 갇혀서 식민지로 전락했다 벗어나려고 몸부림쳐 온 우리의 근대사가 오늘날까지 한일 양국 사이에서 계속 충돌을 빚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그래서 놀자는 짧은 글을 쓰면서, 상상으로나마 안 의사와 이토가 천상에서 만나 불꽃 튀는 논쟁을 벌일 기회를 마련해보았다.
“이토공, 오랜만이오.”
“안공, 참으로 오랜만이오.”
“당신이 당신네 나라의 근대화를 위해서 혁혁한 공을 세운 건 인정하오. 그걸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소. 하지만 그걸 이용해서 우리 조선을 침략한 건 아주 잘못한 일이었소. 그리고 당신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소. 이제라도 사죄를 하시오.”
“그분들께는 진심으로 사죄하겠소. 사실 우리도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소. 자본이 많이 필요했으니까. 침략이 없는 근대화란 있을 수가 없소. 그건 아주 순진하거나 무지한 생각일 뿐이오.”
“아무리 그래도, 동양 평화를 위한다는 명분 하에 무력으로 여러 나라를 점령하고 수탈한 것은 정말 가증스러운 일이었소.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오.”
“우리는 어디까지나 법과 절차에 따라서 조선과 합병을 한 거지, 절대 불법으로 한 게 아니오.”
“법과 질서를 따랐다고는 하나, 그게 다 강대국들이 약소국을 침략하기 위해 만든 거 아니오? 그런 제국주의 놀음 앞에서 그럴듯한 포장과 기만술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이오?”
“맞는 말이오. 당시 강대국 외교관들 사이에서 ‘조선은 슬슬 달래다가 때릴 것처럼 위협하면 말을 잘 듣는 어린애와 같다’는 말이 많이 돌았는데, 그만큼 조선이 힘이 없고 국제정세에 어두워서 당한 거요.”
“제국주의 논리를 떠나서, 왜 일본은 기회만 있으면 다른 나라들을, 특히 우리 조선을 침략하려고 그렇게 혈안이 되어 있는 거요? 임진왜란 때도 그랬고, 구한말 때도 그랬고 말이오.”
“자고로 힘센 놈이 약한 놈을 괴롭히고 잡아먹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오. 우리 일본이 땅덩어리로 보나 인구수로 보나 자원으로 보나 국력으로 보나 조선보다 훨씬 더 강한데, 그걸 모르고 자꾸만 왜놈이라고 얕보고 무시하다가 번번이 당한 거 아니오?”
“안타깝지만 사실이오. 우리가 성리학과 공리공론에 사로잡혀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국제 정세에 어둡고 무지했다는 건 인정하오.”
“우린 오래전부터 당신네들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소. 임진왜란 당시만 해도 우리 도요토미 히데요시 태합께서는 명나라는 물론이고, 저 멀리 인도까지 정복을 하려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었소. 그리고 태평양 전쟁 때는 감히 미국까지도 넘보려고 했었고. 비록 다 실패로 끝나기는 했지만 말이오.”
“바로 그런 게 문제란 말이오. 그런 망상이 결국 번번이 패망을 자초하고, 상대방은 물론 당신네 백성들조차 도탄에 빠뜨리지 않았소?”
“부끄럽지만 인정하는 바이오.”
“도대체 왜 당신네들은 그런 무모한 망상을 버리지 못하는 거요?”
“우리 일본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조현병과도 비슷한 그런 질환을 앓아 왔소.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대륙으로부터 고립된 섬나라인 데다 빈번한 태풍과 지진 그리고 화산 폭발 때문이 아닌가 하오. 솔직히 말하자면, 한반도에서 우리보다 한참이나 앞서가던 고구려 백제 신라의 우수한 문화에 대한 열등감이 더 큰 원인인 것 같소. 어쨌거나 그래서 우리 일본인들은 평소에는 지극히 얌전하고 소심하게 살다가,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이 커지면 한 번씩 크게 발작을 하는 것 같소.”
“난 또 페리 제독이 대포를 무시무시하게 쏘아대며 강제로 개항을 시켰을 당시의 엄청난 충격으로 인해 당신들 국민에게 정신분열증이 생긴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병의 뿌리가 아주 깊은가 보오.”
“그렇소. 하지만 우리나라 팔자소관이 그런 걸 어찌하겠소. 아무려나 내가 일본에 근대국가를 건설한 이후, 그 모든 시스템이 일본은 물론 한국에도 지금까지 계속 유지되고 있어서 흐뭇하기 그지없소. 최근에 와서 좀 낡았다고 비판을 받기는 하지만 말이오.”
“그동안 우리는 당신이 쳐놓은 그 악랄한 덫에서 빠져나오려고 100년 이상이나 엄청나게 고생했소. 특히 분단과 전쟁을 겪으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온 민족이 피땀을 흘려가며 노력해서 이제 겨우 벗어났소. 아직도 당신을 은밀히 존경하는 친일 매국노 후손들과 자생적인 추종자들까지 합세해서 기득권을 지키려고 난동을 부리고는 있지만, 얼마 안 가서 자연스럽게 정리될 거라고 보오.”
“그만큼 내가 구축해 놓은 세계가 뛰어났다는 반증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물론 나 혼자서 만든 게 아니고, 우리 일본이 오랫동안 쌓아온 역량을 총 결집해서 만들었지만 말이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많이 달라졌소. 그동안 우리는 당신들이 따라올 수 없는 차원의 세상을 만들었소. 특히 이번에 코로나 사태를 당해서 한 일 양국이 대처하는 걸 비교해 보니까 당신이 만든 체제는 이제 수명이 다한 것 같소. 그리고 아직은 과거사 문제로 티격태격하고 있지만, 2030년 이후에는 한국이 대부분의 분야에서 일본을 앞선다는데, 그때 가면 비로소 식민지의 유령과 당신의 손아귀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셈이오. 참 질기고도 무서운 악연이었소.”
“그러게 말이오. 내가 그래도 한국이 오늘날 이렇게 발전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걸 좀 알아줬으면 좋겠소. 몰라줘도 할 수 없지만 말이오.”
“적반하장도 유분수요. 그때 우리 선조들이 조금만 더 일찍 정신을 차렸더라면, 조선이 먼저 크게 발전해서 일본을 근대화시킬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오.”
“역사에 가정은 없는 법이오. 하지만 만일 그랬더라면 우리 일본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을 테고, 진정한 동양 평화를 이룩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최근에 한국은 명실상부한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소. 그런데 약소국을 침략해서 식민지 수탈을 하지 않고 선진국이 된 나라는 세계 역사상 한국이 유일하다고 하오. 정말로 대단하지 않소?”
“아닌 게 아니라 정말 대단하오. 점점 몰락하고 있는 우리 일본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소.”
“동양 평화는 결국 한 중 일 세 나라가 중심이 돼서 이룩해야 하는데, 현재 동양의 고유한 정신과 철학은 대부분 없어지고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어서 그게 문제요. 일본은 너무 물질화되었고, 중국은 너무 왜곡이 되었고, 한국이 그나마 잘 지켜오고 있으니 한국을 중심으로 동양 평화를 이룩해 나가는 게 좋겠소. 이게 내가 옥중에서 미처 다 쓰지 못한 <동양 평화론>의 결론이라 할 수 있소.”
“참 일리 있는 말이오. 꼭 그렇게 되기를 빌겠소. 또 모르지요. 대략 2050 년쯤이면 일본이 한국의 식민지가 되어서 새로운 문명을 열심히 배우고 있을지 누가 알겠소?”
“그런 일이 없어야겠지만, 만일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당신네들처럼 천박한 하사관 제국주의를 하지 않고, 아주 품위 있고 멋있는 장군 제국주의를 한번 해보고 싶소.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보겠소.”
“그럼 그때 가서 또 만납시다.”
“그럽시다. 잘 가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