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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아 Jun 16. 2023

떠나자 세비야로

집순이의 3박 4일 세비야 여행기


내가 싱글이었다면 프랑스에 온 김에 유럽 여행을 알차게 다녔을 텐데. 아니다. 싱글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촌구석으로 오지도 않았으리라.


일 년 내내 근교로만 살랑살랑 돌아다니다가 스페인 남부 세비야에 놀러 갈 일이 생겼다. 작년에 이탈리아에 놀러 온 김에 우리 집에 들렀던 지인이 스페인 여행을 한다는 것이 아닌가! 마침 한가한 시즌이라 목-금 월차를 내고 주말을 끼워 3박 4일 세비야 여행을 하기로 했다. (신혼부부 여행에 끼여노는 나)



29살 때 혼자 2주 정도 스페인 여행을 한 적이 있다. 그땐 바르셀로나 - 이비자 - 마드리드를 여행했었는데 대부분 혼자 다녔지만, 같은 기간에 바르셀로나에 온 회사 동료랑 중간중간 만나서 저녁도 먹고 시간이 맞으면 투어도 같이 했었다. 바르셀로나도 참 좋았는데 스페인 여기저기 돌아다닌 친구들이 진짜 스페인은 안달루시아라며 강추했던지라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혼자)


제네바에서 세비야까지는 2시간 비행기를 타야 하니 남편은 집에서 고양이들을 보고 있겠다고 했고, 그렇다면 오래간만에 혼자 여행해보겠구나 싶어서 냉큼 항공권과 기차표를 사고, 시내 한복판에 호스텔을 잡고 (10년 만에 호스텔 도미토리에 묵게 될 줄이야), 플라멩코 공연이나 유적지 티켓도 미리 예매했다.


스페인 광장




첫째 날 : 제네바에서 세비야로 이동. 비 내리다 흐림


프랑스 동부 끝자락에서 제네바 공항까지는 기차로 한 시간 남짓. 제네바역에서 제네바 공항까지는 기차로 7분 거리다. 지연과 캔슬이 잦은 이지젯이라 걱정을 했는데 가는 길도 오는 길도 지연 없이 정시 이착륙!


스위스 기차역이나 공항은 작아도 깨끗했고 역시나 비쌌다. 생수 한 병과 크라상을 사 먹었는데 7 스위스 프랑.. 우리 동네에서는 3유로인데. 역시 스위스구나.


세비야 건물들은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세비야 공항에 내리니 역시 작은 공항이긴 해도 나름 잘 정리가 되어있다. 생각해 보니 비행기를 타고 내려서 세비야 시내로 이동하는데 출입국 사무소도 없고, 고로 여권 도장 찍을 일도 없었다. (진짜 신분증으로만 사용함)


공항에서 세비야 시내 호스텔까지 Uber 스페인 버전인 Cabify를 타고 이동했다. 15유로에 25분 거리. 파리보다 저렴한 물가에 감동.


멋있었던 공연


숙소에 짐을 풀고 폰 충전을 하고 나니 어느새 비가 그쳤다. 시내 구경도 할 겸 살살 걸어 다니다가 플라멩코 공연을 보았는데 공홈에서 예약한 거라 25유로면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다니다 보니 시내에서는 18유로 티켓을 판매했다.. 저녁에는 타파스 바에 들러 끌라라(맥주에 레모네이드를 섞은 것)와  타파스를 먹고, 야경도 보러 갔다 왔다. 타파스 한 접시에 4유로, 끌라라 한잔에 1.4유로라니.. 10년 전 바르셀로나보다 더 싼 것 같은데!?


첫날 먹은 타파스
투우로 유명한 곳이라 소머리가 장식된 곳이 많다



둘째 날 : 아침까지 비가 오다 그침 오후에는 쨍쨍


아침 일찍 스페인 광장까지 걸어갔다 왔다. 원래 오전에는 호스텔에서 하는 무료 시내 워킹투어에 참가하려고 했는데 하필 가이드가 아파서 이날 투어는 캔슬되었다길래 점심 먹기 전까지 쇼핑이나 할까 하고 시내로 걸어가 보았다.


스페인 광장은 세번이나 방문함
골목골목이 매력적


우리 동네 근처에서는 볼 수 없는 Zara, Mango, Oysho, Lush 등등 많은 브랜드가 쇼핑 거리에 몰려있었다. 온 김에 속옷과 양말, 마스크팩을 구매하고 돌아다니다가 안달루시아 느낌이 물씬 나는 타일로 만든 온도계를 기념품으로 샀다. 마그넷도 이쁜 게 정말 많았는데 딱히 모으지는 않아서 살까 말까 하다 그냥 돌아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마그넷 하나에 5유로는 너무하지 않나)

러쉬도 한국보다 싼듯
기념품으로 사온 온도계


영업한 지 120년이나 되었다는 타파스 바에서 맛있다고 소문난 추로스를 먹었는데 세상에나.. 120년 동안 살아남은 비결이 있었네! 한국 사람들한테도 입소문이 제대로 난 모양이라 일하는 총각이 한국말도 했다. 추로스 주면서 '존맛탱'이라고 해서 빵 터짐.


120년된 추로스 맛집의 갓 튀긴 추로스. 명불허전이로군
매일매일 먹어도 맛있는


저녁에 세비야에 도착한 지인 커플을 만나 저녁을 먹고 야경을 보러 스페인 광장에 또 걸어갔다 왔다. 관광객이 많던 아침이랑 조용해서 고즈넉한 저녁의 느낌이 많이 달랐다.


새벽에 비가 내려서 기온이 좀 떨어진 터라 하루종일 선선해서 걷기 좋은 날이었다. 자기 전에 확인해 보니 하루종일 17km를 걸은 날.


해질녘 스페인 광장





셋째 날 : 햇볕 쨍쨍


오전에는 5시간짜리 세비야 시내 워킹 투어를 했다. 스페인 광장(또!) - 황금의 탑 - 유대인 지구 - 세비야 대성당을 걸어 다녔는데 세비야의 역사와 명소에 얽힌 사연을 들으니 투어를 세비야 도착한 날 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아는만큼 보인다. 그냥 예쁜 건물이었던 곳이 알고보니 대항해 시대에 지도를 편찬 하는 곳이었거나 당시 스페인과 미국을 연결하는 배가 선착하는 곳이었다.


9시부터 12시까지 거의 쉬지 않고 돌아다니다가 투어의 마지막 장소인 콜럼버스의 관이 안치된 세비야 대성당에 갔다. 성당 규모도 크고 보관된 유물들도 많고 역사도 길어서 볼게 많긴 했는데 땡볕에 몇 시간을 걸은 뒤라 중간쯤에는 투어고 나발이고 좀 앉아서 쉬고 싶다는 생각뿐..


콜롬버스의 관
금박을 입힌 성당 내부

성당 내부를 돌아보고 시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대성당의 히랄다 탑에 올라갔는데, 세비야 대성당 자체가 예전에 모스크였던 곳을 성당으로 개조한 곳이라 이슬람 사원은 하루에 다섯 번 기도시간에 맞춰 종을 치기 위해 첨탑 안에 말을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계단 없이 비탈길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여기까지 왔는데 탑에도 올라가 봐야지!하고 34층을 걸어 올라갔으나.... 탑 위에서 보는 시내 전경을 별게 없었고, 다시 걸어오는 내내 피곤해 죽는 줄. 어쩐지 올라갈 때 마주 걸어 내려오던 사람들 표정이 썩었더라니..


알카사르 궁전


성당 근처 타파스 바에서 상그리아와 타파스를 잔뜩 먹고 알카사르 궁전으로 향했다. (성당 바로 옆에 있다)


이곳은 바로!! 왕좌의 게임 촬영지. 웨스테로스 남부 Dorne지역의 마르텔 가문은 전체적으로 영국과 비슷한 왕좌의 게임에서 남부 스페인 느낌이 많이 나는데 세비야에서 해당 부분 촬영을 많이 했다고 하고 마침 알카사르 궁전에서도 촬영했어서 신나게 구경했다.


워낙 미로 같은 궁전이라 후다닥 둘러보기만 했는데도 1시간이 소요되었는데 오전 투어로 체력이 방전되어 막판에는 영혼 없이 사진만 찍었다. 시간이 있으면 정원도 크고 앉을 곳도 많은 곳이라 들어가서 반나절 멍 때리고 있어도 좋을 것 같다.



저녁에는 오랜(?) 해외 생활로 지친 나를 위로하기 위해 한식당에서 치킨과 순두부찌개를 먹었다. 남편에게 사진을 보내주자 세비야까지 가서 한식을 먹었냐고 포복절도. (그래도 치킨은 맛있었다고..) 결국 이날도 17km 정도 걸었다. 아이고 다리야..


세비야에서의 마지막 석양



 

넷째 날 : 새벽같이 일어나서 공항으로 이동 후 귀가


결국 세비야에서는 사흘정도 있었는데 딱 만족스러움. 어지간한 명소는 다 도보권이라 시내 한복판에 숙소 구해서 걸어 다니길 잘한 것 같다. 무뚝뚝한 프랑스 사람들 사이에서 지내다가 친절한 사람들에 맛있고 저렴한 타파스에 따뜻한 햇살까지 모든 것이 좋았어서 다음에는 남편이랑 같이 오고 싶음.



총평 : 색깔로 예를 들자면 바르셀로나가 회색이라면 세비야는 노란색(세비야의 건물은 흰색, 노란색, 붉은색으로만 색칠할 수 있다고 한다. 강을 건너면 다소 최근에 세비야로 병합된 지역이 나오는데 건물 색이 다르다) 확실히 스페인 대항해 시대의 중심이었던 곳이라 역사적인 명소도 많고, 스페인에서 독립하고 싶은 카탈루냐의 중심인 바르셀로나랑은 느낌이 확연히 다름. 결론은 둘 다 가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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