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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코 Jul 02. 2023

시댁에 가려다가 못 갔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대청소


2주 전이 시어머니 생신이었다. 주말에 가족들이랑 모이려고 했는데 하필 내가 가장 바쁜 시기라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해서 7월 첫째 주에 내려가기로 했다.


우리 집에서 시댁까지는 500km 정도에 운전하면 왕복 10시간이 넘는다. 운짱은 내가 담당하고 있으므로 사실 1박 2일은 좀 빠듯한 일정이나, 남편은 고양이들 걱정에 2박은 내켜하지 않았다.


아침 6시. 5시 알람을 맞추었는데 둘 다 끄고 자는 바람에 6시를 좀 넘겨서 일어났다.


“아오 나 샤워도 해야 되는데 ㅠㅠ 빨리 씻을게. 냉장고에 넣어둔 간식이랑 와인 챙겨줘”


후다닥 샤워를 하고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고 있으려니 부엌에서 남편의 짜증과 분노가 섞인 고함소리가 들렸다.


“아아악!! 징그러!!!!!!!”

“뭔데 뭔데?”

“우리 오늘 못 가겠어.”


전날부터 가기 싫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너네 엄마 생일인데 좀 적당히 해라..) 기어이 핑계 하나 만들었구나 싶었다. 남편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걸 보니 뭔가 하얀 것이 꿈틀꿈틀.. 뭐지..?


잘 안 보여서 안경 쓰고 다시 봤더니 주방이며 거실 바닥에 하얀 굼벵이 같은 것들이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것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


알고 보니 창고에 두었던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구멍이 났는데, 설상가상으로 거기에 파리가 알을 깠는지 구더기가 생긴 것이다. 글을 쓰는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구역질이.. 전날 저녁에는 이런 걸 못 봤으니 밤새 창고에서 기어 나와 온 집으로 이동한 것일 테다.


남편은 그냥 두면 순식간에 온 집안으로 퍼질 거라고, 바로 대청소를 해야겠다며 바로 시어머니에게 비상사태니 다음 주에 가겠노라고 통보했다.


짐을 다시 풀고 일단 빗자루로 구더기부터 쓸어 담았다. 쌓여있는 쓰레기들을 내다 버리면서 이제 쓰레기는 모아두지 않고 매일매일 치우기로 다짐도 했다.


아침 7시에 시작한 청소는 11시가 되어서야 끝날 기미가 보였다
당분간 거실에는 큰 러그 하나만 두기로 했다


다시 집에 돌아와서 러그며 고양이 장난감을 다 들어서 마당에 내놓고 내가 모래를 털어내고, 털도 걷어내는 사이 남편은 온 집안을 쓸고 닦았다. 일단 구더기들이 어디서 온 건지는 알았으니 1층만 청소하기로 했는데도 반나절이 걸렸다.


지난달에는 집안에 개미가 들어와서 곤욕을 치렀는데 이젠 구더기라니.. 시골에 살면서 온갖 벌레를 본 덕에 어지간하면 그러려니 하는 나와 남편에게 구더기는 타격이 컸다.


쓰레기는 자주 버리자. 특히 여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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