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개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난 한식은 국물맛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국물 요리를 나열하자면 끝도 없는데 그냥 국물 요리는 다 좋은 것 같다. 프랑스에 와서 아쉬운 건 좀처럼 국물요리를 찾기 어렵다는 것. 남편의 고향인 프로방스 지방으로 내려가면 매운탕 비스무리한 부야베스가 있지만 내가 있는 론알프스에서 해산물 요리는 그림의 떡이다.
겨울엔 수시로 비가 내려서 얼큰한 전골에 소주 한잔이 당겨도,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있을 리가 없다. 어쩌다 외식이라도 하는 날엔 '그래 뜨끈한 어니언 스프라도 먹어보자!'라고 호기롭게 메뉴판을 뒤져본들 어니언 수프를 판매하는 곳도 많지 않다. 어쩌다 찾는다고 해도 딱히 내 입맛에 맞지 않아(세상 밍밍하다) 남편이 몇 번 잔반 처리하고 난 뒤에는 그냥 안 먹게 되었다.
게다가 한국에 있을 땐 남편이 국물 요리를 좋아하지 않아도 같이 국물요리를 즐길 사람이 많았다. 동료들이랑 회사 근처 순대국밥집에도 가고 친한 동생들이랑 김치전골을 먹으러 가기도 하고, 친정에 갈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돼지고기를 잔뜩 넣은 김치찌개나 매콤한 된장국이 기다리고 있으니 딱히 아쉽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사 먹을 수 없다면 만들어 먹을 수밖에.. 이렇게 프랑스 시골 생활 1년 만에 나의 요리 실력이 일취월장하였다.
김치를 사 먹기엔 너무 비싸고, 살만한 곳도 없어서 작년 겨울엔 배추김치와 깍두기도 직접 담그고, 너무 쉬어 그냥 먹기 어려운 정도가 되면 볶음밥이나 찌개를 만들어 먹었다. 남편은 고기가 들어간 모든 한식을 사랑하지만 유독 김치나 국물 요리는 꺼려했는데, 그도 자극적인 양념 맛이 그리웠던지 하루는 고추장 감자 짜글이로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좋았어!!
그때부터 남편의 가능성을 본 나는 찌개를 끓일 때마다 조금씩 된장의 비중을 늘려 나갔다. 고추장 베이스로 된 찌개부터 시작해서, 고추장과 된장을 반반 섞은 고기찌개, 그리고 지난 주말에는 고기 없이 두부와 야채, 된장과 쌈장만으로 간을 한 된장찌개를 만들었다. 된장 100%는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아서 국그릇에 조금만 퍼담아 주었는데 웬걸. 맛있다며 한 그릇 쓱싹하는 것이다.
이제 조금만 더 노력하면 미역국도 먹을 수 있겠는데? 해산물, 해조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그에게(나도 사실 해조류는 별로..) 미역국은 난이도 최상일테지만 조금씩 시도하다 보면 언젠가 그도 짭짜름한 미역국의 매력을 알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