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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단하는 킴제이 Jan 30. 2022

졸업장 대신 비행기표

좋아하는게 뭔지 모르겠어요..

"아빠 저는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림을 그리지 못하겠어요."


아빠 앞에서 누워 이야기를 하다가 울어버렸다. 아빠도 우셨다. 22살 사춘기가 아주 씨게 왔다.

고등학교 때는 그림 잘 그리는 얘였는데, 미대 입시를 하고 들어간 학교에서 마주친 친구들의 색감 세계는 놀라웠다. 낙서를 해도 아 이건 효명이 그림이 다하고 알아보았다. 명옥이는 진짜 우리 캐릭터를 몇 초만에 그린다 하고 감탄했다. 그리고 남은 내 그림엔 칭찬할 수가 없었다. 


교양 시간 딴생각에 그린 낙서를 보고 부끄러워서 지우개로 지웠다. 나는 어떤 그림을 그리지라는 생각이 나는 어떤 사람인지의 질문까지 도달하니 나는 다 벗겨져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친구들에게 좋은 친구였지만 내가 나를 잘 챙긴 적은 없었다. 부탁은 거절하지 못했고 한 번은 밤샘 과제가 끝나고 연락 온 고등학교 친구의 부탁에 포스터를 만들어 주다가 배가 끊어질 듯 아파 바닥에 꼬구라졌었다. 그때도 친구가 마음에 쓰였다.


일단 멈춰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한 교수님이 28살이 되면 디자인팀 팀장이 돼야 하는데 휴학은 미친 거라고 했다. 무서웠다. 친했던 친구는 내 휴학 이야기에 서운해해서 미안한 마음으로 더 다녔다. 함께 보내는 친구들과의 시간에서 한 발짝 떨어진다는 생각 자체가 죄스러운 고민이었다.


난 좋은 사람이었지만 남을 위함이었지 내가 누군지는 말하지 못했다. 성적은 최고가 나왔지만 그 숫자가 말했다. "그래서 네가 원하는 게 뭐야? "




벼랑 끝에 몰려서야 3학년 1학기를 마친 여름 방학 휴학을 했다. 2학년이 끝나고 하고 싶었지만 그것도 용기가 안나 한 학기를 더 다닌 거다.


 책에서만 봤던 반 고흐 그림을 네덜란드와 프랑스에서 보고 동상이냐 그림이냐 하고 동명이 오빠랑 싸웠던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림도 눈앞에 서서 담아왔다. (잠깐 첫 해외여행이었는데 혼자였고 그때는 스마트폰이 없던 때라서 종이 지도를 들고 다녔다. 아?)

마케팅 공부도 했고 영어 공부도 했다. 1년 계획이었던 휴학은 2년이 되었다. 여전히 나를 정의하지 못했지만 오늘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알았다. 마케팅 공모전을 진짜 겁나게 제안서를 써서 냈지만 계속 떨어졌다.


학교에 다시 돌아와서도 디자인 공부를 하며 주말에는 마케팅 친구들을 만나 공모전을 나갔다. 1년 동안 안되던 공모전이 결국 대상을 한 번 받더니 그 뒤로는 모두 수상이었다. 정치마케팅 공모전 1등으로 500만 원을 받았는데 학교에서 장학금으로 500만 원을 줬다.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면 학교도 돈을 주는지 몰랐다. 장려상은 30% 금액만 장학금을 줬는데, 이게 웬일인가.


4학년 여름 방학 때에는 디자인 졸업 전시회 준비로 학교에 나와 작품을 준비해야 했지만, 터키로 갔다. 친구들이 같이 프로젝트를 해보자고 해서 갔는데, 그 회사에서 인턴 증명서도 만들어줘서 학교에 내고 까맣게 탄 채로 돌아왔다, 그랬더니 학교에서 졸업 전시회 위원장이 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휴학하면 미쳤다고 했던 학교에서 몇몇 친구들이 나를 멋있다고 했다. 다수가 말하는 말은 부풀려 날아다니기만 하고 속이 비어있음에 놀랐다. 괴롭던 말들이 그저 흩날릴 뿐이었다. 사람들은 사라지고 남은 말의 잿더미에 코 박고 괴로워한 건 나다. 그때 다수의 말엔 애정이 없다는 걸 알았고 내가 마음이 끌리지 않는 일에 NO라고 말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놀라움을 배웠다.



위원장이 되어 졸업 전시회를 잘 마무리했다. 김정은에 위원장에. 김정은 위원장! 엄청난 힘을 가진 말이다! 전시회를 준비 마지막에는 응급실을 왔다 갔다 하며 인쇄도 망치는 큰일이 터지기도 했지만 처음으로 인쇄소와 전시회관과 돈거래를 하고 사람들을 모집하는 큰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다.


졸업식이 있는 겨울방학 때는 친척 언니가 신혼여행 가이드를 해달라고 해서 같이 터키에 가서 언니 커플을 내가 사랑하는 식당과 골목에 데러 가고 나는 모로코로 떠났다. 졸업식을 참여하지 못했지만, 여행을 더 하고 싶었어 졸업장 대신 비행기표를 선택했다.

오빠들에게 연락이 왔다. 


"오늘 졸업식인데 안 오냐 너 공로상 받는다고 교수님이 찾으셔"

"공로상? 내가? 내가 공을 세웠어??"


오빠들이 대신 상을 받고 다음 봄에 건네받았다. 내가 공로상을 받았다. 나 힘들다고 떠난 학교.

NO 말하게 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 나만 바라보았다.

그런데 공을 세웠다고 상을 받았다. 남을 위해 한 게 없는데..


놀라운 삶의 비밀의 틈을 봤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는구나. 내가 빛날 때 주변이 빛나게 되는구나. 

내가 나를 살면 되는구나. 또 괴로워하는 밤들에 아빠 앞에서 울지도 모르지만 그 신호가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안 해서 오는 메시지라고 생각하고 살아야겠다. 철저하게 나를 사는 사람이 되어 사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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