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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단하는 킴제이 May 10. 2023

태국 치앙마이에서 프리허그 도전

https://brunch.co.kr/@kimikimj/60


온드라가 긴장한 채 번쩍 추켜올린 프리허그 종이.

사진 몇 장 찍어주고 가야겠다 싶었는데 몇 분 뒤에 가득 안기는 꼬마아이를 보니 설렌다.


"온드라! 나도 10분만 해봐도 될까?"

"나는 너무 좋지! 같이 하자"

종이를 들고 서 있는 자체가 아 민망했다. 야시장 초입 광장에서 지나가는 시선들을 받아내는 게 쉽지 않았다.

5분 지난 거 같아서 시간을 보면 2분밖에 안되었다. 가득 웃어보려고 애쓰며 서 있는데 지나가던 커플이 다시 돌아와 안아준다. 

"노란 드레스가 진짜 잘 어울려요"

내게 와준 반가운 이들이 아름답게만 느껴졌다. 작은 칭찬 한마디에 사람들이 활짝 웃고 더 꽉 껴안아 주었다. 몇몇 사람들을 안아주고 온드라에게 진짜 이게 되는 게 신기하다고 이야기하는데 저 멀리서 한 할아버지가 오신다.

아! 프리허그 하시려나? 하고 보는데 계속 내 눈을 쳐다보고 가까이 오시는 게 프리허그를 하려는 게 아닌 것 같다. 순간 움찔해서 온드라를 쳐다보니 할아버지가 말을 건네셨다.


"태국말하나요? 아님 영어도 하나요?"

"아 영어 해요"

"혹시 여기서 계속 프리허그 하실 건가요?"

(여기서 하면 안 되나? 아님 뭐 돈 달라고 하시는 건가?"


온드라가 나서서 말했다

"저는 여기서 한 시간 정도 더 할 건데 친구는 10분만 있다가 갈 거예요"

"혹시.. 그럼 더 하실 거면.."


긴장된다. 야시장 입구에서 장사하는 걸로 보시고 혹시 벌금 같은 거나 자릿세를 내라고 하시는 건가?

"저기 화상을 입은 맹인이 시장 가운데서 구걸을 하고 있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그냥 지나치고 있어요. 아까부터 보니까 사람들이 프리허그 하는 두 분한테는 오는 거 같은데... 혹시 같이 가서 도와주면 어때요?"

"Okay. But How can we..."


"일단 가서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면 어때요? 어제도 오늘도 내가 지나치면서 봤는데 아무도 멈추지 않고 걸어갈 뿐이에요"


같이 시장 중심부로 10분 정도 걸어가는데 이래도 되나 싶다. 혹시 이상한 강도무리에게 데려가는 건 아닌가 낯선 사람 따라가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옆에 친구도 있고 도망칠 수 있도록 오픈된 공간이라서 일단은 따라가 봤다. 10분 15분 걸어가니 가장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골목 한가운데에 한 남성분이 앉아 계셨다. 화상 때문에 얼굴이 녹아내렸고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모든 안면 부위가 쳐졌었다. 많은 사람들이 스쳐갈 뿐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하자 우리가 프리허그를 하면 할아버지가 그분들에게 기부하는 걸 물어보겠다고 했다. 

일단 시작!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정말 바로 포옹을 해주시는 분들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옆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하셨다. 옆에 화상을 입은 남자가 있는데 마음 편하게 기부를 해보고 싶으면 어떻냐 Feel free to.. 몇몇 바로 기부를 하시는 분도 계셨지만 온드라와 나는 썩 내키지 않았다. 사람들이 강압적으로 느낄 수도 있으니까.

온드라랑 이야기를 나누고 이번에는 온드라가 직접 이야기하기로 했다

"우리는 이 분을 돕기 위해서 지금 프리허그를 하고 있어요! 따뜻하게 안아주셔서 감사하고 혹시 이분께도 이 따스한 마음을 전하고 싶으신 분들은 언제든 환영합니다!"

단어 몇 개가 달라지니 사람들이 좀 더 편하게 우리의 의도를 읽어주셨다. 나중엔 사람들이 많아져서 우리를 빙 둘러 서서 카메라로 찍고 프리허그를 기다리는 분도 생겨났다. 온드라와 내가 돌아가면서 사람들 포옹을 해주었고 나중에는 별다른 언급이 없어도 사람들이 머무니까 액션이 일어났다.


아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사람들이 있는 곳을 찾아가고 그들의 발걸음을 일단 멈추게 하면 되는구나.

'저 사람들 프리하그 하는 거 옆에 분 도와주려고 저러나 봐'

뒤에서 웅성거리기도 하셨다. 디지털 노매드 커뮤니티에서 만났던 친구들도 지나갔고 신기해하면서 같이 프리허그를 했다. 부끄러워하다가도 자기가 누군가에게 포옹을 선물해 줄 수 있다는 것도 신나 했다.

한 시간 정도 1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만났다. 몇 초의 짧은 포옹이 겹겹이 쌓이니 몸의 피로도 무거웠다. 할아버지는 잠시 머물다가 떠났다가 다시 오셨다. 

"이 순간이 너무나 아름답다. 정말 사람들이 돕고 있어.. 고맙다. 아무도 돕지 않고 지나갈 때 내가 엄청난 무력감을 느꼈거든 다 너희가 만들어낸 거야"

"할아버지 아이디어가 아니었다면 시작도 못했어요. 저 이 밤을 잊지 못할 거예요"

오셔서 물도 주고 가시고 응원해 주셨다. 찌푸린 채 지나가는 사람, 친구들이랑 와서 하고는 싶은데 머뭇거리는 사람, 남자친구가 보기 전에 해야 된다는 사람, 또 와서 하고 가는 사람, 너무 멋있다고 외쳐주는 사람들 숱한 사람들이 지나갔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이 행위가 되려 누군가에겐 방해가 되진 않을까. 앉아 계시는 그 아저씨의 바구니에 현금은 쌓여갔지만 불편해하시진 않을까 신경 쓰이기도 했다. 돈은 정말 빠른 시간 안에 모였다. 우리의 액션이 결과물을 만든다는 자체가 신기했다. 마무리를 지으려고 온드라랑 눈짓을 하는데 할아버지가 다시 오셨다. 


저 멀리서 계속 지켜보고 계셨다고 했다.

"Where are you from?"

"한국에서 왔어요!"

"한국? 그럼 대구라고 알아요 혹시?"

"네! 대구 알죠!"

"제 와이프가 대구 사람이거든요. 20대에 미국으로 왔고 같이 결혼해서 살았어요. 은퇴하면 같이 여행하려고 계속 일했어요"


"아~ 그럼 지금 와이프 분이랑 여행 중이신 건가요? 오~ 너무 좋아요"

"아니..."

말을 잊지 못하더니 내 눈을 보시고 말씀 주셨다. 은퇴하면 같이 여행하려고 기다렸는데 여행 가기 2년 전에 갑자기 암에 걸렸다고 했다. 전 세계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찾아갔지만 결국은 혼자 오셨다고 했다. 

"그래서 아픈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요. 야시장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냥 모른 채 지나가고 꼬치나 이것저것 사 먹고 버리는 게 마음이 너무 아팠는데 이렇게 도움을 줘서 고마워요."


놀라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가 처음 나를 보고 우물쭈물하시면서 오셨던 걸음이 이해가 되었다. 왜 이렇게까지 도우려고 하는 마음도 더 깊은 마음으로 품을 수 있었다. 눈물이 고인 할아버지는 그냥 마냥 웃어주셨는데 야시장 조명에 부서져서 아름다웠다. 나도 웃었다. 우리가 같이 했다며 셋이 꼭 앉아 주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하고 싶은 마음을 미루면 안 된다. 지금은 지금일 뿐이야. 나중에 돈이 생겨도 시간이 없다. 사랑하는 이 모든 조건들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 NOW OR NEVER 절대적으로 지금일 뿐이야. 

10분 뒤에 일해야 한다고 했다가 머물렀던 순간의 결정에 감사하다. 잊을 수 없는 밤이다. 말도 안 되는 시간의 배움이 나를 덮쳐온다. 절대적으로 지금이야. 킴제이


https://www.instagram.com/p/Co3N2DSP-U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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