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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단하는 킴제이 Mar 11. 2022

우리 사원이 좀 독특합니다..

27살에는 대기업을 다녔다. 터키에서 비자로 고민하다가 한국에 와서 재정비를 해야겠다 싶어 독취사 카페를 보는데 LG전자에서 글로벌 마케팅 취업 설명회를 한다는 거다. 터키에도 진출했으니까 뭔가 연결고리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신청해서 듣고 있는데 오늘 온 사람들이 이력서를 제출하면 가산점 1점을 추가로 주신다고 했다. 바로 내용을 작성해서 날짜에 맞춰 제출했고 발표 면접을 보고 1박 2일 합숙면접도 보고 팀별 발표도 하고 총 5번의 테스트를 통해 최종 합격을 했다. 인생에서 게임처럼 단계 단계 깨는 맛이 처음이라 쫄깃. 문자와 이메일을 클릭할 때는 소리를 지르며 아빠에게 달려갔었다. 대기업이라는 게 뭔지. 내가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몰랐지만 2년간 한국에서 트레이닝을 시켜 해외로 파견한다는 점. 터키어를 조금 하는 척할 수 있으니 무조건 터키로 보내달라고 해야겠다는 마음에 제출한 이력서가 나를 입사까지 시켜줬다.


팀장님은 정은 씨가 예술을 해서 독특합니다라고 상대팀에 나를 소개해주실 때 꼭 설명을 넣어주셨다. 딴소리할 나를 너그러이 인정해주십시오 같은 뉘앙스 같았는데, 또 그렇게 봐주시니까 내가 더 마음 편하게 회사를 다닐 수 있었다. 다른 세상이 사람들이 많았다. 예체능계라서 내 주변 친구들은 새벽에 학교 옥상에서 산을 보며 저 거대한 검은 물체를 손에 쥐어 깊다며 술을 마시거나 입을 꽉 깨물고 디자인을 해서 턱관절에 문제가 오기도.. 새벽까지 프로젝트를 끝내고 같이 집에 가는 길이면 이 색감과 공기를 잊을 수 없을 거라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암튼 달랐다. 학교 타이틀별로 회사 내에 파가 나뉜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고 CEO가 지나가길래 신기하고 반가워서 에스컬레이터에서 달려가 어머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는데 옆에 검은 정장에게 재지를 당해서 이해가 안 되기도 했다. 부사장님과 신입사원의 점심식사 자리가 있었는데 전 날 만나서 사전 질문을 다 높은 분들이 먼저 체크하고 밥 먹는 동안은 대화가 녹음되었다. 다 물어보되 쓸데없는 일을 만들지 말라가 몸의 메시지로 전해졌는데 물론 나는 눈치가 없었기에 사람들이 나를 부사장님 옆에 앉혀줘서 반찬을 맛있게 먹었다. 나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동기들이 아까 내가 웃으면서 부사장님 팔뚝을 쿡 찌르며 "오 독특하시네요! 저도 그거 좋아해요!"라고 했다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언젠가는 출근을 해서 일을 하는데 판매된 상품은 있지만 판매자 추적이 어려워서 팀장님께 말씀을 드리니 대리점들이 판매를 하지만 대리점이 또 관리하는 별도의 판매자들이 외부에 있어서 그분들이 판매를 하면 대리점 코드로 판매 등록을 하기 때문에 통일된 세일즈 관리가 어렵다고 하셨다.

"어? 이게 문제가 된다면 다 확인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판매자 리스트가 있나요?"

"없지. 직접 가서 알아봐 봐. 그걸 다 알아보는 게 일이지. 인사도 할 겸"

"회사에 등록이 안된 판매자들을 찾아서 인사를 하고 파악을 하라구요...?"

"응, 다 알아야 할거 아니야"


부산에 판매자 확인이  잘 안 되니까 부산부터 알아봐야겠네요 하니까 그러라고 하셨다. 부산뿐만 아니라 전국 지점에 숨어있는 판매자들을 어떻게 찾나 고민하다 대리점 직원분들에게 물어보니까 우물쭈물하는 답변에 힌트를 찾을 수가 있었다. 새로운 마케터라고 인사도 하면서 캐내야겠다 싶었다.

다음 날 출근할 때 캐리어 가방을 챙겨 갔다


"정은 씨, 반차 쓰고 여행가?"

"아~ 아니요! 팀장님이 전문 판매자들 리스트 만들어보라 하셔서요. 직접 전국을 돌면서 찾아보려고요."


지금 생각하니 아 귀엽게 미쳤네 나. 그때는 그래? 그럼 가서 확인해야지 하는 마음에 간 건데 팀장님도 무슨 가방이냐고 물어보셔서 부산을 시작으로 전국의 판매 사원을 다 파악할 거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냥 뱉었던 말이니 수습이 안되셨던 거 같은데.. 아무튼 나는 오전 일을 마치고 부산으로 갔다. 그때는 출장 숙소 별도 지원이 있는지도 모르고 친구 집에서 잤는데 다음 날에 팀장님께 전화가 왔다. 


"그냥 올라오는 게 어때..?"

"아 팀장님, 이거 지금 대박이예요. 부산은 몇 명 핵심 라인 파악했고 전주에도 가보려구요 하루 더 있다 갈게요. 일단 대리점에 인사 돌리고 있어요."


나중에 차장님께 들었는데 실장님이 이제 막 자리배치받은 여사원을 대책 없이 출장 보내면 어떻게 하냔 소리를 하셔서 분위기가 짜게 식었단다. 금요일에는 부산으로 다시 돌아와 친구 집에서 자고 주말에 올라가려고 했는데 동기들 10명이 같이 부산에서 놀자며 내려와서 함께 더 지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뱉은 말을 주워 들고 떠난 내가 팀장님 입장에서는 대책 없었겠다..


그런데, 모 나도 몰랐으니까 그렇게 한 거지.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랬다. 실제 고객들과 마주하는 대리점에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무엇이 문제인지도 바로 파악할 수 있었고 대표님들과 친해져서 본사 새로운 정책 논의를 할라치면 대표님 몇몇 분들에게 전화를 돌려 이런 거 어떻냐 먹힐 거 같냐고 물어보았다.


회사 전산망에 이슈를 전달받고 보고해서 큰상을 받기도 했다. CFO 분과 점심식사가 포상처럼 내려왔는데 나는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런가 보다 했고 팀장님은 전 날부터 나에게 이상한 이야기 하면 안 된다는 듯이 긴장을 바짝 하셨다. 식사가 시작되고 팀장님은 꼿꼿이 앉은 자세로 또 나를 소개해주셨다.

"우리 정은 씨가 예술 출신이라 참 독특하고 참신합니다."


많이 감사하고...저랑 같이 일하시느라 많이 수고하셨어요. 저는 여전히 귀엽게 잘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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