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차> 험난한 세상이야.

Cat Stevens - Wild World

by 도미니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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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술에 취한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이 바로 대리기사이다. 업무상 한 잔을 했거나, 지인들과 한 잔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음주운전을 할 순 없기에 나 같은 대리 기사를 부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술에 많이 취하신 분은 대부분 뒷좌석에서 잠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적당히 기분 좋게 취한 손님들은 대리 기사에게 대화를 걸오 오신다. 대화라고 하긴 좀 그렇다. 왜냐하면 대리 기사의 의견이 삭제된 대화이기 때문이다. 대화라기보다는 경청 수준에 가깝다. 중고등학교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 같은 연설은 운행 내내 지속되기도 하는데, 뭐 나와 이해가 맞는 손님과의 대화는 즐거운 편이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본인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내뱉은 말들은 전혀 공감이 되질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대화중 반론을 펼치기 또한 쉽지 않다. "그렇죠", "그렇겠네요", "그러니까요" 같은 마법의 언어들로 동조 아닌 동조를 하며 운행이 안전하게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운행이 많다.


위례 신도시에서 김포로 가는 콜을 잡았다. 10시가 넘은 시각 집 쪽으로 가는 콜이었기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콜을 잡고는 운행을 시작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손님은 본인의 일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제약회사 영업팀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대리운전도 힘들지만 손님도 참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대부분은 제약회사 영업직이 겪는 의사의 갑질에 대한 불만이었다.




병원장에게 전화 한 통을 받았는데 그가 하는 말이 "다음날 나 바쁘니깐 대신 아들 학원에 좀 데려다주고, 생일이니깐 케이크도 하나 전해줘."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 의약품을 거래해주는 보답으로 식사 대접 등은 가끔 했지만, 이렇게 개인적인 부탁도 자주 한다고 했다.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만에 하나 병원장의 심기가 조금이라도 불편하다면 당장이라도 진행 중인 의약품 거래를 해지할 수도 있을까 봐 거부하지 못했다고 한다. 술접대는 물론이고, 골프장 부킹은 물론이고 개인적인 부탁까지 엄청나다고 한다. 물론 안 그러신 병원장분들도 많지만 아직도 일부 병원장들은 당연스럽게 제약회사 직원들을 그렇게 대한다고 한다. 의약품을 써주는 대가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는 일부 의사들의 이야기이지만, 지금 같은 세상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팀장이 되기 전 직원일 때는 매일 5~6곳의 병원에 들러 의약품 거래를 권유한다고 한다. 말이 권유지 애원 수준이라고 한다. 환심을 사기 위해 병원에 도착해서 화장실 청소를 하기도 하고, 해당 병원을 홍보할 수 있는 포스터나 판촉물들을 제작하기도 한다고 한다. 해당 병원의 원장을 비롯한 소속 의사들의 프로필은 물론 의사 부인과 자녀 등 가족관계까지 파악하여 영업한다고 한다. 제약회사의 제품 기능이나 효능보다는 실권자의 환심을 얻는 게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성과가 있으면 다행이지만, 갈수록 관행이 심해져 한두 달이 지난 후에 다른 곳과 계약했다는 말을 들을 때면 절망스럽다고 한다. 가장 놀라운 것은 대신 예비군 훈련도 참석했다가 적발된 사례가 있을 정도라고 하니 갑을 관계는 의료계의 고질병이라고 한다.


문제는 의사들의 이러한 갑질에도 제약회사 영업사원은 아무런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점이다. 조금이라도 병원장이 불편해하면 소문이 어떻게 퍼질지 모르고 매달 2~3건의 실적도 어려운 상황에서 한 건이라도 놓치면 저조한 근무 실적으로 평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약회사마다 다르겠지만, 평균적으로 제약회사의 근무 실적은 거래 성사 후 본인에게 떨어지는 성과보수와 매달 진행하고 있는 거래 건수를 기준으로 근무를 평가한다고 한다. 이에 따라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서는 거래를 새롭게 성사해야 하는 건수뿐만 아니라 현재 담당하고 있는 병원과의 거래가 해지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도 중요한 것이다.



"얼마 전 뉴스 보셨죠? 대신 예비군 훈련 갔다가 걸렸던 거."


참 웃펐다.








"사람들은 제약 영업직을 가장 힘든 직업군으로 꼽기도 하는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낯선 사람들에게 물건을 파는 다른 영업직보다 제약 영업은 기존 거래처 관리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업무 강도가 세다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전문지식으로 무장해 엘리트 층에게 정보를 전달한다는 자부심도 상당합니다. "


"따지고 보면 영업사원만큼 좋은 직업이 어딨습니까?"


“사람이 좁은 곳에 앉아서만 일하면 생각이 좁아지고 아이디어도 잘 안 떠오르는데, 영업사원은 밖에서 친구도 사귀고 매일 다른 사람 만나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잖아요”




본인의 일이 힘들어서 한잔한 밤. 처음 보는 대리기사에게 본인이 하는 일의 고충을 주욱 늘어놓고 나서는 그래도 이런 직업이 어딨습니까? 하면서 긍정적으로 마무리하는 손님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힘들어도 참고 일하는 전형적인 우리의 모습이었다. 꿈과 희망이라는 것들을 접고서라도 당장의 경제적인 부분을 위해 참고 일하는 우리의 모습이었다. 더럽고 치사하고 몸도 마음도 피곤에 찌들어 살아가는 보통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잠시나마 모르는 대리기사에게 고충을 이야기하며 스트레스가 풀렸다면 다행이다. 어쩌면 열대야의 한가운데에 티셔츠가 젖을 정도로 뛰어다니며 콜을 잡아 가쁜 숨을 고르며 운전하고 있는 이름 모를 대리 운전기사가 본인보다 힘들게 일하는 모습을 보며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었다면 다행이다. 힘들지만, 참아야 하고, 가족을 위해 또 누군가를 위해, 나를 위해 참아야 할 조금의 이유라도 생겼다면 그걸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고, 자시느이 꿈을 이뤄내며 걱정 하나 없이 세상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다 그들만의 고민과 걱정이 있는 것이고 그들만의 고통과 애로가 있을 것이다.





" 대리 기사님한테 별 이야기를 다하네요. 그래도 덕분에 마음속 이야기도 하고, 취한 사람 이야기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라며 손님은 집으로 들어갔다.


4만 원의 요금을 받아서 기분이 좋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콜을 잡아서 좋았고,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나의 귀가 조금이나마 위로와 위안이 되었다는 점이 고마운 밤이었다.'guns N roses'의 "welcome to the jungle"을 듣고 싶었지만, 'cat stevens'의 "wild world"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미스터 빅의 "wild world"같은 박력있는 세상보다는 캣 스티븐스의 조용하지만 만만치 않은 세상보였다. 역시 미소만으로는 버티기 힘든 험난한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cat stevens의 wild world> 중에서



Oh baby, baby, it's a wild world

오 베이비. 베이비. 험난한 세상이야

It's hard to get by just upon a smile

미소만으로는 버티기 힘들 거야

Oh baby, baby it's a wild world 오

베이비. 베이비 험난한 세상이야




<guns N roses의 welcome to the jungle> 중에서



Welcome to the jungle, we've got fun and games

정글에 온 걸 환영해! 온갖 재밌는 것들이 넘쳐나지


We got everything you want honey, we know the names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이 다 있어, 우린 그것들을 알지


We are the people that can find whatever you may need

우린 네가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이든 찾아줄 수 있어


If you got the money, honey, we got your disease

돈이 있다면 넌 모든 것을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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