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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단하는 킴제이 May 05. 2023

네팔 포카라에서 우연히 만난 동화작가

카트만두에 있다가 포카라 넘어와서인지 하루하루가 평온했다. 숙소는 편했지만 바로 도로 근처라서 늦은 밤이 되어서야 조용해졌다. 하루는 날이 좋아서 밖에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싶어서 구글맵에 Art cafe, Art program을 검색해 보았다. 물감도 빌려야 하고 이전 치앙마이에서 갔던 그림카페가 좋았기에 3시간 정도 그렸으면 싶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길래 걸어서 한 시간 거리인 미술 학원에 일단 전화를 했는데 서로 말이 잘 통하지 않았다. 일단 나갔다. 물감도 붓도 없었지만 노트랑 펜 챙기고 태국에서 그렸던 그림 2점도 챙겼다. 

포카라의 풍경들. 처음에는 다 낯설었지만 나중엔 떠나기 힘들만큼 귀엽고 아름다웠다.


그때는 이제 막 포카라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택시 타는 것도 좀 겁이 났다. 구글맵에는 나오지 않는 버스인데 사람들이 그냥 문 열린 버스로 뛰어들어 타는 걸 보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오늘은 그냥 마냥 걸어보자는 마음으로  그러다 보면 그림 그리는 상점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숙소에서 나선 지 10분 만에 Art Gallery라고 쓰인 간판을 보았다. 한참 검색했지만 못 찾았던 단어여서인지 냉큼 들어갔다. 식당이랑 카페도 같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그림 전시가 되어 있었다


"혹시 여기서 그림 그리는 프로그램도 있나요?"

"어.. 여기는 그림만 전시하는 곳이고 그림 그리는 건.. 잠깐만요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South Korea. 밖에 Art라고 쓰여 있어서 들어와 봤어요. 그럼 그림 구경하다가 갈게요 정말 감사해요"

"Well.. 우리 사장님이 한국분인데 잠깐만요?!"


'네...?'


사장님이 한국분이셔서 신기하지만 이미 여기가 그림 그리는 곳이 아니란 걸 알았는데 다시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지 싶었다. 저쪽으로 오라고 해서 가서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하니 

"어어어! 잠시만요! "

한국말소리에 놀라서 다시 문밖으로 나갔다. 사무실일줄 알고 들어갔는데 안방처럼 주무시는 곳이었던 것 같다.

민망해서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으니까 안경을 쓰신 분이 나오신다. 어떻게 왔냐는 말에 아 여기 그림 그리는 곳인 줄 알고 착각해서 들어왔다가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되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림 그려요? 어디 한 번 봐봐"

민망해.. 그림 2점을 보여드렸더니 한참을 보셨다.


"어머나.. 자기는 따뜻하고 화려한 사람이구나? 이런 색을 쓰는 어른들을 많이 못 봤는데 아이들이 참 좋아하는 그림이다"


나를 안아주는 나인데.. 아바타 같아
초상화

부끄럽고 기분 좋았다. 오랜만에 그린 그림인데 그리고 갑작스러운 방문에 민망하고 죄송하기도 했는데 이렇게 물끄러미 내 그림을 바라봐주시면서 다양한 표정이 피어날 수 있다니!

한참을 더 보시더니 잠깐만 기다려보라면서 종이 뭉치들을 가지고 나왔다. 동화작가이며 몇 개의 책을 출판했고 지금은 네팔에서 지낸다고 하셨다. 이번에 쓴 글이라며 읽어주시는데 상상의 나래가 아름답게 덕지덕지 묻어있는 아이스크림 여행에 대한 글이었다. 숨길 것도 없이 순수함과 다채로움이 뚝뚝 떨어지는 이야기다.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오르락내리락 신명 나게 읽어주시는 글에 몽글몽글 애니메이션 한편이 뚝딱 그려진다. 


"혹시 나랑 같이 작업할래요? 내가 쓴 글에 그림을 그려줄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지금 그림 보니까 자기인 거 같다. 색이 너무 좋아."

"어? 저는 그림 안 그린 지도 오래되었고 누군가의 의뢰를 받아서 해본 적이 없어요. 디자인 전공이지만 마케터로 10년을 일해 가지고... 음"


"더 좋지! 그림 구성도 알 거고 커뮤니케이션도 잘 될 거고 더 좋지 네팔에 얼마나 있을 거예요?"

"음 아마 한 달 정도요?"

"아 그럼.. 안 되겠다 3달은 같이 해보면 좋은데.."



갑자기 이렇게 왔는데 이런 좋은 제안을 해주셔서 신기하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내 눈동자를 신기하게 자주 쳐다보셨다. 그렇게 우리의 대화가 시작되었는데 2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순수한에 열정의 칼자루를 쥔 사람이다. 내 앞에서 앉았다 일어섰다 하면서 말을 토해내시는데 영화한 편이거나 명상 같았다. 하고 싶은 건 지금 당장 해야 한다며 그림도 지금 바로 그릴 수 있다고 하셨다. 붓이 없다고 하니 바로 옆에 마른 잔디를 쥐어뜯어서 이게 붓이라고 하셨다. 성큼성큼 정원 쪽으로 가서 직원분께 부탁해서 높은 나무의 껍질을 벗겨내시더니 이런 질감은 어떻냐고 했다. 주변의 모든 것이 재료라고 했다. 계란을 섞어도 커피를 섞어으면 그게 물감이라셨다. 과일들을 짓이겨 색을 펼칠 수 있다고 했다. 갑자기 내게 와서 셔츠 단추를 화라락 펼치는 바람 같은 사람이다.


"루소 그림 봤어요? 아프리카 그림 그 사람은 아프리카를 가본 적이 없는데 아프리카를 그렸지. 그래서 그때 사람들은 가보지 않고 그렸다며 엄청난 비난을 했어 그런데 루소는 간 거야. 세상 밖으로의 여행이 아니라 마음 구속구성으로 여행을 간 거지. 마음여행으로 아프리카를 갔기에 그린 거야. 우리도 그래 우리 내면에 볼 게 얼마나 많은데"


"이 세상에 내 마음이 가장 친한 친구야. 힘들면 하기 싫으면 한 번쯤은 내 마음에게 말을 거는 거지! 야 그냥 오늘은 나랑 놀까? 뭐 하고 놀까? 그러고 그냥 내 마음이랑 놀아주는 거야. 그런데 우리는 어른이 돼서 그런 걸 잊어버린 거지. 얘들 봐봐 걔네들은 자기 마음이랑 잘 놀아주는 존재니까 순수하고 행복한 거야. 죽을 때까지 함께 가는 존재는 내 마음밖에 없어. 그러니까 진짜 잘 돌봐줘야 해. 해가 잘 드는 곳에 다가 내 마음을 널어줘야지"


나는 기뻐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 눈앞에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혼자 일하고 여행하면서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정신없이 정리된다. 그래 나는 내가 잘한다고 믿어주고 푸시하는 게 응원인 줄 알았는데 정작 내게 친절하지는 못했다.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워. 우리가 갑자기 이렇게 만나는 것도 아름다운 거야. 즐겨 지금을 즐겨. 어떻게 하면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초조해하지 않고 편히 머물 수 있을까? 첫째 지금 하고 싶은 일을 바로 하는 거야 그리고 둘째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음을 느끼는 거지! 얼마나 좋아 날씨도 좋고"


"그리고 내게 세상의 우위점이 되는 비밀을 알려줄까? 당당해야 해. 그리고 사람들이 잘하는 점을 칭찬해 주면 돼. 칭찬을 하는 순간 내가 올라가는 거야."


놓칠 수 없는 단어들이 우수수 쏟아져서 양해를 구하고 녹음을 할까도 했지만 주머니를 뒤적거리는 시간도 아까웠다. 마음에 차곡차곡 담으며 웃었다가 울었다. 시간이 한참이 지나도 감동이 가시지 않았다가 2-3일 뒤에서나 아차 싶어서 공책에 기억나는 대화들을 후다닥 적었다.


하고 싶은 일을 지금 해야 한다며 물감 찾으러 돌아다니지 말고 물감을 지금 바로 사라고 하셨다. 직원분 불러줄 테니 오토바이 타고 시장 가면 판다고 바로 직원분을 부르셨다. 바로 오토바이를 타고 시장으로 갔다. 두 개 문구점을 갔는데 물감이 작은 것만 있어서 스포츠용품과 아트용품을 같이 파는 곳을 구글 맵에서 찾아갔다. 물감도 사고 붓도 사고 종이도 샀다. 포카라에 아직 적응이 안돼서 숙소 밖 멀리 나가니 못 했는데 내가 지금 오토바이로 여기저기 사람들을 지나치며 누빈다. 길목에 있던 Creative Studio라는 곳도 보았다. 그림 그리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글도 벽에 쓰여있었다. 오 찾았다! 다시 돌아가는 길에는 요가센터 알아볼 곳이 있다고 여기에 내려달라고 하고 직원분께 인사를 전했다. 그림그릴 곳을 찾으러 가야겠다 하고 나섰다가 2시간 만에 폭풍 같은 대화로 영혼샤워를 하고 지금 손에는 물감이랑 붓이 들려있다. 지금 내가 무슨 일을 당한 거지? 

그림재료 사러 간 시장


우물쭈물하고 한 발 내딛었던 곳에 엄청난 호수가 펼쳐졌다. 신발 젖을까 하고 망설였던 거니 풍덩 빠져보니 호수가 나를 안아준다. 태국에서 혼자가 되어 치앙마이에 다시 갈까 말까 했던 그 불안함이 잠잠해지고 네팔 와서는 혼자서 뭘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곤 했는데 작가님을 만났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한 단어로 담아낼 수 없는 벅참이 올라왔다. 어쩌면 이 세상 모든 것이 나를 위로해 주고 메시지를 던져주는데 내 마음 불안하다고 고개 처박고 못 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마음껏 불안해하지 않고 그저 사랑해 버리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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