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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단하는 킴제이 Feb 13. 2022

퇴사 후 1년, 심리상태 점검 중

1년 뒤의 나는 어떨까? 그런 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늘 내가 할 일을 하는 것. 다른 건 없다.






오늘 I DO ME 클럽에서 1년 전의 나와 다른, 나만이 아는 귀여운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말이 길어졌다. 2021년 2월은 퇴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3월 중순까지 일하는 거라 업무 정리를 해내갔는데 대표님과 실장님은 앞으로 어떻게 살 건지 지속적으로 물어보셨지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왜 나면 나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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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를 매번 외쳤지만 막상 하려니 무서웠다. 앞으로 뭐든 되겠지 했지만 질문에 답할 것은  없었다. 마케팅 회사에 다녔으니까 마케터로 불려 강의를 하러 다녔는데, 회사를 나와서도 '김정은'이라는 사람이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 그때서야 쌓아둔 시간의 자리가 내가 아니라 회사임을 알았다. 물론 많은 걸 배우고 얻었으나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시점에서 보면 그 정도 할 필요가 있었다 싶었다. 


사람들이 회사 보고 강의 신청하지 그냥 너를 보고 하지는 않을 건데..라는 말에 내가 작아져 공허해지는 공간에 아니라고 소리 지르며 헛손사래만 저었다. 말는 말이지.. 하지만 또 언제까지 정과 성을 빌어  타인의 어깨 뽕 살려주기에 쓸 수는 없지 않은가? 앞으로 미국에 가면 뭐할 거야? 거기 회사가 있어? 무슨 일하는 거야? 호기심과 걱정의 질문도 괴로웠다. 아니 저도 모른다고요.  또 회사 뒤에 숨고 싶었다. 그래도 지금 하는 일이 몸에 익어 이전보다는 쉽게 하는 편인데, 이걸 하면서 개인 사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에 있자고 다시 설득하고 서류 문제에 소송이라도 걸까 핑곗거리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신기하다. 마음이 나약해 지니까 그걸 채우려고 제일 가까운 걱정거리들을 끌어안는다. 


일단, 미국에 왔고 집은 없다. 일도 없으며 그래도 모아둔 돈이 있으니까, 제리가 먼저 자리 잡고 일을 시작하면 된다고 사실은 그리 생각했다.. 그런데 온전히 우리가 일 찾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다시 마주해야 하는 시간과 몇 년 만에 만난 가족들은 코로나로 몹시 힘들어하고 있었다. 락다운으로 집 밖에 나가지 못하고 시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화장처리도 늦고 화장된 후로는 택배로 보내졌는데, 마음을 온전히 감싸 안을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가족들을 위로하고 그리웠던 친구들도 하나 둘 만났지만 시간이 갈수록 우리의 신발이 든든하지 않으니까 오래 걷지 못해 지쳐갔다.  


막연한 미래에, 미국에, 그 또 무언가에 기대를 하고 있었다. 기대라기보다 지금 당장의 해야 할 것을 모르니까 미뤘다. 친구 집 거실에서 벽에 등 대고 있던 소파를 옮겨 공간을 만들어 제리와 지냈다. 챙겨 온 배낭가방 두 개가 우리가 가진 전부였는데, 친구 집 카펫이 더러워질까 봐 천 하나를 깔아 두고 모든 집들이 그 선을 넘지 않게 하기 위해 애썼다. 아침에는 빨리 일어났는데, 거실에서 잠든 내 모습에 바비가 불편할 까 봐서였다.


괜찮아 앞으로 잘 되겠지 마음으로 있었지만 지금과 그 언젠가의 거리 사이에서 마음속 빈 공간들이 파헤쳐졌다.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내 불안함을 정당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일들을 불만거리로 삼았다. 짐 정리 힘들어. 이 포크 우리가 써도 되는 걸까? 바비는 언제든 웰컴이지만 그래도 불편하지 않을까. 제리와의 관계에도 불편한 거리들을 찾으려고 하는 나, 그럼에도 웃고 있는 제리를 보고 정신을 차렸다.

"정은아, 저번에 우리가 올해는 돈이 우선일까 스토리가 우선일까 이야기했잖아? 우리는 지금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거야. 이 시간은 중요해."


잘 모르는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편하게 있으려고 함을 인정한다. 앞으로 잘되겠지 하며 미룬 마음을 끌어줄 사람으로 제리로 몰아붙이려고 한걸 인정한다. 미래의 나는 잘되 있고 싶으니까 지금 가진 게 없어 보이는 나를 등한시하고 희망적인 척했다. 난 또 내 몸을 숨길 다른 이들의 어깨 뽕을 찾아다닌 게 아니었을까.





내가 아니면 그 누구도 나를 위해 살아주지 않아. 부모님과 김제리도 아니야. 나만이 할 수 있는 거야



이전 마케팅 강의를 했었던 업체들과 담당자분들에게 톡으로 인사를 보냈다. 이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했던 사례들은 최대한 빼고 컨설팅했던 회사들에 보너스처럼 알려드렸던 인스타그램 알고리즘 사례들에 대해서 장표 정리를 했다. 유튜브에 있는 모든 영상들을 찾아보고 내가 할 수 있는 내용들을 담당자분들에게 슬쩍슬쩍 알렸다. 다행히 한 곳에서 관심을 주셔서 더 할 수 있는 내용들도 보냈더니 옆팀 담당자 분도 소개해주셨다. 친구에게도 연락했다. 주변에 마케팅 컨설팅 필요한 분 있으면 나를 알려줘. 진행 전에 20분 정도 나랑 미팅하고 내가 별로라고 하면 나 안 할게. 일단 만나게 해 줘.


일단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주워 담아 보니까 마음의 빈 공간이 채워졌다. 불만은 결핍에서 생기는구나. 풍요롭게 마음을 항상 열어두지 않으면 큰 일 나겠다. 두 달만 해보자고 적어두고 했다. 사실 두 달 동안 실제 강의한 건 얼마 되지 않지만, 준비하기 위해 공부도 많이 하고 장표도 튼튼하게 만드는 시간에 더 많이 집중할 수 있었다.


한 담당자분은 무료 컨설팅이라고 해서 (클라이언트는 무료고 중간 업체가 저에게 돈을 주는 구조) 받았는데 이 정도까지 준비해주실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고 하셨고, 그 회사에 도움이 될 만한 사이트들도 보냈다. 가진건 시간이라 자료들을 만들어갔는데, 그러다 보니까 다른 강의 문의가 와도 다른 자료들로 바로 대체하거나 방향을 바꿔서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다. 문의 건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물어보시면 필요한 걸 파악하기 위해 10가지 정도의 질문들을 준비해서 사전 미팅을 하자고 했다. 이 사전 질문들을 지금 강의에도 잘 활용하여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그러다가 한국관광공사 연락을 받았다. 나는 알았다. 에너지가 지금 내 쪽으로 오고 있다는 걸.

조명까지 구매해 촬영하고 보내고 나서 유튜브에 편집된 영상을 보니까 그날 촬영에 지쳐 머리는 떡졌지만, 눈앞에 결과물을 보니 밥도 더 맛있었다.


작은 결과물들을 내가 만끽해야 한다. 앞으로 내가 얼마나 큰 사람이 될지 기대하는 것보다 오늘의 작은 결과가 나를 더 살찌운다. 그 몇 개월의 심리에 들들 볶이고 나니까 마음이 많이 열렸다. 음 열렸다기보다는 닫히려는 신호를 알 수 있다. 그럼 억지로라도 열어본다. 마케팅 강의만 한다가 1월부터는 강의를 위한 노하우와 마케팅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 컨설팅을 하기 시작했다. 목을 졸려가며 울며 했던 발표가 결국 누군가를 위함이었다는 게 신기하고 마케팅 강의 문의하셨던 분들에게도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을 알려드리니 또 연락을 주신다.


목표는 잘게 쪼개서 한입거리로 만들었더니 6주간 10번 이상의 강의를 했다. 그리고 강의 준비하는 내용을 인스타와 블로그에 올렸더니, 강사분들이 자신을 브랜딩 하는 노하우 강의 문의도 들어왔다.


결론과 정답은 모르겠으나 정신 차리고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거리들을 들여다보니까 그 바쁨에 하루가 충실하다는 건 알 것 같다.. 1년 전의 나는 퇴사를 준비했고 오늘의 나는 하와이에서 글을 쓴다. 내년은 또 모른다. 상관없다. 지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오늘 하루를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 것인지 뿐. 오늘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만 집중하는 것. 

나는 안다. 결국 이 알알이 채워주는 하루들을 걷는 게 나에게 건강하다는 것을. 나는 결국 잘 될 사람이라 지금의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쓰일 것도 안다.


바퀴벌레도 이제 안 무섭고 총알이 벽을 뚫고 들어오는 건 아닌가 하고 옆집 남자를 의심했던 시간도, 갈 곳이 없어 차 안에서 쥐어짜며 울었던 시간도, 10만 원에 하와이를 올 수 있었던 것도 집이 없었기에 가능하다고  이야기 나눈 시간도, 화장실 문 앞에 책상을 두고 일을 했는데 겨울이 되니까 나무가 뒤틀려 문이 다 잠기지 않아  줌 강의를 하면서도 중간중간 음소거를 해뒀던 시간도. 제리와 함께 외로움을 끌어안고 등에 올라타 지금의 시간도 여행처럼 살아보는 모든 하루도. 내 시간 깊숙이 자리 잡아 나는 결국 또 나를 만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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