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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단하는 킴제이 Jan 08. 2022

살아 있을 때 살고 싶어서, 프리워커

나를 탐험하는 시간


“그때 킴제이 진짜 일에 스트레스 많잖아. 내가 한국에 있을 때 너는 바빠서 많이 못 만났지. 회사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었어.” 


“근데, 킴제이 그 회사 퇴사했다가 다시 들어갔어.” 


오랜만에 만난 마이키가 내 안부를 묻고 제리가 옆에서 대신 대답해준다.

시원하게 한잔하자고 만난 자리에도 한탄하고 있으니 그 시간의 나는 누구였을까. 친구들에게 비친 나는 정신없고 바쁜 친구. 약속에도 헐레벌떡 오는 친구지 않았나. 한 번은 지송이 궁이랑 같이 대일님 연구소에 가는 날에도 갑자기 회사 앱에 이슈가 있다는 걸 발견하고 대표님과 개발자 분들에게 빨리 연락을 취해서 문제를 해결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러니까 나는 1시간 정도 늦게 출발해야 할 거 같다고 말하고 잠실역에 앉아 이것저것 더 정리를 했고 점심을 먼저 먹고 있는 친구들과 교수님을 만나서도 노트북을 열어 마무리 이메일을 보냈다. 비 머금은 초록빛이 쏟아지는 5월 속으로 달려가는 차 안에서 작은 노트북 화면을 붙잡고 있었다. 이제는 캐나다, 미국, 창원, 서울로 떨어져 지내서 언제 만날지 모를 그리운 친구들인데 그때의 시간을 나는 그대로 흘려보내 다시 붙잡을 수가 없다.

나의 마음밭 친구들, 첫사진을 보니까 나는 같이 만날 때도 노트북을 챙겼었다...


삶은 내가 선택한 시간으로 이루어진다.

누구 때문에 힘들다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일에는 하다 보면 모든 걸 내주어 힘들고 괴로운 게 당연한 거지라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방치하고 있지 않은가?


“대표님께서 말을 공격적으로 하는 걸 이렇게 몇 년이나 보자니 바뀌지 않아서 힘들어”

“쉬는 날도 없고 휴가를 낼 때도 엄청 눈치 봐” 


계급사회, 그리고 웃어른을 존경해야 한다는 문화를 잘 못 해석한 채 이상한 습관으로 두고 있다.

시간을 어떻게 쓸지 핸들을 타인에게 넘긴 채 휘둘린 바퀴에 치여 운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아팡은 한국 은행에서 일하고 있는데, 제리랑 나랑 셋이 같이 밀접접촉자가 되어 코로나 검사를 받고 각자의 집에서 2주간 자가격리를 했다. 아팡은 무척이나 괴로워했다. 

"아니 도대체 2주간 나 혼자서 뭘 해야 하는 거야 짜증 나 죽겠어"




우리는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을 온전히 써보는 연습이 정말 필요하다.  

조현영 코치님과 10년의 인생 그래프를 그렸다. 일단 10년 동안의 기억날 만한 사건들을 두고 이름을 지어보고 점수를 줘보는 것.

조현영 코치님과 갤럽강점 분석 후 4주 코칭을 받고 있다


   

그래프가 요동치거나 바닥으로 내리 꽂혔던 때는 다 회사를 다닌 지 2년 즈음될 시점이었다. 나는 꾸준히 한 회사를 못 다닌다고만 생각해서 자책에 도망가곤 했는데 내 강점인 발상, 긍정, 행동, 전략, 개별화를 활용할 수 없이 심사숙고하다는 이유로 틀에 갇힌 사고를 들이대면 목이 졸렸던 것 같다. 


회사 대표님은 보디가드와 다녔는데, 내가 신문에서 보던 분을 만나서 반가워서 달려가 안녕하세요! 하고 가니까 보디가드들이 움찔했다. 한 번은 회사 전산망에 개인정보를 쉽게 볼 수 에러가 있다고 보고를 했다. 회사에서는 1,000만 원 이상의 상을 준다고 급히 CFO 지시 하에 이루어졌는데 회사 제품인 패드를 하나 받았다. CFO와의 식사가 큰 보상처럼 이루어졌고 나는 다른 층 남자 소개팅이 가능하냐고 묻는데 우리 팀장님은 전날부터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고민 고민하시고 “우리 정은 씨가 디자인 공부를 해서 독특합니다.”라고 나를 잘 감싸려고 노력하셨다. 


부사장님과 신입의 점심시간에는 전날 다 모여 사전 질문을 정리했고 나는 옆자리에 앉아서 맛있게 먹는데 타 테이블에 높은 직급의 분들은 다 녹음을 하셨었다. 내가 퇴근한다고 나가면 이제 막 들어온 신입이 내 가방을 두 손으로 모시려고 해서 놀라 도망쳤다.



스타트업에서는 매출로 와다다 달려서 회사에서 내 팀원들이 최다였다 그런데도 6명을 더 배치해야 한다고 해서 필사적으로 어렵다고 해도 회사의 지시라며 받게 되었고 3개월 수습기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2달 차에 실적이 부진한 사람은 정리하란 말에 정말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것 같았다.  리스트를 넘기기까지 다른 일을 하지 말라는 말에는 숨이 안 쉬어지고 몸과 마음이 결국 터져버렸다. 

앞머리가 뜯겨있으면 킴제이가 지금 힘든날이라고 했다. 팀원들이 도촬한나. 돌보지 않아 살이 많이 쪘었다. 그리고 미팅 다녀오면 붙어 있던 쪽지들. 그리운 6팀




최선을 다해 온 마음으로 일을 했지만 결국 남이 짜 놓은 판이다. 


이제 다른 거 하자고 갑자기 판을 갈아치우고 내 목덜미 잡아 저 구석에 넣어도 타인의 룰이니까 결국에 할 말 없는 사람은 나다. 그 판에서 지쳐놓고 남 탓을 하고 살아온 사람도 나다. 맘 편하게 그 운동장에서 그늘 찾아서 지내고 싶은데 그걸 못하니 그냥  한 움큼도 안될 모래밭에서 한 발로 서 있는 게 더 낫지 싶다.     


그래도 얻은 것도 많았다. 타인의 밭에서도 돋보이는 노동꾼이 될 수 있으며 그 한정된 자리에서 빠릿빠릿 머리를 써서 성과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배웠다. 한 부장님은 내가 서울의 한 동네를 분석하여 매장의 프로모션을 기획한 걸 보시고는 해외에서 공부를 했느냐. 이런 새로운 분석법이 너무나도 신선하다고 극찬해주셔서 모두 오~ 하고 박수를 쳐 주었는데, 멋진 대학 나온 동기들 사이에 내가?라고 물음표를 던지던 나에게 내가!라고 그 느낌표 힘의 시작 줄을 한번 잡아 볼 수 있었다. 


근데 뭐 맞다. 끌려다니며 살았다. 주체적으로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나는 퇴사하고 여행 가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라고 말하곤 했지만 결국 자립하는 게 무서워서 다시 재입사도 한 게 아닐까?



심지어 스타트업 입사한 첫 1-2년은 신기하리 만큼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없다. 일하면서 밥 먹고 뭐 소일거리들은 했으나 제목으로 지어낼만한 일들이 없다. 기억이 나지 않는 시간이 있다니 충격이다. 



우리는 결국 시간순으로 기억하는 게 아니라 더 애착이 가는 시간들, 마음을 다 해보았던 날들의 순으로 기억하는 게 아닐까. 10년의 그래프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지금 원하는 걸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절대적으로 하루를 모두 곱씹어서 다 살고 죽고 싶다. 오늘을 다 살고 죽어 내일 다시 태어나 또 잘 죽기 위해 살고 싶다. 




21년 여름부터 미국에 와서 혼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더듬어 보며 공부해보고 있다. 

두려워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살아보려고 애썼는데 (편하게 열린 마음이 안됨. 진짜 애를 쓰고 억지로 아 마음 닫히지 말자.연다. 열어재낀다 되뇌었음) 이제는 계약한 회사에도 겸업을 해야 하니 언제까지 어떤 일을 여기에서 배워보는 게 목표라고도 말을 할 수 있다. 일을 좀 줄이고  내가 그동안 하고 싶었던 개인 콘텐츠로 강의도 해보고 글을 엄청나게 써대고 있다. 내 차에 핸들을 이제 내가 잡아본다. 생각들이 배출되니 소화가 되고 눈앞에 흘러가는 글을 보니 모니터와 내 거리만큼 나에게 한 발짝의 거리를 두고 나를 관찰할 수 있다. 


언젠가 한 번은 회사일 잘하니까 이거에 10%만 나한테 투자해도 나는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지금을 그렇게 살아보는 게 아닐까. 내 운동화 디딜 운동장 만드려고 흙 나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나는. 잘하고 싶다. 나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정말로 마음 쥐여 짜져 눈물이 베어 나올 만큼 나를 알고 싶다.  


코칭도 받고, 내 강의안도 만들어 보고 세일즈도 해보면서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살아보는 거겠지? 조급하지 않게 오롯이 나에게 건강하고 좋은 선택만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지.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그대로 바라보며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나를 공부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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