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 상승한 우리 삶의 질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집에는 에어컨이 없다. 한국에서 이사 올 때 다들 프랑스에서 에어컨 설치할 수 있는 집은 많지 않으니 가져가지 말라길래 한 시즌밖에 사용하지 않은 신상 에어컨을 친정으로 보내고 프랑스로 왔다.
한국은 기온이 30도를 넘긴 지 오래. 비도 많이 와서 꼭 찜통 같다는데 여긴 대낮에만 31도 정도로 올라갈 뿐 아침저녁으로는 22도를 왔다 갔다 한다. 요즘은 유럽도 많이 습해졌다고는 하지만 만두 찌는 찜 솥 같은 여름 날씨에 익숙한(사실 30년을 넘게 겪어도 그 더위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나에게는 이렇게 쾌적한 여름일 수가 없다.
작년에도 7월까지는 살만하다고 생각했는데 날이 점점 더워지면서 8월 한 달은 선풍기 만으로는 좀 힘들었다. 문을 다 열어서 맞바람이 치면 좀 나으련만 빌린 집이니 문이랑 창문마다 방충망을 설치할 수도 없고 (나무 방충망을 만들기는 했었지만), 고양이들이 집 밖으로 나갈까 봐 문을 열어둘 수도 없어 정말 답답했다. 다행히 바닥이 타일이라 난 8월 한 달 내내 시원한 타일바닥에 누워서 지냈다.
그러다 지난주. 구더기 사건 이후로 집 정리를 하다가 한국에서 가져온 방묘창을 찾은 것이다. 이미 2개는 주방과 현관문을 열어 둘 때 사용하는데 그것보다 좀 더 넓은 철망이라 거실 쪽 문에 끼워둘 수 있었다.
이 자리는 장미 나무를 심어 둔 정원과 그 사이를 뛰어다니는 새들, 그리고 집 앞으로 지나가는 사람들도 보이는 곳이라 금방 고양이들의 최애 장소가 되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이쪽 문과 캣티오를 통과하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나는 몇 시간이고 소파에 앉아 뒹굴거리기 시작했다.
유럽에 온 김에 MBA라도 하고 오지 그러느냐는 지인의 말에 아차 싶어서 부랴부랴 이번주 마감인 대학교에 원서를 써볼까 했는데, 꾸역꾸역 적긴 했지만 10,000자에 이르는 학업계획서나 동기를 완성하기 쉽지 않았다. 머리를 쥐어짜면 적을 수는 있겠지만 이렇게 날씨도 좋고 바람도 시원한데 스스로 채찍질을 하고 싶지 않았다. 에라이.. MBA는 무슨 얼어 죽을. 퇴근하면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그냥 이렇게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