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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단하는 킴제이 Sep 02. 2021

미국에서 만난 요기니들이 알려준 말의 힘

말에서 향이 나는 사람들

단단하게 채워지는 준비 주머니


01

미국에 온 지 2개월쯤 되었을 때부터 요가를 다니기 시작했다. 고강도의 영어 듣기 평가를 하면서 선생님마다 풍겨 나오는 에너지들이 달라 매일 다른 지점과 선생님의 수업을 신청해서 운동을 했다. 선생님의 말에 내 몸을 맡기고 운동을 하다 보면 끝까지 나를 쥐어짜서 결국 3초 더 버틸 때가 있고 나를 토닥이며 용서해가며 몸에게 숨을 들이쉬어줄 때가 있다. 

“여러분은 여기 왜 왔나요? 바로 포기하려고 온 겁니다! 우리의 목표는 포기! 그러니까 포기할 때까지!”

“몸을 용서하고 사랑하세요. 요기만의 흐름을 따라가세요. 나는 안전을 위해 온 사람일 뿐 나를 따라 할 필요가 없어요.”

생각과 호흡의 흐름이 선생님의 말에 따라 다른 리듬을 타 따라간다. 같은 요가인데 그 사람마다의 틀을 통해 흘러나오니 다른 전개가 진행된다. 말이 그렇다. 똑같은 주제라도 어떤 사람에게 담기느냐에 말의 숨결이 달라진다. 뚝뚝 끊겨 멀리 못 나가는 말도 있고 아는 내용이지만 그 사람의 목소리가 진득하게 묻어 나오니 생생해서 에너지가 쭉쭉 뻗어나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말들이 담긴다.



02

JEN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났다. 죤과 리비아가 가족여행을 가게 되면서 코즈모를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해서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개를 돌보며 5일 동안 새로운 요가센터에서 JEN의 수업을 들었다. 활짝 웃으며 맞이해준 젠이 서 있는 데스크에는 노트가 놓여있었다. 손에 착 감기는 사이즈인데 메모지들이 중간중간 붙어 챕터들이 나뉘어 있었다. 


스튜디오에 들어온 젠은 노트를 가지고 와서 매트 앞에 펼쳐두었다. 요가의 순서가 적혀있는 노트였다. 그녀의 흐름은 풍부하고 자연스러웠다. 요가 순서를 적은 메모라고 하면 초보자인가 싶을 수 있지만 각자에게 맞는 자세를 알려주고 호흡 하나하나에 집중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해주었다.

“숨을 내 쉬면서 다 내보내세요. 사람들의 선입견, 어제의 후회, 오늘을 힘들게 하는 미래의 기대 모두 다.  숨을 들이마시면서 몸 가득히 사랑만 채우세요. 지금의 자신만을 생각하세요.”


어떤 근육에 집중하면 좋을지 알려주며 음악에 목소리의 박자를 맞춰가며 안내를 해주어서 나는 그 소리가 영어로 들리는 게 아니라 하나의 음악 같기도 했다. 명확함을 전하는 글 인대도 호흡과 음률이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내가 따라가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오는데 내 눈을 보여 오늘 어땠냐고 물었다. 영어로 말하려면 괜히 긴장되는데 젠에게는 편하게 말이 나왔다. 

“오늘 나는 내가 강하게 느껴졌고 음악이 좋았다. I really liked your play list.”


젠은 활짝 웃더니 음악 리스트를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각 몇 분마다 바뀌는 움직임에 맞는 선곡이라니! 대화를 해보니 15년 동안 여행을 하며 요가를 했다고 하는데 그 긴 경력을 살아온 사람에게도 준비물이 필요하다. 상대를 위한 배려, 자신의 희생, 내 시간에 대한 책임과 단단한 준비. 프로들은 그냥 앉아서도 말이 나오고 잘하는 사람인 줄 알았고 더 챙길수록 초보자처럼 보일 줄 알았는데 더 멋있어 더 섹시해 정말.


행동에 있어 준비물을 준비해서 내가 흐름을 놓치지 않게 해야겠다. 난 잘 못해도 멋지게 보이는 거 좋으니까 나도 노란 노트를 준비해서 보여줘야지! 



03

아! 젠이 알지 못하는 언어를 하는 곳으로 여행을 가서 요가하는 것을 즐겼다고 했다. 새로운 언어로 동작을 익혀가는 그 시간이 특별하다고 했다.

“저도 영어로 하는 거 처음이에요. 그런데 다 알아듣지 못하니까 사람들이 서 있을 때 혼자 누워있을 때가 있어요.”


“오! 그건 좋은 거야. 너의 마음을 따라가는 거니까.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을 필요가 하나도 없어. and don’t push yourself. 너의 flow를 따라가”


그 말이 요가로 흐늘 하게 풀린 몸과 마음에 깊게 들어와서 자리 잡는다.

맞아 내 흐름을 따라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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