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노마드에게 필요한 건 연대감일지도?
많은 위로를 받았다. 어제 여행의 선택에서 그저 등 돌아 잠이나 자고 싶은 불안함과 피곤함에 대해서 글을 썼는데 공감이 된다며 응원한다는 말씀들을 해주셨다. 글을 쓰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놓으니까 따뜻한 말들이 들어와 앉는다. 공기가 탁했을 땐 여행하는 거 부럽다는 이야기가 때론 부담이 되었던 같기도 하다. 창문을 닫아두니 말들이 창문을 두들기다 떨어져 나갈 수밖에...
사라님은 여행에서의 선택지를 떠나보내는 것 자체가 낭비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고 했다. 맞아 루틴에 몸을 맡기는 게 아니라 신경을 곤두 세워야 하니 피로할 수밖에 없다. 집에서 편히 느끼는 소소한 습관들을 다 미루고 왔기 때문에 모든 선택에 익숙해진 척 뇌를 속여서라도 마음의 고요함을 찾아내야 한다. (침대에서 손 뻗으면 읽는 책이 필요하다. 여행 갈 때마다 '상처받지 않는 영혼' 한 권이라도 가져오는데 왜 이번에 안 가져왔지) 여행의 선택지가 눈앞에 펼쳐졌는데 선택하지 못한 것들이 아쉬울 따름이다. 하지만 이게 여행이니까 반짝 반짝여서 그럴싸하지 환상이다. 출근해서 삼성역에서 돈까스 먹는데 오늘 왜 점심시간에 전주까지 가서 콩나물 국밥을 못 먹었나 품을 수 없는 기회들에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것과 같다. 지금 신나게 돈까쓰 썰어먹고 흥건히 즐기면 된다!
가지 못한 것,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지금을 미련 갖고 있으면 뭐 어쩌자는 건가! 아 후련하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저기서 일을 하고 주스를 마시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어쩌면 아마 이런 생각이 많지 않을까? 주변이 잘 안 보이니 나 혼자의 길이 막연하고 두텁게만 느껴지는 게 아닐까. 7년 전 태국 무코수린 섬에서 지낼 때였다. 7시면 전기도 없고 텐트에서 자고 일어나면 바다로 바로 뛰어들어가 섬 반대쪽으로 헤엄쳐 갔었다. 5명이서 같이 지내다가 그날도 저 깊은 바다로 스노클링을 했는데 다들 꽤 적응해서 각자 저 멀리 떨어져서 물안경만차고 열심히 물고기들만 쫓아다녔다. 한참을 놀다가 다들 어디에 있나 올라와서 보는데 머리통들이 안 보인다. 바다 안에서 수영하고 있나 잠시 뒤에 봐도 없다. 일단 다시 섬으로 가야지 하고 뒤돌아 보는데 아.. 너무 멀다. 일단 안 쉬고 쭉 가야겠다 마음 장전하고 가다가 아 짙은 심해를 지나가게 되었다. 짙푸름이 겹겹이 쌓여 깊이를 가늠할 수 도 없고 산호초도 고기도 안보였다. 당황해서 다시 숨을 고르고 헤엄치는데 주변에 아무것도 없이 어두우니 우주에 나 혼자만 동동 떠 있는 것 같았다. 힘차게 헤엄쳐도 까만 공간이라서 동동 발버둥 친다. 애쓰는 움직임이 허무짐과 함께 공포가 같이 밀려왔다. 열심히 가는데도 가만히 있는 것 같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방향도 잘 모르겠고. 다시 저기 섬머리를 보고 눈 질끈 감고 한참을 수영했다. 제발 이제 눈앞에 뭐라도 있어라 싶어서 고개를 드니 저 앞에 머리 3개가 동동 떠 있다. 아! 저깄 구나! 얘들아 나 여깄어!
신나게 헤엄쳐가니 아무렇지 않게 물고기 많았냐고 물어본다. 파란색과 노란색 산호초가 너무 멋졌다는 둥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주니 희한한 위로를 받고 다시 수영이 즐거워진다. 어쩌면 지금 나의 일도 그렇지 않을까?
혼자서 일해보겠다고 대차게 나온 바다에서 바닥이 보이지 않는 검은 바다를, 나만의 세상에서 허우적거리는 게 아닐까. 혼자서는 내가 지금 어딘지도 모르고 방향감을 잃으면 가고 싶은 건지 지금 이게 의미는 있는 건지 의심하게 되고 두려워하게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저 멀리 동동 떠 있는 머리들 아닐까. 나 힘차게 지금 수영하고 놀고 있으니 너도 너 원하는 곳에서 행복하게 활기차라고. 내가 잠시 하늘을 보러 나왔을 때 저 멀리서 수영하는 모습을 보며 안정감을 받을 수 있는 존재들. 누군가 나와 같이 수영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든든해지지 않을까.
음.
이번에 내가 느낀 불안함과 압박감이 다른 이에게도 있지 않을까? 나는 그럼 그 사람에게 가까 다가가 지금 수영이야기를 해주면 되지 않을까? 내가 받았던 위로를 전하고 싶다. ....
노마드 워커분들을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