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나, 실제로 보니까 훨씬 귀엽네 티구!"
올봄 티구를 실물로 처음 본 엄마의 반응이다. 턱시도 코트를 이쁘게 차려입은 티구는 눈 주위가 까만색이라 사진빨이 잘 안받는 편이다. 그래도 자세히 보면 녹두빛 눈동자에 호기심 많은 땡그란 눈, 사방으로 뻗은 더듬이 같은 흰 수염에 늘씬한 다리, 출렁이는(!) 아랫배가 매력적인 고양이다. 품종은 유러피안 숏헤어. 유럽에서 흔히 기르는 집고양이라는 말이다. 종이 무엇이 중요하랴. 어쨌거나 우리 티구는 귀엽 종!
요 녀석은 참으로 애교가 많다. 엄마인 나한테만. 간식은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간식이든 주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치치나, 좋아하는 간식이 아니면 먹지 않지만 어쨌든 간식을 보면 멀리서도 달려오는 모모(덩치는 커도 입은 짧다)에 비하면 식탐이 없는 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간식으로 유인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가출도 가장 많이 한 고양이다. 모모는 호시탐탐 영역 확장을 위해 집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고, 치치는 문이 열려있어도 바깥세상에 별 관심이 없다. 그런데 티구는 탈출하고 싶은 것 같지는 않은데 호기심은 많은 타입.
문이 조금 오래 열려있으면 일단 나가고 본다. 그러고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한 번은 티구가 방에 있는지도 모르고 청소한다고 문을 열어뒀는데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당황한 나와 남편이 잡으러 나갔지만 더 당황한 티구가 자꾸 더 멀리 도망가는 바람에 한 참 술래잡기를 했다. 그 당시를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
지난여름에는 티구가 캣티오의 틈새로 나기서는 한 시간 정도밖에 있었던 적도 몇 번 있었다. 캣티오 위로 올라가면 2층 데크로 올라갈 수 있는데 캣티오 밖으로 탈출한 티구를 유인하느라 2층에 항상 간식이랑 장난감을 구비해 두어야 했다. 덕분에 캣티오를 고양이 발하나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보수할 수 있었다. 고맙다 티구야..
또 얼마 전에 시어머니가 방문했을 땐 게스트 룸 환기 한다고 창문을 조금 열어 두셨는데, 그 틈새로 빠져나가 지붕에 올라간 적도 있다.
“아들. 지붕 위에 까만 고양이가 있는데 티구같이 생겼어. “
“아 그래? 어떻게 올라갔지? 내려오겠지 뭐 “
“근데 지금 걔가 내 방 창문 앞에 있어 “
“응? 엄마 혹시 창문 열어놨어? 티구 같은 게 아니라 티구 아냐?? “
“우리 방에 창문을 내가 좀 열어놓긴 했어..”
“아, 엄마 진짜!!!!”
가리는 것 없이 잘 먹고 잘 싸고, 엄마 집사를 졸졸 따라다니는 애교쟁이 막내. 모모 형아랑 노는 것이 재미있어서 수시로 장난을 걸지만 모모랑 노는 취향이 안 맞아서 매일 두들겨 맞는 좀 안타까운 녀석.
그래도 티구가 한 살이 지나고는 철이 좀 들었는지 사냥 놀이를 하거나 간식타임이 되면 살짝 뒤에 앉아서 자기 차례를 기다릴 줄도 알게 되었다.
티구가 조금 (정말 조금) 차분해진 요즘은 치치랑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 둘이 바구니 사이를 두고 같이 누워있는 걸 자주 보게 된다. 둘이 잘 지내는 걸 보면 어찌나 기특하고 뿌듯한지. 내가 동생이랑 안 싸우고 잘 지낼 때 부모님 마음이 이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