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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아 Jun 30. 2023

내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고 싶은 동료들

프랑스어에서 H는 묵음이라..


라떼는 영어를 처음 배울 때 영어이름을 만드는 것이 유행이었다. 보통 한국 이름은 영미권 사람들이 발음하기도 어렵고, 그렇다 보니 기억하기도 어렵고. 뭐 이런저런 이유였을 것이다. 영어로 발음하기 쉬운 이름이라면 그냥 쓰는 경우도 있었지만, 나와 동생은 현아, 현정으로 외국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워하는 모음 'ㅕ'에 받침까지(특히 동생 이름은 난이도 극상) 있어서 하나씩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땐 그랬다) 생각해 보니 내 이름이 민아나 윤아였다면 연음으로 Mina, Yuna로 발음이 되니 딱히 영어 이름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외국계 회사에서 오래 일하면서 다양한 국가의 동료들과 일하다 보니 내 한국 이름보다는 영어이름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편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내가 대학생 때부터 사용한 영어이름은 외국인 천지인 그룹사 전체에서도 중복되는 이름이 없었다. (20대 초반의 내 작명센스에 박수를!)



문제는 내가 프랑스로 이동하면서 발생했다. 평소처럼 소개하면서, 내 이름은 현아지만 발음하기 어렵다면 내 영어이름으로 불러도 좋다고 했더니 굳이 굳이 내 이름으로 부르겠다는 것이다.


김까지는 좋았다. Kim을 성이 아닌 이름으로 쓰는 사람들도 제법 많고 어려울 게 없는 발음이라 괜찮았지만 회사에서 성까지 부를 일은 없으니 일단 패스. 문제는 '현아'부분이었다. 프랑스어에서 H는 묵음인 것이다.. Hotel이라고 적혀 있으면 [오뗄]이라고 발음한다. 그래서 엄청 신경 쓰지 않으면 내 이름을 [유나]로 발음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는 [샤나]로 발음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아니 왜 거기서 sh 소리가 나는 건데..


그래서 일 년을 넘게 알고 지낸 동료들도 한 번씩 내 이름 발음 교정을 부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오늘 아침에도 어디 회의에 다녀온 보스가 내 이름을 제대로 부르고 싶다고, 몇 번째일지 모를 발음 교정을 부탁했다.


"현아, 네 이름을 제대로 부르고 싶은데, 어떻게 발음하는 게 맞아? 다시 한번 얘기해 주지 않을래? 옆팀 사람들은 너를 유나 또는 샤나로 부르던데 그게 맞아?" 사실 그는 내 이름을 누구보다도 더 정확하게 발음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음. 사실 네가 하는 발음이 정확해. 다른 사람들은.. 나도 여러 번 교정해 줬는데 이젠 포기했어. 어쨌든 나를 부르고 있다는 건 아니까. 하하"


한국 이름을 부르기 어려우니 영어 이름을 만들라던 영어강사들. 내 이름을 말하면 영어 이름은 없냐며 곤혹스러워하던 친구들. 그래서 영어 이름이 당연한 줄 알았는데, 프랑스에서는 내 이름이 어렵다고 프랑스 이름을 만들라고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사실 요즘 그런 이야기하면 인종차별이라고 난리 날 것이긴 하다), 다들 최선을 다해서 내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려고 노력한다.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것. 상대방을 존중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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