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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단하는 킴제이 Feb 25. 2023

네팔, 죽음을 사는 나라

화장터에서 본 나의 죽음


네팔에 왔다. 7년 전에도 와보고 싶었지만 못왔고 3년 전에도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꼭 가야지 했던걸 지금에서야 왔다. 태국 치앙마이는 2월 부터 Smoke season 이라 공기가 안좋아지는데 네팔은 히말라야를 끼고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왔더니 카투만두도 매캐하다. 저녁에 도착해서 밥먹으러 나갔다가 밀려들어오는 차에 놀랐다. 차선도 신호도 횡단보도도 없다. 뒤엉킨 차에서 의연히 걸어가는 사람들을 따라 간다. 매연과 흙먼지가 찬 곳에 내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긴장을 바짝한 채 숙소 불을 켠채로 잠들었다. 혼자 지냈던 치앙마이도 첫 날은 힘들었다. 여기서도 점점 나는 익숙해지겠지? 와이파이도 줌미팅에 나쁘지 않고 인도음식과 중국음식이 많아 먹어볼거리가 많다.


어쩌다가 여기에 왔을까 히말라야는 눈이 쌓였다는데 겨울 옷도 없이 일단은 왔다. 도착하면 다 빌리고 중고를 살수 있다길래 지금이 아니면 안될거 같아서 태국에서 가장 싼 비행기 날짜에 맞춰서 날아왔다. 치앙마이의 한달간의 시간이 소중해서 네팔로 떠나기가 어려웠지만 그 수많은 배움과 메세지가 내 손을 잡아 끌려왔다. 이제는 그 배움에 호흡을 맞추고 수련할 때가 아닐까? 다시 혼자만의 시간에서 소화할 시간이다. 다음 날 일단 다시 밖으로 나갔다. 날것의 그대로의 네팔이 펼쳐져 있다. 사람많은 곳을 따라 걷다가 Asan Bazar에도 스며들었다. 100년 전 시간에 이 영화를 내가 걷고 있다. 음악같은 언어들은 터키어 같기도 하고 호텔 기사님에게 배운 단야밧(Dhanyabad. 한국말로 땡큐) 여기저기 매장에서 써먹으니까 신기한 듯 웃어주신다. 인도 음식점에 들어가 음식도 시켰다. 혼자 왔다고 하니 두명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안내해줘서 같이 먹었다. 낯선 사람들 투성이고 메뉴도 모르겠다만 눈치껏 주문했다가 맛있어서 한끼 더 시켜 먹었다. 인도에 가면 이렇지 않을까. 무섭고 긴장되서 몇번이고 가방과 주머니에 핸드폰과 지갑이 잘 있는지 챙기고 티안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흙먼지를 달리는 버스에서는 멈추기도 전에 열린 문으로 사람들이 뛰어 내리는 걸보고 못타겠다 싶었다. 택시도 어떤 시스템인지 몰라 일단은 지도를 보면서 계속 걸었다. 40분 정도 더 걸어서 숙소 아저씨가 추천해준 Swoyambhu Mahachaitya 사원에 왔다. 네팔에서 가장크고 원숭이가 많아서 구경해볼만하다고 해서 왔는데 엄청난 계단에 몇 번이고 쉬었다 올랐다. 와 이 정도에도 숨이 가쁜데 히말라야는 갈 수 있나. 챙모자를 쓰고 계단 네다섯개만 보이게 시야를 차단하며 무조건 올랐다. 갈수 있냐 없냐 생각이 많아지면 못 가겠지. 가냐 안가냐만 선택하는거야. 그리고 나는 간다.

건조한 흙먼지 냄새에 전날 샤워 못한 것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원 구석구석을 한참을 구경하고 내려간다. 신을 바라는 인간의 기원이 예술이 된다. 문화가 된다. 나도 바라고 새기고 기도하면 나만의 문화와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내려가는 길에 라씨 한잔 주문했는데 방심한 사이에 원숭이한테 뺐겼다. 내려놓은 내 잘 못이다. 저번에도 사과 봉투 잠깐 텐트앞에 뒀다가 바로 낚아 채였다. 소지품도 잘챙기고 무릎까지 들어오는 오토바이도 잘 피했는데 원숭이에게 당하다니. 4시에 싱잉볼 수업이 있어서 다시 숙소방향으로 돌아간다. 대낮의 거리는 더 난리다. 이 정신없는 무질서에 내가 걷고 있다. .사원을 돌아 쭉 내려가다 보니 왼쪽편에서 검은연기들이 피어오른다. 뭐지? 사람들이 공원에 모여있길래 길을 건너 들어가보니 화장터다.


열린 공간에 정자들을 세워두고 장례식이 치뤄지고 있었다. 밖에서 서 있다가 들어갔다. 할머니 죽음이후에 누군가의 화장은 처음이다. 나무장작 위, 노란 천에 감겨 누워있다. 사람들이 돌아가며 생수를 입쪽에 흘려주고 노란 천 조각을 하나씩 덧대어 올려준다. 마지막 가는길에 목마름을 축이는 건가? 오늘의 때를 벗고 잘 떠나기를 위한 샤워일까? 건물들은 검게 그을려 있다. 수년간의 떠나보냄의 연기가 쌓여있다. 악기 소리와 함께 울음 소리가 하늘을 찢는다. 뒷쪽에서는 장작불이 활활 타오른다. 죽은 자는 말 없이 연기와 함께 탄다. 울다가 축 늘어진 여성이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걸어 올라간다. 보내지 못하는 아쉬움일까 보고 싶음일까 다 전하지 못한 사랑의 미안함일까. 심장이 녹아내리고 하늘을 찢어갈기는 아픔에 눈물이 난다. 괴로움에 무너지는 이들의 하루에 낯선이가 서 있고 원숭이가기웃거린다. 데이트를 하는 커플이 지나가고 상인들은 물을 판다. 삶과 죽음이 아무렇지 않게 이곳에 서있다. 죽음도 삶이다. 죽음이 삶이다.

화장터. 화장 후 강에 흘려보내는 장례문화를 가지고 있다는걸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다.

가만히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저기 장작위에 조용히 누워 죽은자는 나다. 나의 엄마고 애비다. 제리도 누워있다. 세 아들을 두고 떠나야했던 젊은 엄마도 오늘 여기에 있다. 얼굴을 보니 못한 찬바닥에서 홀로 죽어간 아비도 만난다. 내 죽음을 보고 있다. 죽음의 사연은 남는자들의 것이지 떠나는 자는 연기와 함게 떠난다. 못봤던 이들까지 그리워지는 슬픔이다. 날마다 태어나서 죽어야겠다. 스스로에게 친절하며 사랑해주며 아껴줘야겠다. 죽는 날 가장 아쉬운건 나를 더 사랑해내지 못 함이 아닐까. 생에 오는 배움의 문장들의 의미를 헤아리며 열린마음으로 살고 잘 죽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에고를 들먹이며 시간을 질질끌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싶다. 원망과 자책없이 해맑게 웃는 죽음을 살고 싶다. 과거의 상처를 덮으려고 바락바락 대들지 않고 열어재껴 환기시켜본다. 죽음이 가벼워지기를. 원숭이와 생수와 낯선이가 섞인 죽음을 인정하고 미련없이 사랑만 남긴채 떠나고 싶다


"정은아 꽃을 들고 신나게 길을 떠나며 춤을 춰라. 그럼 사람들도 그 꽃길을 보며 행복할거야"

엄마가 결혼식 때 못 했다며 해준 말이다. 죽음 위에도 춤을 춘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되는 사람이다. 두려워 할 것 없이. 아니 두려움도 외로움도 나의 것이니 그저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신나게 행복해야함이 오늘도 살아내고 죽는 나를 위함 배움이다. 


오늘 나는 죽음을 목격하기 위해 카투만두로 온게 아닐까.

장작에 눕혀진 나를 만나 죽음과 사랑을 품어본다.

사랑해 정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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