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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아 Aug 02. 2023

시댁의 무릎냥이

나만 무릎냥이 없어..


여름휴가가 시작하자마자 시댁에 다녀왔다. 다음 주면 동생 결혼식이라 한국에 들어가야 해서 1박 2일의 짧은 일정으로 다녀왔다.


남프랑스로 내려가는 길에 네비 조작을 잘못해서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로 가는 바람에 7시간이나 걸렸다. 고속도로를 타면 500km가 넘는 거리지만 4시간-5시간 정도 걸리고, 국도를 타면 중간에 산을 넘어야 해서 350km 정도인데 7시간이 걸린다. 차가 막힌 건 아니었는데 휴가철이라 앞에 캠핑카나 카라반이 정말 많았다. 프랑스의 국도는 전부 1차선이라 컨테이너 트럭이너 캠핑카에 카라반 2개 연결한 빌런들을 만나면 정말 답이 없다. 우리도 거의 30km를 그 카라반을 따라 기어갔으니..


그래도 국도를 타고 코트다쥐르로 내려오는 길에는 유명한 베르동 협곡도 있었고 전체적으로 경치가 좋아서 신나는 음악 틀어놓고 노래하면서 운전했다. 그래도 7시간은 좀 길긴 해서 나중엔 엉덩이, 허리, 머리까지 다 아프더라.


어디부터 남프랑스라고 할 수 있냐고 남편한테 물어보니 ‘매미소리가 들리는 곳부터’란다. 남편은 코트다쥐르에 오면 매미소리와 바람에 실려오는 풀냄새에서 고향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 보니 우리가 사는 지역에는 매미가 없다.


시댁의 미아

집에 들어가니 시어머니의 고양이 미아가 반겨준다.


“미야아”

“오구오구 우리 미아 오랜만이네!”


반가워서 미아를 토닥토닥 쓰다듬어주니 냉큼 내 무릎 위로 올라와서 꾹꾹이를 시전 하기 시작했다.


“미아 발톱이 기니까 조심해”


시어머니가 미아는 외출냥이라 발톱 정리를 안 해줘서 발톱이 기니 꾹꾹이 할 때 아플 수 있다고 미리 말해주셨다.



시어머니의 외동냥이 미아는 완전 무릎냥이다. 사람들을, 특히 여자들을 좋아해서 나만 보면 무릎에 냉큼 올라와 꾹꾹이 하면서 쓰다듬어 달라고 골골거린다.


우리 내려온 김에 가족들이랑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는 시어머니 말씀에 그렇구나 했는데, 참 많이도 부르셨다.


할머니, 할아버지, 둘째 이모, 둘째 이모부, 사촌 두 명, 셋째 이모, 셋째 이모부, 사촌 조카 두 명, 시동생, 시동생 여자친구 마리앤, 옆집 이웃 두 사람. 남편이 무슨 동네잔치 하냐고 퉁박을 주었으나 그래도 이렇게 내려갈 때마다 온 가족이 모이니 북적북적하고 좋았다.



다들 모인 저녁시간에도 미아는 어김없이 내 무릎에 올라와 앉아있었다. 마리앤 말이 시어머니가 오랫동안 휴가를 가면 시동생 집에 맡겨 놓곤 하는데 꼭 시동생이 아닌 자기 무릎에 올라와서 쉰다고. 아무래도 여자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미아는 암컷이다)



내 무릎위에 자리잡은 미아
팔베게하고 낮잠자는 녀석


시어머니는 평생 고양이를 키우셨다. 남편이 기억하는 고양이만 해도 다섯 마리. 항상 고양이와 함께 사셨지만 우리처럼 고양이에 지극정성은 아닌 편. 이뻐는 하시지만 별로 놀아주지는 않으신데 하필 미아는 집사의 애정이 고픈 고양이라 뭐랄까 좀 딱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리 집 고양이들은 우리가 너무 치근덕대서 그런지 우리 무릎으로 올라오기는커녕 만지는 것도 짜증 내는 데 이렇게 틈만 나면 무릎에 뛰어 올라와서 쓰다듬어 달라는 고양이가 있다니!


미아도 나랑 남편이 자길 좋아한다는 걸 알고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다. 시댁은 멀기도 하고, 아무리 잘해주셔도 편하지는 않아서 똥도 싸기 어렵지만, 요 애교 많은 미아가 보고 싶어서 시댁 가는 걸 질색하는 남편을 질질끌고 분기에 한 번은 내려간다.


말도 잘 안 통하고 뻘쭘한 시댁에서 내 무릎에 앉아 골골대는 고양이만큼 든든한 아군이 어디 있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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