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가라사대(28)

몽골의 그랜드캐년, <바끄가자링 촐로>의 추억!

by 김혁

어느덧 10월이다. 세상이 제아무리 시끄러워도 계절은 어김없이 오고 간다.

추석도 벌써 지나고, 절기가 추분을 넘어가자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제법 써늘해졌다. 그리고 한밤중이면 창문을 통해 달빛이 방안으로 가득 들어와서 꽤나 운치가 있었다. 놀자는 요즘 지내기가 쾌적해서 기분이 아주 좋았다. 비록 누추한 옥탑 방에 홀로 살고 있지만, 이럴 때는 어느 신선이 부럽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더위 때문에 밤마다 몸부림치며 뜨거운 밤을 보냈던 생각을 하자, 슬며시 웃음이 나오면서 염량세태(炎凉世態)라는 고사성어의 어원이 절로 이해가 갔다.

오늘 새벽에도 놀자는 이상한 낌새를 채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평소와 달리 아주 묘한 기분이 엄습했다. 꼭 신천지가 도래한 것 같았다. 깊은 잠을 자면서도 웬일인지 눈앞이 환하게 밝아오는 것을 분명하게 느꼈다. ‘아! 그래 바로 그거다!’ ‘드디어 내게도 깨달음이 찾아오는 모양이다!’ ‘이 얼마나 오랫동안 간절히 기다렸던 순간인가!’ 그는 떨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고 잠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달빛이 그의 얼굴은 물론이고 방안 가득 흥건히 젖어 있었던 것이다.

“히히! 그러면 그렇지!”

“바랠 걸 바래야지. 내 주제에 깨달음은 무슨 놈의 깨달음!”

“이태백의 시 중에, 비몽사몽간에 평상 앞의 달빛을 서리가 내린 줄로 알고 깜짝 놀라, 머리를 숙이고 고향 생각을 했다는, 뭐 그런 시가 있었지.”

“내가 꼭 그 짝이로구먼, 히히히!”

놀자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다시 자리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하지만 잠은 좀체 오지 않고, 이런저런 추억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라서 달빛과 함께 어우러져 흥겹게 춤을 추었다. 그리고 언젠가 꼭 이렇게 달빛에 흠뻑 젖어서 흥청댔던 기시감이 자꾸만 들었다. ‘그러니까 그게 언제 어디였더라?’ 그렇게 한동안 생각하고 있노라니, 비몽사몽간에 어떤 풍경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 몽골의 <바끄가자링 촐로>다!”


몇 년 전에, 놀자는 지인들과 함께 몽골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하루 종일 러시아제 구닥다리 승합차 푸르공을 타고 망망대해와도 같은 초원을 가슴이 뻥 뚫리도록 신나게 달린 뒤, 밤늦게 <바끄가자링 촐로>에 도착한 다음날 새벽이었다.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주섬주섬 옷을 입고 게르 밖으로 나오니, 초원은 지금 막 태어난 듯 너무나 정결하고 고요했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 위에 하얀 게르 몇 채가 덩그러니 모여 있었다. 새벽안개 어스름 속에서, 그것은 마치 망망대해에 떠 있는 외로운 섬처럼 보였다.

놀자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무의식적으로 바위산 쪽을 향해 걸었다. 서늘한 새벽 공기 속에서 진한 허브 향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콧속을 쏴아-! 하고 파고들었다. 묵직하게 남아 있던 잠 기운이 확 달아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풀잎에 매달린 이슬방울들이 서서히 바짓가랑이를 적셔왔다.

언제나 그의 영혼을 납덩이처럼 짓누르던 자의식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늘 앞장서 가던 불운한 운명의 그림자도 까마득히 뒤처져 보이지 않는 바람에, 마음이 더없이 가뿐하고 상쾌하였다. 모든 길을 다 잃어버리고 난 뒤에야 비로소 아무 조건 없는 행복이 찾아온 것이었다. 그동안 살아온 날들이 먼 꿈속처럼 느껴졌다. 이대로 생을 마감한다고 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주변 공기가 너무나 고요하고 적막한 데다, 도저히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초절 한 느낌으로 가득해서, 문득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했다. 놀자는 자신도 모르게 광활한 대지에 오체투지를 하고 엎드렸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울컥하며 울음이 터져 나왔다.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졸지에 부모를 잃고 오갈 데 없는 불쌍한 고아가 된 것 같은 심정이었다. 서러움이 끝없이 밀려와 몸부림을 쳤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귓가에 부드러우면서도 힘찬 소리가 들려왔다.

“쥬게르! 쥬게르!(괜찮아, 괜찮아)”

깜짝 놀란 그는 고개를 쳐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푸른 초원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었다. 일찍 일어난 메뚜기 몇 마리만이 옆에서 ‘차르르---.’ ‘차르르---.’ 하고 소리를 내며 날고 있을 뿐이었다. 환청을 들은 것 같았다. 그는 다시 엎드려 여진처럼 밀려오는 서러움에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잠시 후, 또다시 그 소리가 들려왔다.

“쥬게르! 쥬게르!”

그는 비로소 그것이 환청이 아니라, 메뚜기 날개 소리를 통해서 들려오는 대지 모신의 목소리라는 걸 깨달았다.

“아아---!”

그는 대지 모신의 깊은 사랑을 느끼고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오래전부터 자신을 기다려 온 것을 알고는 더욱 감격하였다. 놀자는 대지 모신이 살고 있는 대초원과 깊은 유대감을 느꼈다. 아니, 완전히 하나가 된 것 같았다. 몸과 마음은 순결한 초원의 정기로 충만하였다. 이제 대지의 아들로 새롭게 태어난 셈이었다.

저만치, 그리 높지는 않으나 영기가 서린 바위산들이 줄지어 에워싸고 있었다. 그는 그곳을 향해 부지런히 걷기 시작했다. 해가 뜨기 전의 새벽 벌판은 더없이 정갈하고 아름다워 성스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함부로 걷는 것조차 미안할 정도여서,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떼어 놓았다. 흰색과 보라색 야생 부추 꽃이 끝없이 피어있었다. 그 사이사이에 각종 허브가 저마다 꽃을 피우며 자라고 있었다. 여름 한 철, 두어 달 동안에만 덧없는 세상의 꿈처럼 일제히 피었다 지는 초원의 빛 이자 영광이었다. 서늘한 미풍이 불어올 때마다 온몸이 허브 향으로 간지러웠다.

이윽고 먼동이 틀 무렵, 놀자는 바위산 아래 계곡에 도착했다. 계곡 안에는 서늘하고도 엄숙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는 용맹한 전사들의 피가 오랜 세월 동안 엉겨 붙은 듯한 검붉은 바위들이 층층이 쌓여 있는 바위산을 천천히 올라갔다. 한 발짝 한 발짝 오를수록 결전의 장소를 향해 나아가기라도 하듯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계곡 위에 올라서 보니, 아주 높지는 않아도 제법 가파른 낭떠러지가 곳곳에 숨어 있었다.

해가 떠오르자 아지랑이가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그 속에서 언뜻언뜻 무지개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막 떠오르기 시작한 금빛 햇살을 받은 바위들은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 더욱 기묘하고 영험하게 빛났다. 그는 말할 수 없이 신비한 기분에 사로잡혀 한동안 꿈을 꾸듯이 바위 위에 누워 있었다. 문득 시간과 공간 사이에 깊은 틈이 생겨서, 먼 과거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엄습하였다.

그렇게 넋이 반쯤 나간 상태로 비몽사몽간에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잠시나마 황홀하면서도 난해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놀자는, 하루 종일 어떤 주술에 사로잡힌 듯 헛소리를 마구 지껄이며 들떠서 지냈다. 그리고 그날 밤 보름달이 휘영청 떠오르자, 몇몇 지인들과 함께 바위산을 다시 찾았다. 추락 위험 때문에 산에 올라가지는 못하고, 주변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맛이 좋기로 유명한 칭기즈 보드카를 마시면서 춤추고 노래하며 놀았다. 그렇게 늑대들마저 홀릴 듯 검푸르게 빛나는 달빛 속에서, 먼 옛날로 돌아간 듯한 기분으로 흥청대며 놀다가 밤늦게 게르로 돌아온 놀자는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주 이상한 꿈을 꾸었다.


놀자는 제국의 왕자였다. 하지만 피비린내 나는 골육상쟁에 염증을 느껴, 세속적인 욕망을 다 버리고 출가한 뒤로는 <바끄가자링 촐로>의 수정 바위 틈새에 작은 동굴을 파고 들어가서, 머나먼 티베트에서 전해 온 소중한 불법을 깨닫기 위해 목숨을 바쳐 치열하게 수행을 하였다. 불법 중에서도 고승들 사이에서만 비밀리에 전해 내려온 ‘빛과 소리를 통한 물질과 비 물질 간의 경계 뛰어넘기!’라는 특별한 밀교 수행에 심혈을 기울였다.

몸과 마음을 통째로 수정처럼 맑고 빛나게 만드는 수행의 길은 멀고도 험하였다. 가끔 점검을 위해 스승을 찾아뵙는 것 말고는, 바람과 구름과 양 떼만 벗을 삼아 금욕과 명상으로 지새우는 기나긴 인고의 세월이 계속되었다.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려던 적도 많았고, 고독과 절망 끝에 절벽에서 뛰어내리려고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깊은 수정 바위 동굴에서 나오는 영험한 기운이 커다란 힘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색찬란한 빛과 함께 하늘에서 우레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들아! 사랑하는 내 아들아!”

“너는 마침내 모든 난관을 다 통과했도다!”

“머지않아 도를 완성하리니, 앞으로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거라!”

그날 이후로는 수행이 너무나 쉽고 잘 되었다. 초라하기 그지없던 모습도 하루가 다르게 선풍도골로 변해갔다. 가만히 있어도 환희심이 절로 일었다. 이제 각종 신통력을 자유자재로 구사함은 물론이고, 투명인간으로 변신을 하고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닐 날도 그리 머지않은 것 같았다.

그렇게 그가 신통력을 이용해서 동굴을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궁전처럼 보이도록 꾸며놓고 환희심에 젖어 지내던 어느 날, 웬 젊고 아리따운 여인이 찾아왔다.

“수행자여, 저를 알아보시겠어요?”

여인이 공손하게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누구신지---.”

놀자는 여인의 정체를 알고 가슴이 철렁했지만. 일부러 시치미를 뗐다.

“잘 아시면서 괜히 그러시네요, 후후후!”

여인이 고개를 들고 더없이 쓸쓸하고 공허하면서도 기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사실은 그동안 절 기다리고 계셨잖아요. 안 그래요? ---궁전을 참 화려하게도 꾸며 놓으셨네요. 저를 위한 건가요?”

계속 깊은 침묵을 지키고 있는 수행자 앞에서 여인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음, 이 멀고 누추한 곳까지 어쩐 일이오?”

마침내 놀자가 무겁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야 당신이 보고 싶어서 왔지요.”

“그런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어서 본론이나 말해요.”

“이제 때가 무르익었습니다. 이번에는 당신이 저를 도와주실 차례예요.”

여인이 정색을 하고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알았소. 그대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하리다.”

놀자는 여인의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저를 희생양으로 바친 뒤, 몇 생 동안이나 당신은 수행에 몰두하며 용케도 저를 피해왔지만, 이제 피할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어요. 아시겠어요?”

여인이 심판관처럼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인연법은 절대 피해 갈 수 없는 것. 인과응보는 달게 받겠소. ---그런데 나를 어찌 찾았소?”

“저도 몇 생 동안이나 피눈물을 흘리며 노력했지요. 그래서 이제 그 정도는 되지요, 후후!”

“대단하오! 그리고 날 이리 찾아주어서 정말로 고맙소.”

“진심이세요?”

“그렇소. 진심이요.”

“그리 말씀해주시니 정말 감사해요.”

놀자와 여인은 두 손을 맞잡고 수정처럼 맑은 눈물을 흘렸다.

“자, 그럼 저를 따라오세요.”

두 사람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절벽 끝에 서서, 몇 생 만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깊이 포옹하였다. 궁극의 완성을 눈앞에 둔 놀자와 여인은 포옹만으로도 비할 데 없이 황홀한 법열에 잠겼다. 그렇게 영원과도 같은 순간들이 하염없이 흘러갔다.

“자, 어서 나를 희생양으로 삼아서, 부디 그대가 먼저 도를 이루도록 하시오!”

문득 꿈같은 상태에서 깨어난 놀자가 재촉하였다.

“네! 하지만 저는 도를 완성하기보다 당신과의 사랑을 택하겠어요!”

결연하게 말을 마친 여인이 놀자를 꼭 껴안은 채 벼랑 아래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완전히 하나가 된 두 사람의 몸이 바위에 부딪쳐 산산조각 나는 순간, 우주 전체가 슬프고도 기괴한 사랑의 진동으로 부르르 몸을 떨었다---.

놀자는 그때 꿈을 오늘 새벽에 되풀이해서 꾸었다. 오래전에 꾸었던 꿈을 다시 꾸다니, 정말로 신기한 일이었다. 그리고 꿈 내용이 꼭 사실인 것만 같았다. 깨고 나서도 간담이 서늘하고 등골이 오싹하였다. 여운이 오래 남아 있는 꿈 때문에 그는 오랜만에 윤회와 구도 그리고 사랑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구도란 모름지기 끝없는 생사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 해탈을 하기 위함인데---.”

“하지만 사랑의 완성이 없는 도의 완성이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어쩌면 윤회는 사랑의 완성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 나처럼 사랑이 부족한 사람들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윤회를 되풀이해야 할까?"

“할 수 없지 뭐.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사랑을 하는 수밖에, 히히히!”

"아, 그런데 지난 억겁의 세월동안 내가 사랑했고 또 나를 사랑했던 그 많은 남자와 여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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