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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아 Jul 22. 2022

빨래는 새벽 3시에 합니다

절약이 몸에 밴 프랑스 사람들


맥시멀 리스트를 지향하는 나로서는 옷이나 신발을 떨어질 때까지 신는 남편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요즘같이 물질적으로 풍족한 시대에 누가 신발의 밑창이 떨어져 나가서 빗물이 들어올 때까지 신는단 말인가. 옷 같은 경우도 싫증이 나서 안 입는 경우는 있어도 떨어질 때까지 (살이 쪄서 찢어져 버린 옷은 있었지만..) 입는 경우는 잘 없는 나에게 뭐든 고쳐 쓰고 고쳐 입는 남편은 알뜰하다 못해 좀 궁상맞아 보였다.


남편의 시그니처 룩 빨간 티셔츠


목이 늘어난 티셔츠는 좀 버리라고 하면 아직 입을 수 있다고 꾸역꾸역 입고 다니는 그. 운동화에 구멍이 나서 새로 사줄까? 하고 물어보면 아직 신을 수 있다고 절대 새로 사주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하는 그. 나름 패션 블로거인 와이프의 체면 좀 세워주면 안 되냐 대체 왜 그렇게 입고 다니냐고 따라다니면서 사정사정을 해야 겨우 떨어진 청바지를 버리고 새 청바지를 코스트코에서 구입하는 그.

 

그와 함께한 7년 동안 도저히 그를 이해할 수 없었는데, 프랑스에 온 지 3달이 되니 그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남편이 좀 극단적인 케이스이긴 한지 다니면서 떨어진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은 보지 못했지만, 다들 확실히 좀 알뜰한 면이 있다. 일단 브호캉트만 해도 진짜 다락에 있던 물건들 들고 나와서 사고파는 문화가 활성화되어 있고, 새로운 기종의 스마트폰이 나오면 당연한 것처럼 새로 바꾸던 한국 사람들과 달리 여기는 고장이 나면 고쳐 쓰다가 도저히 고쳐지지 않을 지경이 되어서야 바꾸는 사람들이 많았다. 회사에서도 아직 아이폰5를 쓰는 동료들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거거 익선이라며 큰 TV와 큰 냉장고, 그리고 에어컨을 선호하는 한국과는 달리 프랑스엔 가전제품들의 사이즈도 작은편이고 (집도 좁은편) 가격도 저렴한 브랜드가 많다. 신혼살림 마련할 때 왜 이렇게 비싸냐며 경악하던 남편에게 원래 다 그렇다며 퉁박을 주었는데 다 그런 게 아니었다. 프랑스에 오니 선택의 폭이 정말 넓고 가전제품을 부담스럽지 않은 금액대 안에서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집꾸미는데엔 아끼지 않지


다들 낭비는 치를 떨고(음식 남기는 것, 낮에 불 켜는 것, 아직 멀쩡한 물건 버리는 것 전부 NO) 전기 사용하는 것에도 엄청 예민해서 전기요금이 저렴한 시간인 새벽에 식기세척기나 세탁기, 건조기를 돌린다. 우리 집에서도 남편이 부지런하게 새벽 3시에 일어나서 고양이들 밥 챙겨주는 참에 밖이 시원하니 창문을 다 열어서 집 환기도 하고 세탁기나 식기세척기를 돌린 뒤에 다시 잠을 자곤 한다. 한국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인데. 아.. 새로 산 무풍 에어컨 아래 누워서 넷플릭스 보던 지난여름이 그립다. (구입한지 일 년도 안된 에어컨은 프랑스에 설치할 수 없을거라고해서 결국 친정으로 갔다)   


비싼 거 쓸 필요가 있어요?

그러고 보면 한국에서는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이 보던 명품 브랜드를 여기 와선 거의 보지 못했다. 파리나 리옹 같은 큰 도시에서는 종종 봤는데 여기가 시골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주변에서 디자이너 로고가 보이는 제품을 사용하는 것을 보지 못함. 왠지 나도 머쓱해져서 바리바리 싸들고 온 내 가방들이 옷장 더스트백 안에 처박혀 있다.


프랑스로 올 때 브랜드 가방이나 옷, 신발을 꾸역꾸역 챙겨 오던 나에게 남편은 비싼 가방 들고 다녀봐야 소매치기나 당한다면서 쓸일 있겠냐고 했었는데 딱히 틀린 말이 아닌 것이 이 동네는 길에 사람이 안 다녀서 소매치기는 없지만 다른 의미로.. 남편이 프랑스에선 명품가방 다 필요 없다고 했을 때는 울컥해서 자기만족이라고 쏘아붙였지만, 정작 와보니 알아봐 주는 사람도 없고 딱히 이 가방 저 가방 꺼내서 들고 다니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고 해야 할까.


블로그에 올리는 OOTD와 현실 OOTD


요즘 가장 자주 들고 다니는 건 까르푸에서 1유로 주고 산 장바구니랑 간단한 소지품 넣고 다니는 천가방이다. 같은 가방을 세 달째 들고 다니는 건 둘째치고 출근 안 하는 날은 거의 몸빼 입고 다니는데 명품 가방이 무슨 소용일까. 한국에 있는 지인들이 지금 내 행색을 보면 깜짝 놀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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