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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득 Mar 03. 2021

집중할 수 없는 이유는 너무 많다

딴짓의 기술

글을 쓰기 위해서는 집중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집중을 방해하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주위의 어질러진 물건들 혹은 너무 잘 정돈된 환경, 시끄러운 소음 혹은 이명이 들릴 정도의 고요. 너무 많아 그것들만 나열해도 책 한 권이 되겠지요.  어쩌면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닐지 모릅니다. 그것들에 자꾸 신경 쓰는 저의 신경질적인 주의력이 가장 큰 문제인지도 모르죠. 결국 집중하느라, 집중하기 위해 준비하느라 정작 써야 할 글은 한 문장도 못 쓰는지 모릅니다. 아래 붙이는 글처럼요. 


나는 의자 나사를 풀기 시작한다


나는 주의가 산만하고 집중력이 약하다. 이렇게 말하면 “누구나 조금씩은 주의가 산만하지”라고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다른 사람들의 주의가 동산만 하다면 내 주의는 태산만 하다. 가령 나는 칼럼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는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마저 잊을 정도의 완벽한 몰입이다. 그런데 몰입이 되지 않는다. 우선 책상 위의 어수선한 물건들이 마음에 걸린다.

무시하고 첫 문장을 써 보지만 다음 문장을 쓸 수 없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책상 정리를 한다. 막상 해보면 끝이 없는 게 청소다. 간단한 정리에서 시작한 청소는 책상을 넘어 책장으로, 방과 거실로 확대되기 일쑤다. 늦은 밤까지 청소를 하느라 시간을 다 허비하고 고단한 몸으로 잠자리에 누우며 그제야 정작 해야 할 일은 하나도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책상도 정리했고 방도 거실도 깨끗한 상태니까 이제 본격적으로 글 쓰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도 문장은 쓰여지지 않는다. 카페인이 필요하다. 나는 물을 끓이고 커피를 내린다. 이번에는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려와 집중을 방해한다. 나는 음악을 틀고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음악을 들으니까 중학교에 갓 입학했을 무렵 생활 검열 시간이 떠오른다.


아직 초등학생 티가 그대로인 까까머리들 속에 어린 나도 앉아 있다. 선도부장은 웃으며 인사말을 한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 학교에 입학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러나 그 진심을 그대로 믿는 아이는 아무도 없다. 선도부원들이 분단 사이를 돌아다니며 까까머리들의 혼을 쏙 빼놓기 때문이다. 선도부장의 말은 계속 이어진다.

“차려 자세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몸을 움직여서는 안 되며 심지어 눈동자가 돌아가서도 안 됩니다.” 아이들은 정말 꿈쩍도 안 하려고 애쓴다. 그러다 그만 주책없는 눈동자가 돌아가기라도 하면 무지막지한 선도부 선배들의 고함소리가 주먹과 함께 날아든다. “여러분, 눈은 좋은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앞사람의 뒤통수를 노려보세요. 뚫어져라 계속 노려보면 정말 뒤통수가 뚫어져서 피가 나옵니다.”


아이들은 거의 얼이 빠져서 앞사람의 뒤통수를 노려본다. 그 숨 막히게 조용한 순간 누군가 부스럭 소리를 낸다. 그러자 아직 초등학생 티를 못 벗은 까까머리들은 일제히 소리 나는 쪽으로 돌아본다. 그러나 단 한 명, 그쪽으로 돌아보지 않은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그쪽으로 돌아보는 앞자리 아이의 뒤를 따라가며 계속 집중해서 뒤통수를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다. 물론 그 아이는 나다.

그 아이는 선도부장의 말을 그대로 믿고 끝까지 집중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우리 반뿐만 아니라 학교 전체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 일이 있은 후로는 뭔가 집중하려고 하면 어디선가 희미한 웃음소리 같은 게 자꾸 들린다. 부스럭 소리가 나는 쪽으로 돌아보는 앞자리 아이를 따라 돌며 그 아이의 뒤통수를 피가 나오도록 쳐다보고 있는 까까머리 어린 내가 떠오른다.

떠오르는 옛 기억을 겨우 가라앉히고 나는 다시 글에 집중해본다. 그런데 어쩐지 의자가 불편하다. 자꾸 삐걱거리고 허리가 아파서 제대로 몰두할 수 없다. 나는 의자 나사를 풀기 시작한다.

Thom Milkovic on unsplash

글 쓸 때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 딴짓만 한다면 그 딴짓들에 대해 써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아마 딴짓의 종류도 다양하겠지요. 특별히 어떤 딴짓을 한다면 거기서 낯익은 혹은 낯선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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