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z top - sharp dressed man
한 동안 같은 노래를 들을 때가 자주 있다. 가을이 오면 eddie higgins의 autumn leaves를 자주 듣는 편이고, 9월에는 earth wind & fire의 september를 자주 듣곤 한다. eddie higgins의 autumn leaves를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Miles Davis와 Chet Baker를 듣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가을 분위기가 나는 재즈 음악들로 플레이리스트는 가득 차게 된다. 자연스럽게 분위기는 우울하면서도 축 늘어지는 곡들로 가득 차게 되고
내 마음 또한 봄날의 햇살 속 산책하는 느낌의 가벼움보다는 우중충한 안개 가득한 밤거리를 거니는 느낌이다. 지난 몇 달간 대리 운전을 하며 나도 모르게 차분하고 조용한 재즈 음악들을 자주 들었다. 운전을 하며 집중을 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내가 대리 운전을 하게 된 이유가 그리 좋은 이유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재즈는 집중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듯한 느낌이었기에, 집중을 하듯 안 하듯 난 음악을 들을 수 있었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나마의 위안이었다. 몇 달간 열심히 일을 했고, 내 몸은 나도 모르게 힘들어하고 있었다.
코로나 2차 예방 접종을 마친 시기부터였다. 몸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원래부터도 겨울의 초입에는 감기로 심하게 고생을 하곤 했는데 이번 감기는 거의 2주간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오기 힘들 정도로 고생을 했다. 떨어질 대로 떨어진 체력은 정상으로 돌아오기 힘들었고, 대리운전을 하기는커녕 본업에도 집중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떤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 일하다 다친 거였다면 마음이라도 편했겠지만, 힘든 현실에서 발버둥 치다가 어쩔 수 없이 얻게 된 아픔은 정신적으로 더욱 나를 힘들게 했다. 이후 와이프의 부재와 아이의 병치레까지 덩달아 이어지며 한 달 넘게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지난 한 달 동안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너무 아팠다. 특히 마음이 더 아팠다. 약을 입에 달고 살았고, 최대한 몸을 회복하고자 노력했지만 나의 회복력은 예전과 달리 너무 떨어져 있었다. 본업에도 신경을 쓸 수 없었고, 하다 못해 집안일을 하는데서도 도움을 주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했다. 그중 가장 슬픈 것은 이런 와중에도 현실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마음의 각박함이었다. 여유라는 말의 의미를 이번 기회로 제대로 알게 되었다. 금전적인 여유, 시간적인 여유 뭐든 간에 여유가 없게 되면 사람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모두 각박해지게 마련이고 이는 또 다른 결핍으로 나에게 돌아오는 악순환이었다. 노력을 해서 만회하려 노력해도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난 모든 것들 손에서 놓아버리기 시작했다. 원래부터도 미약했던 나의 다짐과 노력은 하나 둘 내손을 떠나기 시작했고, 다시 무기력함의 동굴 속에서 몸을 눕히고는 억지로 잠만 자려고 노력했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고, 작은 희망 따위도 하지 않는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며 시간만 축내고 있었다. 제목도 모르는 우울한 재즈 음악만이 귀에서 무한 반복되고 있었다. 곡의 차이도 느끼지 못하고 연주의 시작과 끝이 무언지도 모르고 열린 귀는 유튜브 뮤직이 알고리즘으로 선곡해 들려주는 우울한 재즈 음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단 재즈 음악을 조금 멀리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상시 아무렇지도 않게 듣던 슬픈 발라드도 내가 이별을 했을 때 듣는다면 눈물을 쏟게 하기도 하듯, 지금 내 사황에서 재즈는 오히려 나를 더욱 동굴 속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나 자주 듣던 ROCK 음악들을 갑자기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AC/DC를 시작으로 nirvana와 pearl jam을 들었다. greenday도 듣다가 suede와 oasis까지 그 당시 자주 듣던 밴드들의 음악을 들었다. 드럼 비트에 발도 까딱 까닥 하고, 베이스 소리에 맞춰 고개도 흔들어 보았다. 기타 솔로에서는 자연스럽게 눈을 감고 기타리스트가 되어 보기도 했다가, 보컬이 되어 무대를 휘젓는 상상도 했다. 어렸을 때는 그랬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록 밴드가 바로 나였다. 신나게 무대를 휘어잡고, 관객들을 이끌며 광란의 도가니로 만들 수 있는 엄청나게 영향력 있는 록스타가 바로 나였다. 하지만 난 아무도 찾지 않는 오래된 바에서 서너 명 정도의 관객 아래서 귀 기울여 듣지 않는 재즈 피아니스트일 뿐이다. 하루하루 공연도 잡지 못해 이곳저곳을 들락날락거리며, 거리를 헤매는 아티스트. 말이 좋아 아티스트지 얕은 자존심에 다른 일은 하지 못하고, 추운 골방에서 술과 담배를 즐기며 곧 죽어도 예술가 타이틀을 놓지 않으려는 외로운 피아니스트가 바로 내 모습이었다. 당장 먹고 죽으려 해도 죽지 못하는 방구석 대스타 피아니스트가 바로 나였다.
과거에 대한 집착이라기보다는 지긋지긋한 방구석은 나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귀에 재즈 음악들 대신 록 음악들을 들려주었다. zz top의 sharp dressed man을 무한 반복으로 들었다.
Clean shirt, new shoes
깨끗한 셔츠, 새 신발
And I don't know where I am goin' to
그리고 난 내가 어디로 갈지 몰라
Silk suit, black tie
실크 정장, 검은색 넥타이
I don't need a reason why
이유는 필요 없어
They come runnin' just as fast as they can
그들은 최대한 빨리 달려와
'Cause every girl's crazy 'bout a sharp dressed man
모든 여자애들이 잘 차려입은 남자를 좋아 죽어라 하니깐
그냥 아무런 이유는 필요 없었다. 다만 더 이상은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았다.
난 다시 록스타가 되고 싶진 않다. 다만 더 이상은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긴 싫었을 뿐이다.
언제 다시 대리운전을 시작할지 모르겠다. 갑자기 날도 부쩍 추워졌고, 자도 자도 피곤한 내 몸은 아직도 100%가 아니다. 하지만, 확실히 더 이상 동굴 속에서 겨울잠을 준비할 순 없는 상황이기에 천천히 밖으로 다시 나갈 준비를 시작해야겠다. 한동안 쓰지 못했던 글을 통해 마음을 다잡아 본다. 아직은 록 음악의 빠른 기타 리프를 따라 발가락을 흔들 여유는 없지만, 언젠가는 무대를 뛰어다니며 관객들을 열광시킬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있다. 막연하다지만 그런 희망이라도 난 잡고 싶은 심정이다. 일단은 그냥 록음악을 들으련다. zz top의 명곡들로 오늘은 달려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