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아 Aug 09. 2022

바캉스 시즌에 다래끼가 났다

8월에 아프지 말랬는데


난 어릴 때부터 피곤하면 눈에 다래끼가 났다.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 고름을 짼 적은 없고 약을 먹고 안약을 넣으면 보통 몇 시간 안에 가라앉아서 한국에서는 새벽에 다래끼가 나면 약 먹고 반차 내고 집에서 쉬거나 안과에 가서 주사 맞고 출근하곤 했다.


그래서 약상자에는 다래끼 약이 항상 구비되어 있었다. 프랑스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도 자다가 눈에 이물감이 느껴진 날이 있었는데 상비약으로 잘 방어했고, 이번에도 그렇게 잘 넘어갈 줄 알았는데..


새벽에 약을 먹고 다시 잠들었다가 일어났는데도 눈꺼풀 안쪽이 너무 아프고 눈알만 굴러도 아픈 것이 전혀 괜찮아지지 않았다. 꼭 눈알이랑 눈꺼풀 사이에 모래가 들어간 것처럼. 남편이 약국에 가보았지만 항생제는 의사 처방 없이는 살 수 없었고 대증요법이라며 확률은 반반이니 먹어보던가 하고 추천한 약을 사들고 왔다.


이번엔 염증이 좀 심했던지 상비약으로 챙겨 온 소염제에 남편이 사 온 약을 먹고 눈에 온열찜질을 한 뒤에 한숨 자고 일어났는데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다음날 오후에 친구들이 리옹으로 넘어오기로 했는데 아침까지 눈이 나아지지 않아서 결국 남편이 오전 7시쯤 일요일에 진료를 하는 병원을 찾아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15번 : 주말에 진료를 하는 병원을 확인하기 위한 번호, 3237번 : 주말에 문을연 약국을 확인하기 위한 번호로 1분에 400원) 긴 대기시간이 지나고 겨우겨우 연락이 닿았나 했더니 병원들이 문 열기 전이라 모르겠다고 9시 넘어서 다시 전화하라는 것이 아닌가. 9시에 전화했더니 여기저기 다시 전화가 돌려지고 겨우 연결된 이 지역 담당자가 우리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오픈했으니 전화해서 예약한 뒤 방문하라길래 10시쯤 예약을 하고 갔다.


우리 앞에 대기하는 사람이 한명 뿐이라 다행이었던


다행히도 오래 기다리지 않고 의사와 대면할 수 있었는데 솔직히 처음엔 의사가 아닌 줄 알았다. 말총머리에 하와이안 반팔 셔츠를 입고 있어서 남편한테 가운도 안 입고 있는데 의사 맞아..?라고 물었더니


프랑스에서는 이제 그런 ‘척’도 안 한다고 했잖아요. 학교 선생이든 의사든 겉모습만으로는 알아보기 힘들어요.


끄악. 여하튼 눈을 보여주고 약 처방을 해달라고 하면서 염증이 빨리 가라앉을 수 있도록 주사를 맞을 수 있겠냐고 물어보니 프랑스에서는 그렇게 공격적인 치료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연적으로 치료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도로만 약 처방을 한다고.. 네..?


남편이 우리가 한국에서 와서 주사 한방 빡 맞고 오후에 출근하는 그런 효과적인 치료방법에 익숙해져 있다고 했더니 껄껄 웃으면서 프랑스의 치료 철학은 그렇지 않다며 처방전을 써주었다. 평소에 눈이 너무 건조한데 프랑스에선 인공눈물 조차도 약국에서 그냥 살 수 없어서 처방전에 추가해 달라고 부탁함. 그 이후로 우리는 일요일에 오픈한 약국을 찾아 헤매었는데 겨우 찾아갔더니 줄도 엄청 길고 손님 한 명씩 응대하는 속도도 너무 느려서 진료받는 시간보다 약 타러 가서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었다. 피곤 피곤.


이걸 타는데 5시간이 걸렸단 말이렸다


한국 같으면 반나절에 싹 나았을 다래끼가 프랑스에서는 안약을 넣은 지 만 이틀째가 되니 좀 가라앉았다. 그래도 7일간은 아침저녁으로 꼭 넣어주라고 당부하길래 그러고마 했다. 항생제가 들어간 안연고인가 봄.


프랑스는 병원 시스템이나 치료 철학조차 빨리빨리 한국인과는 결이 다르다는 것을 이번에 경험하고 나니 여기서 오래 살겠나 싶다. 느려 터진 의료시스템도 공격적이지 않은 치료방법도 내가 아프기 전까지는 웃어넘겼는데 다래끼가 나니 세상 불편. 아프면 낫는데 시간이 걸리고 불편한 게 당연하다는 사람들. 그러고 보니 라디오 공영 광고에서 그랬지.


응급실은 아플 때 가지 말고 
죽을  같을 때 가라고..
작가의 이전글 샹들리에의 공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