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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단하는 킴제이 Jan 29. 2023

치앙마이에서 만난 20대의 나

NORTH GATE 째즈바에서

발리에서 지내다가 뉴질랜드로 가지 않고 태국으로 왔다. 8번째 오는 이 나라. 치앙마이에 디지털 노마드가 많다고 해서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코워킹 플레이스 투어도 하려고 갔다. 강릉 워케이션에서 만난 정현님이 노마드 모임 왓츠앱 (WHATS APP) 링크를 전해주셔서 거의 격일로 새로운 밋업이 오픈되는걸 알게 되었다. 금요일엔 디지털 노마드 저녁 식사 모임. 일요일엔 브런치 모임. 호기롭게 떠나서 치앙마이에서 노마드의 삶은 더 깊게 영유해보리라하고 왔다. 그런데 나의 묵직한 두려움의 시기와 맞물려서인지 금요일 밋업에 들어가는 순간, 제리를 먼저 밀어 넣었다. 아 숨어버렸어 내가. 애써서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알아듣기도 잘 했지만 수많은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나눴다가 저 그룹에 가서 웃었다가 하는 문화가 좀 어색했다. 일요일엔 비건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었고 .. 그 전 글에서 썼던 것처럼 그놈의 '앞으로는?' 'WHAT IF?" 때문에  영어와 네트워킹에서의 어색함도 내 어깨를 짓눌렀다.


"나는 왜 그럴까"


사람의 마음의 파도가 일면 감정을 정당화하면서 이유를 끼워맞춘다. 그냥 파도가 지나가는 것 뿐인데 휩쓸린 내 탓을 한다. 그냥 파도야 정은아. 올라타서 서핑을 해도 되고 지쳤다면 그냥 다시 해변으로 걸어가면 돼.



치앙마이 올트타운 북쪽에는 NORTH GATE 재즈바가 있다. 저녁에 지나갈 떄 마다 사람들이 모여 라이브 연주를 듣는다. 7년 전에도 멋졌는데 여전히 근사하다. 재즈바는 당연히 꽉찼고 밖에도 30여명 정도가 인도와 차도를 반쯤나와 노래를 즐기는 곳이다. 제리랑 함께 서서 듣다가 맥주를 한병 들었고 더 들어보려는 찰나에 연주가 끝났다. 그냥 한병 마무리 하고 숙소로 돌아갈까 하다가 사람들이 빠져나간 틈에 테이블을 잡았다.

다음 밴드의 연주가 시작되고..몇분 후 정말 신기한 경험을 했다.


두리번 거리면서 눈에 걸렸던 한국 남자가 있었다. 혼자 온 것 같았다. 흥건히 기분좋게 취해서 왼쪽의 태국분들도 한참을 이야기 했다가 오른쪽의 서양남자랑 이야기를 한다. 한껏 들떠있는 목소리에 짧은 영어로 신나게 대화를 한다.



22  유럽여행을 갔던  모습이다. 얼굴도 비슷했다. 넙대대하고 안경도 꼈다. 그날 째즈바에 22살의 내가 왔다. 알고있는 영어단어를  펼쳐내며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고 여행을 함께 하고 있다. 스마트폰 없이 종이 지도만 보고 길에서 눈마주친 사람들마다 지금 내가  지도에서 어디에 있죠? 숙소에 가면 주변에 갈만한 곳을 물어가며 두달 동안 혼자 여행했다. 네덜란드 도착하자 마자 외국인들이 너무 많아 놀라 공항 화장실에 숨어있던  아이가 한두마디 익히더니 독일에선 2 동안 산에 새집을 지으면서 지내고 말도 하나도 안통하는 스페인 친구와 여행을 했다. 나는 말을 못했지만 말을 잘했다. 집중해서 들었으며  몸을 열어 감각으로 받아들였다. 이탈리아에서  친구랑 독일에서 깜깜한 밤에 보름달을 보여 뷰티풀 단어만을 외쳤었어다. 새로운 모든 것이 반가웠으며 흥분을, 울음을 감주치 못했다.

만 21살, 내기억에 독일 같다


아무렇지 않게  인생에 걸어  사람들과 믿을  없는 멋진 시간을 보냈다. 미국에선 골져와 같이 살게 되면서 영어가 엄청 늘었다. 캐나다 호스텔에서 약쟁이들 스무명이  방에 들어와 난리를  때는 일어나서 신나게 놀거면 밖에서 놀아라 자야한다고 말했는데,  여자는 나를 미국인으로 생각했었다. 프랑스의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작가가 한국에 왔을   그림을 보여주며 통역도 돕기도 했다.


온몸으로 감탄하고 감각이 살아 있었기에 엄청나게 배워대며 살아있었다. 부끄러움도 없고 설레임만 가득했다.

언어가 없어도 나는 말을 잘했었다. 왜냐면 그저 신났으니까.

그 22살의 내가 지금 이 재즈바에서 여기저기 사람들에게 말을 건내고 있다.


그 한국남자를 보여 겹겹히 쌓여 잊혀진 과거의 내 모습에 바람이 분다. 맞아. 나야. 나였어. 나는 절대 부끄러운 없이 배움만이 가득하니 세상이 놀천지였고 그래서 사람들이 내게 신기한걸 많이 퍼다 날라줬어.


정신이 바짝들면서 아니 내가 왜 지금 영어를 못 한다고 부족해 하는거지? 21년에 미국 살아보면서 영어 못 하면 못 배운 사람으로 안다는 그 작은 말에? ASIAN HATES 때문에 내가 말하면 티나서 혹여나 맞을까봐 쫄았어서?

그따위 시간 때문에 내가 쫄릴 수가 없다. 그래 그때는 불안하고 힘들었음에 깊은 위로를 보내지만 계속 고장난 시계처럼 그러면 그 것도 병이다. 다시 설레인다. 맞아 저게 나야.

그러다 고개를 돌려 길거리에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을 보니 저기에도 22살의 내가 있다. 초로색 후디 자켓, 단발버리에 거친 뺨을 가지고 있다. 유럽여행에서 유일하게 가지고 있던 두께감 있는 긴팔이다. 맞아 나는 촌스럽과 아주 귀였지 그리고 대차고 신나게 여행을 하러 다녔지. 지금 내가 이 진동에 신물이 난건 내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해서 일지도 몰라. 열면 바람도 불고 고였던 물도 흘러가는건데. 문만 열면 돼. 지금 내게 이 시간이 온건 이 큰 문도 열어낼 수 있는지 테스트가 온거다. 사건이나 타인으로 오는게 아니라 마음 속 균열을 내는 잡음으로 왔다. 내게 더 관대해지고 거침없이 신날 수 있도록 무대를 넒혀갈 수 있는 문 하나가 온거다. 이제는 남 탓을 할 수 없음에 문제를 내게서 찾아야하는 건가 혼란 스러웠는데 의미없다. 그저 계속 문을 여는 연습.


그래서 제리를 방콕 공항에서 미국으로 떠나 보내고 치앙마이로 돌아왔다. 다시 설레일 수 있게 내 마음을 열어보려고. 언어없이 표현해대며 그저 해보려고. 목요일에 열리는 창업가 모임도 신청했다. 50여명의 글로벌 사업가들이 모이는 자리다. 저번에도 갈 수 있었지만 피하고 싶어서 안갔었다. 안간채로 끝나면 이대로 내 모습이 될 것 같아서 신청했다. 나는 그 촌스럽고 발랄했던 청년이 되어서 초록색 후디를 입고 어수룩하게 그저 순수하고 아름다운 20대 소녀가 되어 다녀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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