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등록 변경신고하기
릴리는 회색이라고 불리던 회사 연구소 구석에 살던 엄마 고양이 애용이의 여섯 아기 고양이 중 하나였다. 여섯 형제들 중에서도 경계심이 많고 소심해서 직원들이 사료나 간식을 가져다주어도 사람 곁에 와서 먹는 법이 없었다. 한창 클 시기에 형제들이 달려들어 사료를 다 먹고 나면 엄마뒤에 숨어있다 삐죽하게 걸어 나와 남은 사료를 핥아먹던, 형제들보다 훨씬 작아서 같은 배에서 난 고양이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작은 고양이였다.
그러던 차에 아기 고양이들이 아직 어린데 엄마 고양이가 또 임신을 했다. 살뜰하게 아깽이들을 돌보던 어미는 아기 고양이들이 꼬리를 말고 앉아있게 되자 칼같이 독립을 시켰다. 그래도 여섯 고양이들은 씩씩하게 같이 몰려다니며 나름대로 잘 지냈다.
"곧 아기 고양이들이 또 태어날텐데"
"고양이가 자꾸 늘면 회사에서 눈치 줄텐데"
회사 뒷마당에서 계속 지내는 것보다는 따뜻한 집에서 사는 것이 낫겠다 싶어 함께 돌보던 직원들과 입양홍보를 시작했다. 미묘인 엄마를 닮아 아기 고양이들 미모가 하나같이 뛰어났는데도 코숏이라 그런지 입양 보내기가 쉽지 않았다. 가장 애교가 많고 덩치가 컸던 아들이 처음으로 입양을 갔고, 다른 아들은 파보에 걸려 입원치료를 했다가 남편 친구네 임보를 갔는데 결국 그 집에 눌러앉았다.
입양홍보를 하는 동안 딸내미들만 남았는데, 남은 녀석들은 엄마처럼 계속 출산을 반복하지 않고 회사에서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길 바라며 같이 돌보던 직원과 돈을 모아 중성화 수술을 시켜주었으나 너무 어렸던 탓인지 마침 파보가 돌았던 탓인지 두 녀석은 곧 무지개다리를 건너고야 말았다. 그 딸내미들 중 하나인 릴리는 볼에 물린 상처가 있어 구조했는데 결국 우리 집에 눌러앉았다.
릴리는 내 이름 앞으로 반려동물 등록까지 완료된 내 고양이였다. 프랑스로 우리와 함께 올 계획이었지만 구조했던 시기가 좀 늦어 프랑스로 넘어오던 시점에 EU 동물 검역 조건이 맞지 않았다. 우리가 출국한 지 한 달 뒤에 출국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릴리를 데려 오려니 내가 한국에 한 번 갔다 오거나, 반려동물 이동 서비스(이런 서비스가 있는 것도 처음 알았다)를 이용해야 했는데 무슨 사람이 이동하는 것보다 더 비쌌다. 3kg 남짓 나가는 어린 고양이를 이동하는데 견적이 400만 원쯤 나왔던 것 같다. 당장 프랑스에서 살 집도 구하기 못한 상태라 일단 부모님 댁에서 릴리를 돌봐 주시기로 했는데 그만 영 눌러앉게 되었다.
이번 여름에 친정에 간 김에 릴리의 보호자를 아빠로 변경했다. (정부 24에서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구청에 갔더니 바로 해주었다) 이제 우리 아빠가 공식적으로 릴리의 아빠가 된 것이다. 작년 봄까진 내가 릴리의 엄마였는데 이젠 릴리의 언니가 되다니 뭐 이런 족보가 다 있담!
우리와 함께 살 땐 고양이 모모랑만 잘 지내고 사람은 겁냈던 릴리가 이젠 아빠를 졸졸 따라다니며 놀아달라고 조르고, 간식 달라고 조르는 걸 보니 마음이 좀 놓였다. 그간 릴리를 친정에 두고 온 죄책감에 마음이 무거웠는데 잘 자리 잡고 사랑받으며 지내는 걸 보니 좋았다. 릴리 입장에선 엄마 고양이랑 형제들이랑 잘 살았는데 갑자기 납치돼서 이상한 인간 둘이랑 고양이 둘이랑 살다가, 좀 적응했다 싶으니 또 첨 보는 사람 둘이랑 까칠한 고양이 한 마리가 있는 집에 뚝 떨어지게 되었으니 겁 많은 녀석이 얼마나 무서웠을지.
건강하게 어른 고양이가 된 걸 보니 언니는 뿌듯하구나. 아빠랑 잘 지내라 요 녀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