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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단하는 킴제이 Mar 10. 2022

시작하는 해변에서는 파도를 만난다

시작했다가 더 주저 하는 프리워커를 위하여

19년도 넘어가는 겨울 태국 여행을 했다. 꼬리빼라는 맑은 섬에서 지냈는데 아침을 먹고 나면 카약을 빌려 섬 반대쪽으로 가서 산을 타고 내려와 여기저기 스노클링을 했다.


애매랄드 바다 빛에서 빨간 카약이 선을 가르고 지나간다니 멋지다! 그 생각만으로 빌려 나갔다가 좁은 칸에 몸을 넣는 것, 제리랑 함께 동선을 맞춰 노를 젓는 것도 다 어려웠다. 무엇보다 바닷물이 카약에 들이쳐서 물이 차오르면 바가지랑 손으로 물을 걷어 냈는데, 파도가 높이 치면 노를 젓지 못해 당황만 하고 있었다.


시작하는 해변에서 해변에서 파도가 들어오지 말라고 나를 밀어내며 버티고 있다.

제리는 일단 파도 몇 개를 다 넘기면 괜찮다고 했지만 처음 해보니 무섭고 노에 손을 놓고 있으니 배가 측면으로 틀어져 바다에 뒤집어질 뻔하기도 했다.


파도는 정면으로 봐야 해

긴 카약은 파도가 오면 정면을 봐야 파도를 넘을 수 있는데 옆으로 틀어지면  파도가 그대로 배에 머리를 들이데서 뒤집어지기 좋다. 카약이 파도를 넘으면 배의 앞머리가 들렸다가 탁하고 떨어지듯 내려오는데 아! 무섭다 진짜. 소리 한번 지르고 계속 노를 저어야만 파도선을 지나갈 수가 있다. 


새로 시작하는 일이 그렇지 않을까. 첫 구간이 어렵다. 막상 바닷물에 발만 담갔다가  할 만한데 싶어서 카약을 가지고 왔더니 물살 리듬에 맞춰 들어가는 것부터 어렵다. 노를 저어야만 간다는 걸 알고 있지만 노질을 해도 바닷물에 밀려 넘실거리며 제자리인 것 만같다. 시작하는 것도 큰 맘먹은 건데 이러기라고?

쉽지 않을 거라는 거 알았다며 마음먹고 또 나가는데 파도 뺨 맞아 방향이 틀어지면, 가만히 쉴라 치면 뒤로 밀려 그만하고 싶다. 팔도 아프고 허벅다리도 땅땅해지고  역시 하면 안 되는 일이었나 싶고 다시 돌아가고 싶다. 뒤에서 제리가  정은아, 노를 깊숙이 넣어야 해 박자를 맞춰야 해 말해주는 가이드도 짜증난다. 아니하고 있다고 흑흑


2년간 100번이 넘는 발표를 하며 몸으로 배운 강의 노하우로 사람들을 알려주자고 나서 본 2022년. 큰 맘먹고 했는데 일단 물에 발 담가보니까 그만큼 걱정할 만큼은 아니었다 싶었다. 1월부터 2월까지 10번의 세미나를 진행하게 되었고 이제 좀 더 나가볼까 하고 카약을 빌려 탔는데, 아 해변이 나를 밀어낸다. 3월에는 여러 제휴와 협업을 해봐야지 하고 나섰다가 파도 맞고.. 아 실은 몇번 안해보고 물에 빠졌다고 힘든 척 하는거 같다.. 아! 이때 정면 보고 넘어가야 한다. 이 파도 ZONE만 일단 넘기면 된다. 그럼 파도에 내 뱃머리가 흔들리는 게 아니라 내 장딴지 힘으로 멀고 나갈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  시작 zone의 파도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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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선에 파도 존이 있다는 걸 알면 좀 낫다.  흔들리고 넘실거리면, 시작이니까 이렇구나 항해를 시작했구나라며 준비된 마음을 채울 수 있다. 얼마 전에 인스타그램에 일이 힘 있게 뻗어나가지 못한다고 썼었는데, 사실 콘텐츠를 더 홍보하고 적극적으로 제휴를 나설 마음이 부끄럽기도 했다. 마음의 파도를 넘어가는 중이다. 해변에서는 파도가 부서질 수밖에 없으니까 당연히 울렁이는 마음일 뿐이다. 팔 힘도 단단하고 허벅다리도 탄탄해 노 저을 준비는 되어있다. 근데  민망하다고 고개를 틀면 배 뒤집히기 딱 좋다.  카약을  머리에 이고 바다에 들어갈 때는 가고 싶은 곳이 저기에 있지? 점 한번 찍고 카약에 일단 타면 첫 시작에서는 그냥 앞만 보고 파도 넘어갈 생각만 해야 한다.  파도 몇 개만 넘긴다 하고 대차게 들이 내면 어느 순간 잔잔해진 바다에 내가 놓여있다. 그럼 다시 고개를 들어맞아 저기로 가는 거였지! 이제 내 속도로 가면 된다. 


파도에 젖었다가 만나게 되는 잔잔함 (출처 : unsplash)
그래서 우린 노질을 해야 해


바다를 질러 도착한 섬의 나무에 카약을 묶어둔 기억, 몇 번이고 그냥 쓰러져야겠다 다짐한 무대에서 감사합니다. 마무리 인사까지 쥐어짜며 한 시간, 차장님 이메일 프린트해서 따라 쓰며 조금씩 정리가 되간 인턴 시절 이메일, 끝까지 PPT를 만들어 공모전에 제출버튼을 누른 클릭, 괜한 짓을 하나 천만번 생각한 킴제이 강의 노하우 세미나 오픈. 딱 1년만 인디 워커로 살아보자고 지내보자고 결심한 편도행 티겟팅. 물 많이 먹었지만 어찌 되었던 카약 붙잡고 울면서도 시작 존의 흔들림을 이겨나간 적이 있다. 그 작은 성공 때문에 지금의 배에도 내가 탈 수 있는 게 아닐까.  내 마음의 파도를 재우는 게 제일 어렵지만, 또 결국 나만이 느끼는 멀미니 물 한잔 탁 마시고 다시 고개 들면 가보는 거지. 글을 쓰니까 파도가 좀 잔잔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저 바다를 헤엄칠 나를 아니까 결국 갈 거라는 거 아니까  너무 움츠려들 진 말자. 일단 노질만 해보고 수그러진 바다에서도  만약 잘 못 갔다 싶어 다시 돌아가는 건 쉽다. 지나온 파도가 다시 돌아 갈 때는 내 등 밀어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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