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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단하는 킴제이 May 09. 2023

네팔가족의 저녁식사 초대

세상이 내게 주는 메시지들

동화작가님 덕분에 포카라 시장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물감을 샀다. 다시 숙소로 돌아갈까 하다가 저번에 알아봤던 요가센터에서 내려달라고 했다. 오후 3시 아직 덥고 동네가 익숙하지 않으니 긴장을 세우고 찾아갔다. 저 멀리 길에서 수상한 사람이 보이면 그냥 휙 돌아가 더 많이 걸었다. 포카라에서 요가수련을 할 수 있는 요가스쿨이라고 찾아갔다. 작은 현수막이 있었지만 홈스테이형 호텔이다. 인포데스크에도 아무도 안 계셔서 정원으로 조금 더 들어갔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도망치려고 뒤돌아서 길을 다시 확인했다. 잘 가꿔진 정원 안쪽에 한 아주머니가 테이블에 앉아서 통화 중이셨다. 눈으로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해서 서 있다가 통화가 끝나고 인사를 나눴다.


"나마스떼! 혹시 영어 하시나요?"

"무슨 일로 오셨어요?

"아 여기 요가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서 상담을 받으려고 왔는데.."

"아 그럼 잠깐 여기 앉아봐요. 밀크티? 커피?"


밀크티 한 잔을 받아서 마시는데 아주머니가 여기는 어떻게 찾아왔냐고 물으신다. 포카라에 있는 요가 센터 몇몇 개를 알아봤는데 주변에서 물감 사다가 가까이 있어서 먼저 왔다고 했다. 물감은 왜 샀냐 물어서 그림도 보여드렸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엄청 신기해하시면서 얼마나 있을 건지. 트레킹도 갈 건지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반갑긴 하지만 요가상담을 받고 싶은데 이것저것 대화하다가 생각이 흩트러 진다. 

"혹시 그럼 요가 프로그램은 언제 시작하나요?"

"음.. 그게 우리는 숙소고 보통 요가 선생님들이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숙소들과 계약을 해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킴제이가 말한 선생님은 우리랑 안 한 지가 한 3개월 되었어요"

"아 그럼 지금 그 선생님들은 어디 계시는 건가요?"


아주머니는 구글 리뷰는 다 보았는지 여쭤보시고 다시 한번 이 프로그램을 알게 된 경로를 여쭤보셨다. 그리고선 사실은 이 프로그램 참여했던 분들이 프로그램이 끝나고도 속소에 머무르면서 아주머니께 요가 프로그램 불평을 많이 하셨다는 거다.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여기서 지내지만 수련 기간 동안 선생님께 요가 질문을 하면 구글에서 검색하라고 하고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서 중간에 환불을 받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구글 리뷰에서 봤던 내용이었다. 왜 요가를 하고 싶은지 물어보셔서 선생님이 되고 싶은 건 아니고 요가 자격증 공부를 하면 요가 철학이나 기본자세를 튼튼하게 배울 수 있을 거 같아서 해보고 싶다고 했다. (21년 8월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10개월 동안 쭉 요가를 했고 하와이에서 만난 선생님이 친구가 되었다. 안젤라의 추천으로 요가 자격증 프로그램을 알아보고 있었다.) 


가만히 계시더니 그럼 추천해주고 싶은 선생님이 있다고 했다. 몇몇 선생님들이 여기 숙소 요가홀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하시는데 네팔에서 마누하라는 사람의 요가는 음악 같다고 하셨다. 싱잉볼 연주를 하는 걸 청소하다가 들었는데 아름다워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는데 그 선생님 번호가 있으니 전화 한번 해보라는 거다. 아주머니가 일단 대신해보겠다 셨는데 안 받는다며 어차피 곧 올 거라며 원하면 여기 더 있다 가라고 하셨다. 언제 전화가 올지 모르니 이제 가봐야겠다고 했다.


"혹시, 내 딸이 있는데 둘이서 대화가 진짜 잘 통할 거 같아요. 내일 저녁식사 어때요?"

"어? 저는 오늘시간이 되는데.."

"아 그럼 딸이 일 끝나고 8시에 오니까 같이 대화 나눠요. 우리 딸이 포카라에서 제일 큰 온라인 배달 서비스를 하는데 킴제이가 사업하니까 뭔가 우리 딸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여기 정보도 더 많이 알고 있을 거야."


그렇게 저녁 식사 초대가 되었다. 일단 4시간 정도 시간이 남았으니 동네 구경을 더 하다가 숙소로 돌아갔다. 저녁 8시에 맞춰서 다시 호텔을 찾아갔다. 걸어서 40분 거리였는데 택시 타긴 무섭고 구글에는 대중교통은 없다고 해서 걸었다. 그냥 가도 되나 일단 가볍게 대화 나누는 거니까 들어갔는데 온 가족이 다 모여계셨다. 아주머니는 네팔의 기본 식사인 달밧을 만들어주셨다. 큰 쟁반이 그릇이 되어 밥과 기본 반찬이 있으면 렌틀 수프와 같이 비벼 먹는 음식이다. 어느 식당을 가도 있으며 또 맛이 다 다르다.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포크와 스푼을 안 주신다. 어? 하고 쳐다보니 다들 손을 씻고 오시는 게 아닌가? 아 손으로 먹는 거지! 네팔에서 손으로 먹는 분들을 많이 봤지만 먹어보진 않아서 바로 크리티에게 물었다.


"나는 처음 손으로 먹는데 예절에 맞게 하고 싶어. 어떻게 해야 해?"

같이 손 씻으러 가면서 배웠다. 손가락 전체로 음식을 집고 나서 네 손가락 위에 음식을 올리고 엄지로 쓱 음식을 밀어내면 된다고 했다. 밥 위에 수프를 부어 아저씨가 손으로 비비길래 따라 했다가 너무 뜨거워서 놀라니 다들 웃으신다. 그러고 보면 햄버거도 손으로 먹고 피자도 손으로 집어먹는데 밥이랑 국은 젓가락으로 먹으니까 손으로 먹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지 같은 음식이다. 조금씩 집어 먹으니까 천천히 즐기게 된다. 밥과 수프를 버무리고 반찬도 하나씩 비벼서 입에 쏙 넣는다. 기름지고 미끌하고 손톱에 음식이 끼진 않을까 어색하지만 4명의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는 지금이 너무나 귀엽다. 손 전체에 음식을 묻히지 않고 손가락만 쓰는 게 예의라고 했다. 


이 숙소는 가족비즈니스라고 했다. 코로나 이후로 사람이 줄어 고민이라 다시 정원을 색다르게 만들어간다고 했다. 아주머니 딸인 크리티는 26인데 포카라에서 가장 큰 배달 앱 서비스를 운영하는 대표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보통 네팔 친구들은 대학원을 가는데 자기는 그냥 의미 없이 공부를 더 하고 싶지는 않아서 고민이었는데 오빠의 추천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원래 배달 앱 서비스는 있지만 워낙 식당 수도 다르고 네팔 사람들이 밖에서 먹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서비스가 활성화되자 않았었다. 일단 친구의 삼촌, 길 건너 식당까지 찾아가 업체 등록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코로나가 터져서 사용자 수가 급격하게 들었다는 거다. 사업을 하려고 맘먹고 한 게 아닌데 우연히 오빠의 추천으로 시작했다가 갑자기 이렇게 커져서 정신이 없다고 했다. 직원 5명에 튼튼하게 갖춰져 있었다. 내가 배달의 민족 앱도 보여주면서 광고 위치들과 그들의 새로운 서비스를 알려주니 바로 캡처해 가며 질문을 주었다. 


"지식은 꽃이 피듯이 피어오른다. 내가 품고 있는 것이 적절한 날씨와 온도를 만나면 피어오른다."

"될 일은 된다. 모든 기회는 내게 오게 되어 있기에 나는 지금을 모조리 즐기며 배우면 된다."

예전 이대일 교수님과의 여행에서 만난 스님의 말과 마이클 싱어의 문장이 떠오른다. 연어가 결심을 하고 강물을 거꾸로 오르는 게 아니라 자연의 이치이듯 봄이 되면 진달래가 피어 분홍빛이 되듯, 내가 해야 할 일도 나에게 오지 않을까? 나도 때에 맞춰 꽃이 필텐데 씨앗이 잘 못 되었다고 착각하고 조급하게 지내는 건 아닐까?


내가 우연히 네팔에 오게 되어 이 가족들의 초대에 함께 밥을 먹고 있듯이 내게도 기회들이 우연을 가장하고 오지 않을까. 그럼 내가 해야 할 일은 이 순간을 모조리 느끼고 배우며 잘 먹고 잘 크는 것 그뿐이다. 

식사가 끝나고 찌아 (네팔에선 밀크티를 찌아라고 부른다)를 마시면서 아저씨와 오빠분과 더 이야기를 나눴다. 아직 뭘 할지는 모른 채 왔고 트레킹도 가고 싶다고 했다. 지금은 너무 춥고 계속 비가 와서 별로고 한 달 뒤면 꽃이 필테니 그때가 좋다고 했다. 한 달이나 있게 될지 모르겠다고 하니 그때 즘이면 아주머니 동생들도 포카라로 오니까 온 가족이 다 같이 트레킹을 가자고 했다. 아저씨는 바로 트레킹 루트를 추천해 주셨고 일정도 짜주셨다. 지금은 2월 말 내가 3월까지 있게 될까. 요가 한 달 프로그램도 하게 되면 시간이 부족하진 않을까 생각하다가 일단 될 대로 되겠지 싶었다. 그리고 아주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마누하 선생님


바로 나를 바꿔주셔서 무슨 말할 준비도 안되었는데... 요가 선생님 프로그램은 2월에 이제 끝났고 3월은 없다고 했다. 싱잉볼 수업은 3월 5일에 오픈하지만 나는 관심이 없어서 일단 하루만 거기서 지내보고 싶다고 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명상과 요가면서 쉬는 요가 리트릿 프로그램이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하지만 태국에서 유럽, 미국친구들과 해봤으니까 일단 요가 리트릿을 하면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전화번호를 받고 저녁식사 마무리를 했다. 온 가족이 나를 안아주며 인사했고 크리티가 오토바이로 숙소까지 데려다주었다. 밑도 끝도 없는 친절함은 뭐지? 잠깐 들렀다가 지나가는 손님에게 저녁식사까지 챙겨주시고 왜 반짝이는 따뜻한 눈으로 안아주시는 걸까


아침에는 그림 그리러 돌아다니다가 동화작가님을 만나서 물감도 하고 저녁에는 이렇게 네팔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사랑이다. 그리고 마누하 선생님을 만나러 간 Purna yoga ceter. 하루만 있겠다가 갔다가 한 달을 지내게 된다. 나의 마음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었던 아름다운 시간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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