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아 Jun 26. 2023

개를 주웠다


월요일 출근길이었다. 잠이 덜 깬 눈을 비비고 라디오 주파수를 새로 맞추며 집 앞의 한적한 길을 영혼 없이 운전하던 참이었다. 코너를 돌자마자 내 차 앞에 어리둥절해 보이는 작은 개 한 마리를 보았다. 응?? 차가 지나가는데 잘 움직이지도 않네?? 개를 돌아 지나치면서 아무래도 찝찝한 마음에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 집에서 쓰레기 소각장 가는 길 있지. 나 거기서 개를 봤는데 도로변에 서있는 게 아무래도 좀 이상해. 한번 가봐 줄래?"


동네에서 자주 보던 개는 아닌데 대체 뭐지. 설마 휴가기간이라고 누가 부지런하게 이런 시골까지 와서 버리고 간 건 아니겠지? 출근길 내내 오만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월요일 아침은 8시부터 회의의 연속이라 두 시간 여가 지난 후에야 남편이랑 통화를 할 수 있었는데, 개가 눈이 멀었다는 것이다. 귀도 잘 안 들리는 것 같다고 했다. 혹시나 해서 우리 집 앞에 사는 개를 많이 키우는 이웃에게 물어보니 그 집 개는 아니란다. 알고 보니 맨날 개가 짖어 우리가 불평했던 그 집은 갈 곳 없는 장애견들을 개인적으로 돌봐주는 쉘터 같은 곳이었다. (늦게까지 개 짖는다고 화내지 말아야지)


수소문 하는 동안 일단 집 차고에 데려다 두었다
혹시나 해서 고양이 사료와 물도 놔두었지만 먹지는 않았다고


일단 남편이 개를 데리고 근처 동물병원에 등록된 칩이 있는지 확인하러 다녀왔는데, 칩은 없었다고 한다. 이동하고 진료하는 내내 침착한 것으로 봐서 절대 들개는 아닌 것 같다고. 나이가 많은 개는 아니지만 눈도 안 보이고 귀도 좀 안 들리고, 벌레도 좀 있고, 그런데 개가 굶지도 않았고 체격은 괜찮은 것으로 봐서 최근에 유기되거나 잃어버린 것 같다고 보호소에 데려다주라고 했다. 일주일에서 열흘에 이르는 공고 기간 동안 주인을 찾아보고 주인을 찾지 못하면 SPA(동물 보호소, 우리 티구를 데려온 곳)로 가게 된다고.


"눈도 안 보이고 귀도 안 들리는 개를 누가 데려가겠어.. 불쌍해.."

"우리 집에 고양이가 없으면 몰라도 고양이를 세 마리나 키우면서 눈도 안 보이고 귀도 안 들리는 개를 키울 수는 없어."


내 망설임을 읽었는지 남편은 단호했다. 하긴 지금도 고양이 세 마리를 보살피는 일을 하루종일 집에 있는 남편이 도맡아 하는데. 거기다 손이 많이 가는 장애견까지 돌보자는 건 순전히 내 이기심이다.


이제 집나가지 말아라


그러고 몇 시간이 지나 남편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주인 찾았어!!"

"찾았어?? 누구래?"

"우리 동네 노부부래. 강아지 상태가 안 좋아서 안락사될 뻔한 애를 입양해서 키우는 모양인데 이번에 놓쳤나 봐."


보호소로 들어간다는 소식에 마음이 영 불편했는데, 이렇게 바로 주인을 찾았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안 보이고 잘 안 들리는 아이니 어르신들이 이제 문단속 잘하시길 바랄 수밖에.



작가의 이전글 떠나자 세비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